[취재기] 비극의 한가운데, 연극 ‘오이디푸스 왕’
불행하신 분이여, 그대가 누구인지 결코 알게 되지 않기를!
곪은 도시 속에서 공포에 떨며 하늘에 구원을 요청하는 탄원자들,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오이디푸스가 왔다. 울면서 해답을 찾았으나 어떠한 실마리도 찾지 못하는 무력한 인간의 삶, 그것을 대변하기 위해 저주를 받은 오이디푸스가 무대 위에 섰다.
도시는 선왕 라이오스를 살해한 살인자의 불결함 때문에 벌을 받게 됐다. 오이디푸스는 살인자와 그를 알고 있는 자들에게 저주를 선포한다. “그들은 살이 썩는 고통 속에 죽을 것이다. 그 고통은 자손 대대 대물림 될 것이며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피 튀기는 전쟁 속에 살 것이다. 하지만 내 말에 동조하는 내 백성들에게는, 맹세컨대 신들이 영원히 함께하시길 기원하겠다.” 그러나 불결하지 않은 인간은 어디 있으며 죄가 없는 인간 또한 어디 있는가. 결국 저주를 받은 오이디푸스는 운명 앞에 허물어지는 인간 모두를 대신해 가혹하리만치 고통을 받는다. 세기가 지나도 등줄기를 오싹하게 만드는 오이디푸스 왕의 이야기가 아주 작은 소극장, 혜화동 1번지 무대에서 펼쳐진다.
오이디푸스 왕의 이야기는 모두가 알고 있다. 친부를 살해하고 친모와 결혼할 것이라는 신의 예언을 피해 도망가던 오이디푸스는 길에서 마찰을 일으킨 누군가를 죽인다. 당시 그는 절망했으며 젊었다. 테베로 간 오이디푸스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어 나라를 구했다. 테베의 여왕과 결혼해 자식을 낳은 그는 지혜와 용맹을 칭송 받는 왕이 됐다. 이 모든 과정이 결국 예언으로 가는 길임을 우리는 모르지 않는다. 살해한 사람은 친아버지였으며, 결혼한 왕비가 어머니임을 알게 된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눈을 찌른다. 신은 오이디푸스에게 길을 강요하지 않았다. 결국 운명에서 벗어나려는 그의 선택이 스스로를 운명으로 이끌었다. 우리는 그 예언을 실행시키지 않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발버둥 쳤으나 결국 비극에 도달해있는 오이디푸스를 만날 수 있다. 펄떡이는 오이디푸스의 비극이 숨통을 조인다.
이 거대한 비극 이야기는 극단 골목길을 통해 재현된다. 작은 소극장에는 배경도 장치도 없다. 흰 천과 검은 옷을 입은 배우들만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두 개의 의자. 극단 골목길은 심플한, 아니, 부족한 재료들로도 극적 긴장감을 최대화시켰다. 전개는 빨랐으며 그러면서도 핵심을 놓치지 않았다. 말하고자 하는 포인트는 분명해 그야말로 ‘짧고 굵은’ 연극이 됐다. 모두가 알고 있는 익숙한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긴장감을 선보였다.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제대로’ 취했다. 군더더기가 없어 몰입을 방해할만한 요소가 없었다. 그러므로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극에 집중했으며 관객의 시선을 받은 배우들에게 그곳은 무대가 아니었다. 암울한 오이디푸스의 비극 한가운데, 배우들은 바로 그곳에 있었다.
뉴스테이지 이영경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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