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Factory. 2010서울연극제-2] 나는 과연 무죄인가, 연극 ‘심판’

보이지 않는 감옥 속에 갇힌 현대인의 초상  

“누군가 요셉 K를 중상모략 했음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는 아무런 나쁜 짓도 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 날 아침 체포되었기 때문이다(카프카의 ‘심판’ 시작 부분).”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은 고통스럽다. 당황한 독자들은 한시도 머물고 싶지 않은 그 세계에서 ‘구원’되기를 원하나 카프카는 탈출구를 마련해놓지 않았다. ‘심판’에는 보이지 않는 특정 권력에 의해 생일 날 체포되는 요셉 K가 등장한다. 그는 죄목도 모른 채 체포됐으며 그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모르기는 독자도 마찬가지. 그러므로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까지 해결점은 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죄를 모르기에 무죄를 입증할 수도 없는 주인공 요셉 K는 그렇게 승리가 불가능한 게임을 시작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스스로’ 말려든다. 특이한 것은 체포가 그의 일상생활에 어떠한 제약도 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렇듯 재판은 어느 지점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우연히, 그러나 필연적으로 ‘목격’됐다. 

억압돼 있으면서도 자유로운 그는 평범한 일상생활을 유지하려 노력하나 ‘목격’된 재판에 의해 혼란을 겪게 된다. 요셉 K의 방에서 그의 생일을 알리던 달력은 어느 순간 사라지고 그의 일(평일)과 휴식(일요일)이 엉켰으며 시간의 흐름과 날의 변화는 의미 없는 것이 돼버린다. 요셉 K는 불안과 대책 없음으로 정체성을 잃어간다. 

카프카가 ‘심판’을 집필할 당시 배경으로 삼은 시대적 상황을 배제하더라도, 이 작품은 체제 속에서 불안해하는 인간의 심리를 예리하게 그려내므로 현대인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심판’에서 재판은 한 개인의 특별한 경험이 아닌, 인간의 삶 전반을 상징한다. 요셉 K의 재판 과정은 발버둥 칠수록 단절되는 인간의 고독을 대신한다. 요셉 K는 투명하지 않은 재판에 저항하면서도 동시에 끌려간다. 종국에는 ‘개 같은’ 죽음이다. 

2007년 극단 실험극장이 선보인 연극 ‘심판’은 ‘2010 서울연극제’ 공식참가작으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 중이다. 무대는 작품이 전하는 답답한 만큼 삭막하고 어둡다. 결코 넘을 수 없는 서류보관함으로 이뤄진 높은 양 벽은 차갑다. 외부와 내부의 경계를 상징하는 문(혹은 벽)에는 안과 밖을 볼 수 있도록 얇은 틈이 있다. 그 안의 내부 공간들(방)은 조명으로 구분된다. 얇은 벽만으로 가린 서로의 생활을 엿보면서도 철저하게 외면하는 인간들의 관계는, 막이 없어지고 뚫려있음에도 소통하지 못하는 무대 위의 인물들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시종일관 극장을 감싸는 음악은 낮고 불안하며 배우들은 유쾌하지도, 지나치게 우울하지도 않다. 그저 나, 또는 남의 재판(삶)을 구경할 뿐이다. 

극단 실험극장의 연극 ‘심판’은 대극장 무대에서 선보이는 만큼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들에 대한 묘사와 동선을 매혹적이었지만 다소 산만한 느낌이 있다. 분산되는 시선은 요셉 K의 혼돈과 관객의 혼란을 동일시 시켰으나 때문에 완벽한 집중을 방해했다. 모두가 알고 있으나 대부분이 어려워하는 카프카의 ‘심판’을 통해 현대인의 자화상을 표현하려는 시도는 좋았지만 직설적인 대사 등의 전달방법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큰 기대가 있어야 아쉬움도 남는 법. 연극 ‘심판’은 무대, 배우들의 연기, 구성, 표현 방법 등을 통해 50년이라는 극단 실험극장의 역사가 실로 거대한 것임을 확인시켰다. 카프카의 ‘심판’에 도전한 극단 실험극장의 무대에는 관객과 소통하려는 시도가 엿보였고, 그 시도가 결국 성공했음을 알리며 막을 내렸다.



뉴스테이지 이영경 기자
newstage@hanmail.net


[공연문화의 부드러운 외침 ⓒ뉴스테이지 www.newstage.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