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Factory.38] 플래시가 포착하지 못한 진실, 연극 ‘마릴린 먼로의 삶과 죽음’

가난한 소녀가 몸에 맞지 않는 스웨터를 입고 있다. 작은 스웨터가 몸에 밀착되자 굴곡이 드러난다. 남자들의 시선이 소녀의 몸을 핥고 지나간다. 소녀는 그 시선의 본질과 힘을 파악한다. 자신의 몸이 갖는 상업성과 남자의 성적 기호를 간파한 소녀는 그것을 이용해 스타가 된다.  수많은 스캔들과 화려한 조명 속에서 어둡고 외롭게 죽어간 마릴린 먼로. 본명 노마 진 베이커를 벗고 마릴린 먼로를 입은 그녀는 몇 컷의 이미지로 기억된다. 여전히 금발에 붉은 입술, 육감적인 몸매를 가진 ‘백치’로 언급된다. 

마릴린 먼로가 1954년 병원에서 찍은 가슴 엑스레이 사진 3장이 경매에서 예상가격 3천 달러(한화 약 360만원)를 훨씬 뛰어넘는 4만5천 달러(한화 약 5천413만원)에 팔렸다. 이 경매에서는 그녀가 마지막 촬영 당시 앉았던 의자도 3만 5천 달러에 팔렸다. 여전히 소비되고 있는 마릴린 먼로의 짧은 36년 삶은 이와 다르지 않다. 할리우드 매스미디어가 창조해낸 환상적 허상은 가격을 높이고 실체를 왜곡, 외면한다. 

-해피 버스 데이 투 유,
대중에 의해 탄생된 마릴린 먼로
 

무대 위에는 출생부터가 비극이었던, 자신을 대중문화의 메커니즘에 내맡김으로 파멸을 자초했던 마릴린 먼로의 삶이 펼쳐진다. 연극 ‘마릴린 먼로의 삶과 죽음’은 그녀를 관음 했던 남자들의 눈으로 가득하다. 그 시선을 따라가면 입이 벌어진다. 황홀하도록 섹시한 마릴린 먼로는 없고 엉성한 가발과 속옷 한 장을 걸친 남자가 요염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극 ‘마릴린 먼로의 삶과 죽음’에는 10명의 남자 배우들이 등장한다. 그 중 3명이 마릴린 먼로의 삶과 자아를 그려낸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의 괴리가 남자의 입에서 발설될 때, 욕망의 주체와 대상이 혼돈되며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남자 배우들의 마릴린 먼로 흉내는 관객의 웃음을 유발하며 묵직한 비극의 삶을 가볍게 터치한다. 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녀의 아름다움이 아닌, 내면에 집중시키는 효과를 가져 온다.

마릴린 먼로의 삶은 늘 요구 당했으며 추궁 당했다. 연극에는 그녀를 몰아세우는 대중에게 휩쓸려 함께 폭력을 가하는 개인도 묘사된다. 그녀가 원하는 것에 대한 추측이 난무하나 과연 정말로 진실을 알기 원했나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대중은 그녀의 실체가 아닌,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보고 있다. 마릴린 먼로는 그것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해되지 못하고 구경 당했던 마릴린 먼로는 모두가 원했던 여성이 아닌, 남성의 몸으로 관객에게 진실을 묻는다.

- 굿바이 섹스 심벌,
고독한 마릴린 먼로 놀이는 이제 그만

조 디마지오, 아서 밀러, 프랭크 시나트라, 이브 몽탕, 케네디 형제 등. 세기의 섹스 심벌이라는 수식에 걸맞은 연애 속에는 사랑과 자비를 갈구했던 마릴린 먼로의 잔상이 남아있다. 연극은 이 관계를 퀴즈 형식으로 풀어내는 위트를 발휘한다. 언제나 취해 있던 마릴린 먼로는 이 문제를 쉽게 맞추지 못한다. 이런 희극과 비극을 동반한 연출을 작품 곳곳에 배치, 연극의 다양한 맛과 영양을 섭취하도록 했다. 또한 마릴린 먼로는 자신이 남성판타지가 창조해 낸 백치가 아님을 호소한다. 문제는 대중이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

항상 아슬아슬한 극단에 놓여있던 마를린 먼로는 수면제 다량 복용, 자살로 추정되는 의문의 죽음을 맞는다. 그녀가 할 수 있었던 가장 독자적인 결정 죽음. 하나의 신화와 불편한 실체가 드디어 막을 내리는 순간이다. 그러나 우상을 원하는 대중의 욕구는 여전하다. 마릴린 먼로의 모자와 구두 등이 그녀를 대신한다. 이 모든 것을 콜라주 형식으로 선보인 연극 ‘마릴린 먼로의 삶과 죽음’은 불우한 삶을 살았던 한 여인의 한풀이에 머물지 않는다. 현재를 사는 연약한 인간 모두를 지목한다. 우리에게 씌워진 가발을 올려다보게 한다. 마릴린 먼로의 마지막 말 “그대들, 끝까지 이겨내요”는 관객들에게 전하는 종국의 메시지다. 마릴린 먼로에 대한 연민 동시에 세상의 폭력에 노출된 인간에 대한 애정이 공존한다.


뉴스테이지 이영경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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