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리뷰] 불안과 소통의 부재가 낳은 ‘작은새’

스탠드가 놓인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끄적이는 남자, 연방 테이블을 닦으며 남자에게 말을 건네는 여자, 이게 연극 ‘작은새’의 첫 장면이자 극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몸을 파르르 떨며 불안하게 말을 늘어놓는 그녀는 “전 이야기할 사람이 필요해요. 엄마 말고는 말할 사람이 없어요”라며 끊임없이 ‘엄마 이야기’를 쏟아낸다. 아주 빠르게 많은 단어를 우르르 내뱉는 해인과 달리 현수는 말로는 “듣고 있다”지만 책에서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해인과 현수의 대화는 계속해서 엇박자를 타고 이어간다. 일방적이던 해인과 현수의 대화는 카페에 나와서도 계속된다.

 

단정한 그녀의 외투에 신문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삐죽 튀어나와 있음에도 해인은 옷을 추스를 생각이 없다. 그녀는 말하는 것 외에 그 어떤 것도 관심이 없어 보인다. 일을 마치고 나온 둘은 이제 각자 헤어져야 한다. 그런데 해인은 당돌하게도 현수에게 자신을 지하철역까지 바래다 달란다. 지하철역까지 가는데도 한참 걸린다. 하고 싶은 말이 어쩜 그리도 많은지 그녀는 모두가 놀랄만한 속도와 양의 단어를 끊임없이 내뱉는다. 오늘 처음 만난 직장동료 현수에게 해인은 “전 이제까지 밸런타인데이 때 카드를 받아본 적이 없어요”라며 내일 역시 카드를 받지 못할 자신의 처지를 한탄한다. 좀처럼 해인의 행동은 이해할 수 없고, 두서없이 말을 내뱉는 그녀에게서 불안함이 감돈다.

 

- 이야기가 하고 싶은 그녀, 그녀를 갖고 싶은 그

 

현수의 집에 들어선 둘은 어색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현수는 해인에게 양해를 구하지 않고 편하게 말을 놓는다. 마치 예전부터 알던 사람처럼. 극은 전반적으로 무거운 공기에 짓눌린 듯 침체해 있다. 어색함과 다른 무거운 공기다. 이때 현수는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노래를 틀고서 해인을 향해 유혹을 춤사위를 선보인다. 당황하는 관객과 부끄러워하는 해인은 안중에 없다. 현수는 나홀로 춤 삼매경에 빠진다. 민망해 하던 관객은 현수의 꿋꿋함에 폭소를 터뜨린다. 춤까지 추면 뭐하나 해인은 외투도 벗지 않은 채 덜덜거리며 떨고 있다.

 

이쯤 되면 해인을 이해할 수 없다. 불편해하면서도 좀처럼 집에 갈 생각을 않는다. 현수가 샤워를 하러 가면서 ‘문은 열려있으니 가고 싶으면 언제든지 가도 된다’고 말하건만 그녀는 침대 위에 붙박인 채 앉아 있다. 현수의 행동은 참 쿨하고 능글맞다. 화를 내다가도 금세 기분을 푼다. 샤워하러 들어갈 때만 해도 분명 화가 났었는데, 샤워하면서는 언제 화를 냈느냐는 듯이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그런 현수의 능글맞음이 가라앉은 극에서 짬짬이 웃음을 제공한다. 경쾌한 현수와 달리 해인은 침대 위에서 덜덜거리며 떨고 있다. 그녀가 앉은 침대 위에는 캐노피와 같은 새장 모양의 철창이 있다. 그 철장은 예쁘지만 그녀를 가둬 놓는 역할을 한다. 해인의 엄마가 그녀를 속박하듯 철창 역시 작은새와 같은 그녀를 옭아맨다.

 

- 진실을 마주한 둘, 비로소 대화를 나누다

 

투닥거리던 둘은 결국 끈질긴 현수의 들이댐에 반강제적으로 춤을 춘다. 마치 분신처럼 해인에 어깨에 걸려 있던 가방이 분리되고, 계속해서 시선을 끌던 신문의 정체도 드러난다. 신문 하나로 모든 상황은 역전된다. 쓸데없는 말들만 늘어놓던 둘은 신문과 피로 흥건히 젖은 칼을 마주한 뒤 드디어 진심을 털어놓는다. 동시에 관객 역시 해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왜 해인이 집에 가지 않았는지 또 왜 사시나무 떨 듯 불안에 몸을 떨었는지 모든 걸 알게 되자 그녀가 측은하다. 그녀에게 다른 선택이 없었으리라. 자신을 속박하던 엄마라는 새장을 해치지 않고서는 빠져나올 수 없었기에 그녀는 엄마를 제거함으로써 자유를 얻었다.

 

현수 역시 그녀의 진실을 마주하자 어쭙잖은 유혹의 시선을 거두고 진심을 담은 대화를 이어나간다. 현수는 그녀를 무서워할 법도 한데 오히려 달랜다. 그리고 해인은 새장과 같은 곳에서 편히 잠들고, 현수는 그녀를 위해 밸런타인데이 카드를 쓴다. 시종일관 불안에 떨던 그들은 극한의 상황에 마주한 뒤 평화로움을 얻는다. 불안에 잠식당한 해인과 외로움에 치를 떨던 현수는 서로의 불안과 외로움을 내보이고는 평온을 맞이한다.



뉴스테이지 박수민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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