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Factory.46] 암흑도 아름다운 그곳, 연극 ‘메카로 가는 길’
우리의 내면을 글, 그림, 음악 등, 여하튼 무엇이라도 좋으니 표현해보라고 한다면, 그것참 난감하다. 우리 자신을 골똘히 들여다보고 있자면 지킬박사 속 하이드는 가소로울 따름이다. 수만 개의 ‘나’가 존재하며 결국 그것들이 모여 다시 ‘나’가 된다. 연극 ‘메카로 가는 길’에는 한 여인의 내면을 고스란히 드러낸 무대가 있다. 모호함, 몽환, 신비로움, 어두움, 촛불 등 갖가지 단어 모두를 흡수하는 그녀의 공간을 굳이 조합해 정의하자면 매혹의 단어들은 휘발되고 ‘기괴함’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기괴함’ 역시 썩 내키지 않는다. 우리가 그녀의 방에서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 모르기 때문이다. 그녀가 지닌 열정과 순수함을 안다면 그때서야 우리는 그녀만의 방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공간은 오로지 그녀의 방이다. 무대는 한정돼 있지만 연극은 두 시간 가량 꽤 먼 길을 지나온다. 한 번도 시각적으로 표현되지 않은 동쪽의 사원 역시 연극 어딘가에 분명해 존재한다. 여인은 그곳을 ‘메카’라고 불렀다. 연극은 메카로 가는 길을 누구나 쉽게 찾아갈 수 있도록 친절히 설명해주지 않는다. 그저 방향을 제시하므로 힌트만을 남긴다.
‘메카로 가는 길’은 책처럼 읽으며 음미할 수 있는 연극이다. 대화와 공간, 인물들 심리 사이사이 여백은 무수한 의미를 생산해내며 가장 단순한 공백이 되기도 한다. 헬렌이 메카에 다다른 정신적 체험을 이성으로 해석,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나 상징적으로 드러난 무대를 통해 우리는 헬렌의 ‘메카’를 공유할 수 있다. 칠십을 향해가는 이 고립된 여인의 삶은 그렇게 시가 되고 그림이 되며 또 연극이 된다. 사라지려는 찰나 더 찬란해진 촛불이 밝힌 그녀의 얼굴은 기적이라 불릴 만큼 아름답다.
작은 마술사 그녀의 방, 그곳은 ‘메카’
너무 다른 세 개의 음이 이뤄낸 완벽한 조화
남아프리카 카루 사막지대의 뉴 베데스다라는 조용한 곳에 전에 없던 색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홀연히 나타났다고 할 만하다. 그 ‘출현’에 마을 사람들은 당황한다. 핵심은 남편이 죽자 그를 한 번도 사랑한 적 없던 헬렌이 교회에 성실한 과부가 되기를 거부했다는 데 있다. ‘감히 남들과 다르고자’ 했던 것이다. 알 수 없는 조각들과 침묵으로 일관한 헬렌의 반란은 그녀를 마을의 괴물로 만들었다. 어쩌면 헬렌의 공간은 바싹 마른 사막마을의 붉은 호수와 같을지도 모른다. 물은 분명 유용할진데 불길한 붉음으로 인해 외면된다. 마을은 애초에 호수를 이해하려하지 않았다. 그것이 조금 더 풍성한 즐거움을 위해 신이 선물한 포도주일지, 혹은 홍차일지 알 수가 없다.
여기 헬렌의 메카를 조롱하지 않는 젊은 여성 엘사가 구원처럼 등장한다. 유일한 친구이자 사랑이다. 두 여인의 교감은 성장물로 보일만큼 순진하며 치열하다. 언제나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고 충실하면서도 서로를 통해 스스로를 바라본다. 엘사로 인해 헬렌의 세계는 풍화되지 않고 더욱 단단히 존재한다. 헬렌으로 인해 엘사는 삶의 또 다른 아름다움을 이해한다. 그들의 우정은 두 세계가 마음을 열고 다름을 존중하는 태도가 빚어낸, 새로운 조각상이다. 그리고 아직 완전한 형체를 드러내지 못한 마리우스와의 우정도 있다. 헬렌을 양로원으로 보내기 위해 노력하는 목사 마리우스는 단언컨대 악역이 아니다. 그저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이 너무 멀리 가버린 헬렌에 대한 연민과 애정의 표현 방법이 잘못되었을 뿐이다. 가엾은 마리우스는 헬렌이 있는 곳을 직시한 동시에 그녀를 잃었다.
서로 다른 성격과 크기의 음이 예상치 못했던 조화를 이루는 작품이 ‘메카로 가는 길’이다. 엘사의 음은 명확하며 강하다. 마리우스의 소리는 낮고 진중하다. 헬렌의 음표는 오선지 어디에도 완전히 걸쳐지지 않고 서로 다른 두 음의 불화를 조절하며 자유롭게 움직인다. 모든 논쟁이 작고 허약하나 자유가 넘치는 헬렌의 방에서 이뤄졌다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
연극은 노인복지문제 외에도 인권, 종교, 여성, 빈민 등 각종 사회문제를 아우른다. 그 속에서 암흑을 몰아낸 촛불처럼 빛을 발하는 ‘메카’는 관객의 깊은 곳에 숨어있는 꿈을 자극한다. 깊고 건강한 호수를 만나게 한 배우들의 탐구는 관객들로 하여금 ‘메카’를 찾아갈 용기를 심어줬다. 이어 촛불 끄는 법을, 그 의미를 여운으로 남겼다.
뉴스테이지 이영경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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