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당신’을 위한 예술, 국립발레단 최태지 예술감독

아쉽게도 태어나는 모든 것들은 죽음을 예고한다.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시절은 당연하듯 순간처럼 지나간다. 마음을 가꾸라는 선인들의 당부도 이에서 비롯됐을 터, 시간을 이기지 못하는 육신과 달리 점점 농익어가는 내면의 향기가 타인을 감동시킨다. 여기, 시간을 비켜가는 듯한 아름다움과 그에 못지않은 향기를 지닌 이가 있다. 항상 긴장 속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모두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인생에 대한 아쉬움도 있지만 소녀처럼 밝은 미소를 간직하고 있는 국립발레단의 최태지 예술감독.

 

그녀가 국립발레단에 전임했을 당시 관객의 90%가 무용계 관계자들이었다. 지금은 95%가 발레를 사랑하는 일반 관객이다. 지난 시간 동안 발레의 대중화를 위해 국립발레단은 ‘해설이 있는 발레’를 기획, 공연했으며 지역 및 소외된 이들을 위한 찾아가는 공연을 펼쳐왔다. “국민들을 위해 문화향유의 기회를 많이 제공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지역 공연을 할 때마다 ‘아, 이렇게 보고 싶어 하시는 분들이 많구나’라는 것을 느끼고 옵니다. 국립발레단의 힘은 그것이라 생각해요. 관객과 함께 호흡하며 함께 성장하는 것이죠.” 한 일이 많지만 앞으로 할 일, 하고 싶은 일이 더 많다는 최태지 예술감독은 다양한 경험에 따른 노련함 속에서 타인을 향한 배려의 향기를 뿜었다.

 

세계 속에서 자랑스러운 한국 발레의 힘, 국립발레단
“우리의 열정, 우리의 노력이 세계화의 핵심 뿌리”

 

“세계의 예술인들이 와서 지도도 많이 해주시고 다양한 작품을 받아오기도 했는데, 그분들이 국립발레단에 방문하실 때마다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세요. 무엇보다 우리 무용수들의 열정과 매너 등을 높이 평가하시고 만족스러워하세요. 흔히 세계화라는 것을 외국에 나가 공연하는 거라고 생각하지만 방문하는 분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는 것, 또 그 분들이 외국에 나가 한국의 국립발레단의 좋은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 역시 세계화의 일부분이 아닐까 생각해요. 또한 이제는 한국의 무용수들이 다양한 세계콩쿠르에 나가 메달을 거머쥐고 오죠. 무용수 개인을 비롯해 국립발레단에 대한 칭찬은 저를 기쁘게 해요.”

 

한국 사람들에게는 열정이 있다. 최태지 예술감독은 그것이 아름답다고 말한다. 외국의 다양한 예술인 역시 한국 무용수들의 집중력과 의지에 감탄하며 행복하게 일을 마치고 돌아간다고. 세계적인 교류 속에서 얻는 자신감 역시 무용수들에게는 좋은 경험이었을 것. 열정이 만들어낸 세계화를 증명하듯, 올해 한.러 수교 20주년을 맞아 국립발레단과 볼쇼이발레단의 합동공연이 준비돼 있다. “무섭지 않느냐고들 물으시는데 저는 이제 당당히 나갈 수 있는 시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해요. 자신 있게 나가고 싶어요. 저희 국립발레단과 볼쇼이발레단의 인연은 오래됐어요. 오랜 시간 러시아 분들에게 가르침을 받았는데 한.러  20주년을 맞이해 그동안의 성과를 보여 드릴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갈라 공연만이 아닌 작품 전체를 보여줄 수 있는 때가 된 거죠. 이건 하루아침에 이뤄진 게 아니에요. 저희가 볼쇼이극장의 레퍼토리인 유리그리가로비치 안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공연했을 당시 볼쇼이 극장장을 모셨어요. 극장장도 우리 발레단의 수준에 대한 믿음이 있으셨다고 생각해요. 오랜 시간의 관계 속에서 맺어진 꽃이라 더욱 뜻 깊습니다.”

 

발전에 대한 욕구보다는 배려와 사랑이 먼저
“내가 원했던 것, 우리 무용수들에게 모두 주고 싶다”

 

그녀는 발레리나였다. 70년대 일본에서 유리그리가로비치의 작품을 보며 감탄했던 최태지는 저런 무대에 서고 싶다고 소망했다. 재일교포로 힘든 일도 많았고 아쉬움도 많았지만 일본에 없는 국립발레단이 한국에 있다는 것 자체가 그녀에게는 힘이 됐다. “무용수였을 때도 그렇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후배들에게 좋은 작품을 많이 알려주고 싶어요. 제가 하지 못했던 것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고 제가 하고 싶었던 것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어요. 제가 유리그리가로비치 선생님께 레퍼토리를 달라고 매달린 이유 역시 발전에 대한 갈망보다는 지금 우리 무용수들에게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에요.” 최태지 예술감독은 인기작품을 선택하기보다 지금 발레단의 무용수들에게 필요한 공연을 눈여겨본다. “발레리나 혹은 발레리노는 안무자의 작품을 받고 체화하며 여러 차례의 변신을 해요. 저도 그런 게 좋아서 발레를 했었기에 무용수들의 마음을 잘 알죠. 발레를 60세까지 길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제가 급해요. 많은 역할의 기회를 제공하고 싶은데 시간이 짧아요.”

 

최태지 예술감독이 그토록 발레학교를 꿈꾸는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다. “요즘 학생들은 학교 수업 후 발레 레슨에 대학도 가야하니 학원까지, 도대체 잠을 잘 시간이 없어요. 얼마 전 우리 아카데미 학생을 유학 보냈는데 그곳은 하루 아홉 시간을 꼭 재워요. 영양사도 붙으니 키도 잘 자라고 건강해지는 등 아주 만족스럽게 보내고 있어요. 사실 발레에는 영재가 없어요. 키와 사춘기의 호르몬 밸런스, 정신력, 경제력 등 다양한 요소로 포기하는 학생들이 많죠. 이들을 꾸준하고 차분하게 키워줄 수 있는 학교가 필요해요. 또한 서울에 집중돼 있는 교육의 기회를 지역으로까지 넓혀 기숙사를 마련, 동등한 교육여건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고요. 일반 수업부터 발레, 인성, 창작활동 등 예술인으로서의 자세와 마음가짐까지 가르칠 수 있는 발레학교를 꿈꿉니다.”

 

‘나’를 위한 것이 아닌, ‘타인’을 위한 예술
“어차피 발레를 떠날 수 없는 몸, 할 수 있는 모든 걸 할 것”

 

지난 4월, 국립발레단은 아이코리아 한국육영학교의 정서장애 및 자폐성 장애아들을 위한 ‘찾아가는 국립발레단’ 공연을 펼쳤다. 최태지는 그 공연을 잊지 못한다. “저도 엄마잖아요. 어머니들이 얼마나 가슴 아프며 힘든 일들이 많았겠어요. 그 아이들이 집중할 때, 어머니들의 얼굴을 보니 너무 행복한 거 있죠. 예술은 돈의 유무와 상관없이, 건강여부와 상관없이 모두 함께하며 소통할 수 있어야 해요. 그 때의 학생 중 지금 아카데미에서 수업을 받는 이도 있어요. 그렇게 계속 다가가고 싶어요. 순수하게 무대를 바라보는 이들과 함께하며 몸으로 전달하고 기쁨의 눈망울로 되받는 거, 얼마나 행복합니까.”

 

에너지 넘치는 그녀가 마지막으로 발레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인내를 당부했다. “경쟁의식 속에서 조급한 마음으로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이기려 한다면 힘들어져요. 발레는 시간이 걸려요. 순간이 아니라는 거죠. 인내심을 갖고 스스로를 가꾸세요. 연습실의 거울이 선생님입니다. 스스로가 행복해야지 거울에서도 웃음이 보이잖아요. 쉽게 포기하지 말았으면 해요.” 최태지 예술감독은 현재 9월 25일부터 30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될 ‘라이몬다’를 기대하고 있다. 또 하나의 새로운 클래식 발레가 관객을 찾아온다. “최고의 무용수들이 각자의 매력을 발산할 무대가 어떻게 전달될 지 기대가 커요. 이제는 테크닉과 외적인 아름다움을 넘어 예술인으로 무대에 서야죠. 그들이 몸으로 하는 이야기가 관객에게 잘 전달되길 바랍니다.”

 

 

글, 사진_뉴스테이지 이영경 기자(newstage@hanmail.net)



[공연문화의 부드러운 외침 ⓒ뉴스테이지 www.newstage.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