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Factory.50] 눈물 나도록 슬픈 유머, 연극 ‘디너’

화장기 없이 솔직한 이 연극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미안하지만 단단하다고 믿었던 관계의 땅이 어느 순간에고 쩍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한 쪽이 수월타. 더불어 결혼의 쌉싸름함을 아는 쪽이, 더 잔인하게는 현재진행중인 이들이 무한 공감에 따른 서글픈 짜릿함을 느끼기에 유리하다. 그러나 연극 ‘디너’를 결혼에 대한 부정극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결혼에 대한 환상이 깨진 이들이여, 함께 울자’고 말하는 것 같지만 작품은 단지 ‘지나치게’ 솔직했을 뿐이고 그 솔직함으로 관객을 치유하기에 부족치 않다. 흔하디흔해서 오히려 멀어진 불륜을 우리의 삶에 안착시킨 본질에 대한 집중력이 대화로 이뤄진 연극의 약 두 시간 가량을 참으로 흥미롭게 만들었다. 추천 동시에 추천할 수 없는 연극, 다시 말해 추천하고 싶지만 그러기엔 용기가 필요한 연극 ‘디너’는 저녁식탁에 마주 않은 오래된 부부에게 묻는다. ‘당신의 저녁은 안녕한가.’

 

연극에는 네 남녀가 등장한다. 베스와 탐 부부, 카렌과 게이브 부부가 그들이다. 탐이 없어 약간은 아쉬운 저녁식사시간, 게이브 부부의 여행이야기가 도착점 없이 허공만을 배회하며 민망해진 것은 여행 따위 상관없는 베스 때문이다. 이어 베스는 느닷없이 이혼을 선포한다. 엉엉 울면서. 다른 사람을 사랑해서 떠났다는 탐의 만행에 ‘뜨악’스러운 친구들은 그때부터 분석하기 시작한다. 베스와 탐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토론한다. 해석하고 아직은 안전한 자신들을 자위하는 과정에서 가해자(탐)와 피해자(베스)가 확정되고 각자 변호사와 검사가 돼 재판을 시작한다. 흥미로운 점은 하소연 후 파이를 한 입 베어 문 베스가 그 달콤함에 미소를 짓는 다는 것. 인생은 그런 것이다. 억울해 죽을 지경이지만 맛있는 건 맛있다. 이제 관객은 예상한다. 연극은, 그리고 삶은 모든 것이 엉망이 돼 마지막일 것만 같은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걸. 연극은 흔히 이혼에 제기되는 남녀 역할의 불평등과 같은 진부한 요소들 대신 인간과 관계에 집중하므로 어느 인격체도 무시하지 않는다.

 

- 탐구에 의한 처절한 공감의 공포
세상 모두가 억울하고 타당하니 그것이 인생이로다!

 

억울한 건 탐도 마찬가지다. 오랜 친구들에게 홀랑 말해버려 자신을 공공의 적으로 만든 베스에 대한 탐의 노여움은 귀엽기까지 하다. 자신의 새 애인을 스튜어디스라 부르는 베스에게 지치지도 않고 ‘낸시는 항공권예약부서팀장’임을 정정해주며 뻔뻔하고 능청스럽게 자신의 정당성을 입증하려는 탐에게는 짜증 동시에 납득시키는 힘이 있다. 탐의 판타스틱한 애인 낸시와 베스의 새 연인 데이빗은 너무나 견고했던 네 남녀의 울타리 안에 부재하면서 존재한다. 마치 없으면서도 있는 환상과도 같다. 여기서 베스의 어두운 탱고, 슬픈 아다지오 같던 탐과의 결혼생활은 현재의 데이빗을 운명적이고 열정적으로 만나기 위한 과정으로 전락한다. 그러니까 현재 베스와 탐은 너무나 행복한 것이다. 낸시교 광신도처럼 보일만큼 새 애인에 대한 애정으로 환장하기 직전인 탐은 팔불출이 아니라 순수해 보인다. 실패한 결혼으로 힘겨워해야 할 친구들의 행복은 카렌과 게이브를 당황하게 만든다. 타인이 엉망일 때 선심 쓰듯 빌어줬던 행복이 느닷없이 이뤄지자 불편해진다. 탐의 외도로부터 시작된, 아니 그 전부터 진행된 균열로 인해 극이 끝날 때까지 네 명은 한 자리에 모이지 않는다. 유일한 순간은 12년 전, 뜨거운 첫 만남의 순간이다. 가장 다양한 색채와 활기를 띈 이 장면은 무대와 달리 유일한 흑백장면으로 느껴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황당한 이혼과 더 황당한 행복으로 들뜬 친구들을 보며 카렌과 게이브는 자신들이 흔들리고 있음을 느낀다. 그럼에도 지켜나가기 위해 노력한다. 따지고 보면 넷 다 옳지 않다. 그렇다고 틀린 것도 아니다. 연극은 두 커플을 통해 결혼이 가질 수 있는 두 가지 가능성을 제시한다. 잘 지켜나가는 가정과 잘 파탄 낸(?) 가정이 교차되며 관객으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현재의 스스로와 비교하게끔 만든다. 여기서 중요한 건 결혼과 이혼의 여부가 아니라 행복이다. 삶에 대한 탐구와 성찰이 빚어낸 연극 ‘디너’는 나이와 결혼여부를 의심케 만든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로 빛을 더한다. 다만 차라리 ‘당신들도 무대 위 이들처럼 답답하고 더워야합니다’라는 배짱 부족으로 켜졌다 꺼지는 소극장의 에어컨은, 실생활 연기로 인한 작은 발성의 배우들 대사를 시원하게 날려버렸다. 두 가정의 모습이 흔히 사용됐던 소재라는 아쉬움은 그것이 인생이고 우리 삶이라는 제대로 된 표현과 묘사 앞에 무릎을 꿇었다.



뉴스테이지 이영경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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