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의 랑데부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은 올해로 스물세 살의 젊은 연주자다. 독일에서 태어난 한국계 연주자인 그녀는 어느새 ‘젊은 거장’이라는 수식어가 이름 앞에 붙었다. 지난 9월 ‘7인의 음악인들’과 ‘성민제, 김수연의 rendez vous(랑데부)’ 등 연주회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그녀는 아직 보여준 것보다 보여줄 것이 더 많은 꿈 많은 예술가다.
더블베이시스트 성민제와의 협연은 다소 이색적인 일이다. 보통 첼로와의 협연을 하는 다른 연주회와 달리 이번 공연은 더블베이스와 바이올린 그리고 피아노의 앙상블로 이뤄졌다. 레퍼토리 역시 바흐부터 편곡된 피아졸라까지 다양하다. 데이트라는 뜻의 프랑스어 랑데부라는 제목에서처럼 김수연과 성민제는 나란히 같은 궤도를 비행하듯 부드러운 연주를 들려줬다. 피아니스트 엘리자베스 조이 로가 게스트로 참여했다.
- 음악의 깊이를 더하는 시간
“앙상블의 구성도 더블베이스랑은 처음이고, 민제랑 같이 연주하는 것도 처음이라 저희한테도 굉장히 새로워요. 민제는 곡에 대한 해석이라든지 곡 성격을 빨리 습득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처음에 셋이 잘 찾지 못했던 의미들을 두 번, 세 번째 연습 때 찾아가는 속도가 빨랐던 것 같아요.”
출연자 모두가 같이 연주하는 곡은 ‘피아졸라의 사계’뿐이다. 각자의 개성이 다른 만큼 서로 맞춰가는 호흡이 중요하다. 그녀는 “구지 말을 하지 않아도 연주를 계속해가면서 본래 의미에 더 다가가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런 점이 굉장히 좋았어요”라고 말했다.
이번 연주회에서 그녀가 솔로로 연주하는 작품은 바흐의 ‘바이올린 솔로를 위한 파르티나 2번’이다. 그녀는 내년 상반기를 목표로 바흐 앨범을 준비 중이기도 하다. “연주할 때마다 느낌은 다 달라요. 요즘은 바흐의 ‘인간적’인 면을 표현하려고 노력해요. 바흐라는 작곡가는 평생 공부하고 같이 가는 작곡가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연주할 때 딱 한 가지 느낌으로만 말씀드릴 순 없을 것 같아요. 내년, 내후년, 그리고 10년 후에는 또 다른 의미로 연주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무대 위에 서는 연주자들은 작곡가가 만들어 놓은 작품을 청중들에게 전달하는 중간자 역할을 한다. 관객들은 연주자 스스로가 느끼는 감정과 해석이 덧입혀진 ‘단 하나’의 작품을 듣는 것이다. 김수연은 “관객들과의 교감은 어떻게 보면 제 자신이 느끼는 거죠. 객관적인 거라기보다는 주관적인 느낌이기 때문에 제가 집중력이 흩어지고 뭔가 확실하게 잡히지 않았을 때 ‘관객도 저랑 같은 느낌일 거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관객들은 또 개개인의 사람이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강하게 느꼈을 수도 있고, 다 다른 것 같아요.”
한 곡이 처음부터 끝까지 연주되는 과정에서 극적인 클라이맥스로 치닫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조용히 숨을 죽이고 들어야 하는 부분도 있게 마련이다. 그녀는 “숨을 죽여야 하는 순간에 그걸 따라주는 청중이 있을 때 연주자로서 감사하다”고 전했다. “그럴 땐 제가 어떤 힘을 받아서 음악에 더 심취하게 돼요. 그 악장이 끝나고 다음 악장으로 넘어갈 때 다시 사람들이 숨을 내뱉는 느낌이 오거든요. 아 정말 같이 애를 쓰셨구나, 이런 게 전해져요.”
- 우연처럼 시작된 바이올린, 운명이 되다
그녀는 유학생 부부의 딸로 독일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럼에도 유창한 한국어 실력을 자랑한다. 9살 때 뮌스터 음대 예비학생으로 들어갔고, 17살 때 정식으로 입학했다. 2008년 뮌스터 음대 대학원을 졸업했고, 지난해엔 뮌헨 음대에 입학해 최고연주자과정을 마쳤다. 김수연은 “5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시작했지만, ‘이 길이 내 운명’이라는 거창한 느낌을 가져본 적은 없어요. 어릴 때부터 별 어려움 없이 편안하게 연주해온 것 같아요. 하지만 요즘엔 ‘나만의 해석’에 대해 고민해요. 사람의 생김새가 모두 다르듯이, 나한테 가장 잘 맞는 테크닉을 찾으려고 해요. 크고, 부드럽고, 따뜻한 소리를 내고 싶어요”라고 전했다.
누군가는 글을 쓰고, 노래를 하고, 그림을 그리지만 김수연은 음악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 “음악이나 바이올린은 저의 삶과 열정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에요. 음악을 통해서 무대에 섰을 때 저의 감정과 생각들을 표현할 수 있는 통로가 되죠. 저의 인생의 일부이기도 하고요.”
자신도 젊지만 더 젊고 어린 예비 음악가들을 향해 진심어린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음악을 한다는 게 쉽지 않아요. 처음에는 일단 악기와의 싸움이 있고, 악기를 내 것으로 만들기까지는 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잖아요. 그것을 한 번 극복했다고 ‘끝이다’라고 말할 수는 없어요. 평생 연습을 해야되고 계속 갈고 닦는 과정이기 때문이에요. 앞으로 더 중요해지는 것은 얼만큼 음악에 대한 열정과 진실된 마음으로 임하는가 그런 게 자신의 색깔을 결정짓는 것 같아요. 그런 이유가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 이유 때문이라면 분명 좋은 방법은 아닌 것 같아요.”
얼마 전 그녀는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했다. 물론 연주 일정 때문이었다. 미국과 유럽은 서로 음반시장과 연주마켓 등 환경에서 차이가 있다. 김수연은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했다. 반응 역시 뜨거웠다. “그 때 제 연주를 들으신 분들은 제가 미국 스타일하고는 많이 다르고 새로운 해석을 보여줘서 굉장히 재밌는 공연이었다고 말씀해주셨어요. 저한테도 새로운 충격이었고요. 지금 생각해도 너무 좋은 기억이에요.” 아직은 스물셋. 보여줄 것이 너무나도 많은 그녀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의 연주가 앞으로도 이런 기분 좋은 기억으로 채워지길 바라본다.
(* 이 글은 월간 삼호뮤직 9월 호에 실린 글임)
뉴스테이지 최나희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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