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 리뷰] 경계를 넘어서다, 무용 ‘왕자호동’

왕자호동은 장미와 같이 정열적이다. 그는 짧지만 그 향만큼은 진하고 오랜 여운을 남기는 삶을 살다갔다. 그런 호동의 빨간 아우라가 무대를 적신다. 그가 등장하는 무대 곳곳에는 붉은색이 흐른다. 한없이 짧고 강렬하게 살다간 그의 삶을 대변한다. 왕자호동의 의상 역시 빨간색이다. 왕자호동이 등장하면 조명도 붉어진다. 그의 절도 있고 섬세한 몸놀림이 의상과 조명, 무대와 한 몸을 이룬다. 웅장한 무대는 그를, 그는 웅장한 무대와 앙상블을 이루며 관객에게 멋진 춤사위 선보인다. 무용 ‘왕자호동’은 한 점 망설임도 없이 1막, 2막 숨이 멎을듯한 유려한 몸놀림으로 꽉 메워 다채로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 짙어지는 사랑의 감정, 흐려지는 의식

 

무용 ‘왕자호동’은 손짓 하나로 모든 의사소통이 이루어진다. 불같이 뜨거운 사랑을 나눈 왕자호동과 낙랑공주의 손에는 절절한 사랑이 묻어난다. 그들은 이승에서의 인연이 짧다는 것을 아는지 손짓 하나하나에서 애절함과 안타까움이 배어 있다. 호동과 낙랑의 꿈만 같은 사랑은 무참히도 짓밟혀 결국 죽음이라는 종착역에 다다른다. 영혼이 빠져나간 육신에는 더는 체온도 감정도 남아 있지 않다. 목을 끌어안은 두 팔은 힘을 잃고 배회한다. 키스를 퍼붓던 입술은 딱딱하게 굳어 온기라고는 없다.

 

무대를 꽉 메우던 달콤한 둘의 사랑은 어느새 비극이 되어 관객에게 씁쓸함을 안긴다. 왕자호동의 슬픔은 무대를 넘어 객석에 자리한 관객에게 음악을 타고 전해진다. 두 귀를 울리는 촉촉하고도 웅장한 오케스트라와 두 눈을 매료시킨 왕자의 슬픈 몸짓이 관객의 심장을 짓이긴다.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을 직시한 왕자는 비극적이지만 영원한 사랑을 선택한다. 하늘에서는 그와 낙랑의 분쇄된 몸과 마음이 붉은 꽃이 되어 흩날린다. 몸과 마음이 땅에 스러진 순간, 둘은 영원한 사랑을 이룬다.

 

- 총체적인 무용의 집합소, ‘왕자호동’

 

무용 ‘왕자호동’을 통해 정형화된 발레 작품을 기대했다면 놀라운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발레라는 한 장르로 규정하기엔 신선하다. 무용 ‘왕자호동’은 무용의 삼분법으로 나뉘는 현대무용, 발레, 한국무용 등이 곳곳에 배치됐다. 왕자호동과 낙랑공주의 등장에서는 발레를, 호동의 호위 무사들의 절도 넘치는 동작에서는 한국무용의 간결함과 웅장함이, 흰 사슴의 애절한 춤사위에서는 현대무용의 세련미가 묻어난다. 쓱쓱 잘 비벼진 세 장르는 무용 ‘호동왕자’ 무대를 통해 완벽하게 구현된다.

 

왕자호동과 낙랑공주의 사랑이 돋보일 수 있었던 건 매 순간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무대장치 덕이다. 장면이 바뀔 때마다 스르륵 내려오는 무대 배경은 공간의 인지와 장면의 인지를 돕는다. 음악과 무대는 관객의 이해를 도우며 극의 몰입을 극대화한다. 음악과 더불어 둘의 아름다운 춤사위는 왕자호동과 낙랑의 애틋한 사랑을 오롯이 관객에게 전해준다. 왕자호동과 낙랑공주의 달콤하고도 가슴 미어지는 사랑은 여운을 남기며 관객의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뉴스테이지 박수민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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