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터 it] 구보씨와 함께 배회하는 경성의 하루, 연극 ‘소설가 구보씨의 1일’

언뜻 지루해 보이는 하얀 백지 위에 담담한 듯 그려진 크로키는 우리가 문학책 속에서 한번쯤은 본 ‘그’가 맞다. 트레이드마크처럼 정직하게 동그란 안경을 걸치고 심심한 표정을 지은 남자는 구보 박태원이다. 1930년대를 대표하는 젊은 예술가 박태원은 모던보이였다. 갖춰 입은 정장과 입에 물고 있는 담배, 멋스럽게 짚고 있는 지팡이며 날이 뾰족한 구두코를 보라. 찐빵모자와도 같은 바가지 머리가 거슬린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옆에 낀 책으로 보아 그는 문학에 심취된 모더니스트일 테다. 근대로 넘어가는 과도기 속에서 예술가들의 삶은 진정 고달팠을 것이다. 우울한 식민시대에 조금 안다하는 지식인들은 무기력하게 그저 다방에 앉아 혁명을 논하는 것이 다였을 것이다.

 

포스터의 하얀 백지위에 소설가 구보씨의 1일을 저절로 그려보게 된다. 소설가라면 늘 작품구상에 골머리를 앓을법 하다. 그러나 구보씨는 무미건조하며 권태로워 보인다. 사실 안경에 가려져 정확한 표정은 알 수 없지만 고뇌에 차거나, 과다 스트레스를 짊어진 심난함은 없다. 그런 그가 바라보는 1930년대 경성은 어떨까. 벗과 예술을 논하는 찻집의 안 모던하게 흘러나오는 LP로 돌아가는 재즈는 어느 정도의 습기에 젖어있을까. 치열했던 삶으로 인해 시장바닥과도 같을 경성의 길거리는 얼마나 혼잡할지 궁금하다.

 

연극 ‘소설가 구보씨의 1일’은 ‘깃븐우리절믄날’에서 1930년대 젊은 예술가들의 초상을 그렸던 성기웅 작, 연출의 초연작이다. 원작인 박태원의 중편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1일’은 근대 초기 서울의 모습과 예술가들의 초상을 담아낸 대표적 모더니즘 소설이다. 자유연애, 무성영화, 카페 등 당대 풍습과 언어가 이를 대변한다.

 

성기웅 연출은 이 작품에서 영상(일러스트, 동영상, 활자이미지), 음악, 조명 등을 이용해 텍스트를 이미지화하는 새로운 형식의 공연을 선보일 예정이다. 연극 ‘소설가 구보씨의 1일’은 원작소설에 대한 새로운 실험이다. 당시의 풍경과 풍속, 식민지 시대를 살아가던 지식인과 예술가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한다. 또한 소설 텍스트의 다성적 해체를 통해 연극성을 확장, 관객에게 다양한 해석의 기능성을 제시할 계획이다.

 

젊은 소설가 구보씨와 함께 1930년대의 경성을 배회하고 싶다면 오는 12월 2일부터 12월 31일까지 두산아트센터 Space111로 가면 된다.

 

 

뉴스테이지 강태영 기자 newstage@hanmail.net





[공연문화의 부드러운 외침 ⓒ뉴스테이지 www.newstage.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