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리뷰] 짧은 시간에 담아낸 선 굵은 연극사, 연극 ‘경성스타’

1930년대의 시대적 배경은 무척이나 흥미롭다. 한복저고리를 입고 커피를 마신다. 두 가지 이상의 다른 것이 혼재해 충돌하고 변화된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변화가 크면 충돌도 큰 것일까? 시대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예술로서의 연극만을 하고자 했던 연극인들이 있다. 하지만 벗어나려 해도 그 큰 흐름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일이다.

 

연극과 영화, 쇼가 하나였던 시대, 연극 ‘경성스타’는 일제강점기 초창기 극장의 풍경으로 시작한다. 관객이 객석에 앉기 위해 들어간 공연장에선 이미 복고풍의 배우가 공연 중이다. 관객의 얼굴에는 일찍 공연이 시작했나 싶어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한 사내아이가 “과자 사압쇼! 라무네 사압쇼!” 객석 사이를 누비고 다닌다. 흡사 타임머신을 타고 동양극장에 들어온 듯하다. 이 작품은 우리 연극의 암흑기라 불렸던 1920~1940년대 연극 상황을 무대 위로 끌어올린다.

 

작가적 상상력은 극작가 임선규와 최초의 근대극 여배우 이월화를 만나게 했다. 이들은 동시대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단 한번도 함께 작품을 해본 일이 없다. 작가가 정해놓은 가설에 배우들의 귀신같은 연기가 더해져 극에 몰입을 높인다. 극중극 형식인 연극 ‘경성스타’는 이월화와 월북한 당대 최고의 극작가 임선규의 작품을 중심으로 손질해 보여준다. 임선규는 비운의 작가임에 틀림없다. 남한에선 친일작가라는 굴레가 씌어져 아내 문예봉을 따라 월북을 한다. 극작가 임선규는 남한에선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북한에선 공산주의를 씹어댄 작품으로 그의 행적은 월북 이후 찾을 수가 없다.

 

“연극인은 근본적으로 이데올로기가 없어. 내가 북으로 가는 것은 내가 하고 싶은 연극을 하기 위하여 가는 것이고, 네가 남쪽을 선택하는 것은  남쪽이 너에게 기회를 주기 때문이야, 그러니까 우리, 서로 헤어지더라도 서러워 말자. 연극 만세다”

 

연출가 이윤택, 그의 연극적 페르소나 김소희, 연희단거리패. 이름이 주는 무게감이 있다. 이들의 이름은 작품성의 척도처럼 연출력과 연기력이 밀리지 않는다. 신들린 듯한 연기로 객석을 휘어잡는 배우 김소희는 극 중 ‘월희’ 역으로 분했다. 그녀가 내뱉는 대사 “조선의 여배우들은 연극을 하기 위해 모두 집을 나갔어 그래서 조선의 여배우들은 노라야, 그러니까 집나간 노라가 어디로 갔겠어, 바로 극장이야” 여지없이 관객은 그녀가 내뿜는 아우라에 압도된다. 그녀가 분하는 ‘월희’는 극중극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부활’, '운명‘, ‘빙화’에서 혼신의 연기를 보여준다. 이외에도 김용래, 오동식, 변진호, 윤정섭, 배보람 등 연희단거리패의 간판배우들이 출연한다.

 

극에는 당시 조선의 연극계를 거쳐 간 많은 연극인들이 등장한다. 홍해성, 박진, 유치진, 이해랑 등 이들의 삶과 선택, 그리고 이들의 연극적 지향점을 일일이 분별하여 이해를 하기는 힘들다. 다만 이 작품을 통해 많은 연극인과 여배우들이 비참한 시대를 통과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누군가는 꼭 지나가야 했던 길, 어두운 터널이 지난 끝에는 찬란한 영광이 있을지니 그것을 지금의 연극후배님들이 누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뉴스테이지 전성진 기자 newstage@hanmail.net





[공연문화의 부드러운 외침 ⓒ뉴스테이지 www.newstage.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