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리뷰] 가드올려! ‘이기동체육관’
무대 위는 아픔이 넘친다. 체육관이라고 하기에는 갑갑한 공기가 가슴을 억누른다. 링 위에서 스파링하는 이들도 설렁설렁이다. 게다가 관장은 체육관 한켠에서 대낮인데도 쿨쿨 잔다. 신입단원이 오건 말건 개의치 않는다. 그가 신경 쓰는 건 빚 독촉 전화뿐. 흐리멍덩한 그의 눈에는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다. 전설의 복싱선수 이기동을 기대했던 또 다른 이기동은 그런 관장의 모습에 맥이 풀린다.
- 시간이 멈추다
이기동체육관 속 시간은 굳어 있다. 세상은 변해도 이기동체육관은 텅 비어 버린 채 흐르는대로 살아가는 관장처럼 가라앉아 있다. 그런 정체 속에 뛰어든 인물이 이기동이다. 꿈과 희망을 복싱에서 찾고자 나타난 그는 물 만난 물고기마냥 파닥거린다. 그 거침없고 단단한 몸짓은 굳어 있는 사람의 마음을 후려치고 단원들은 서서히 깨어난다. 당장 삶이 변하지는 않지만 그들은 화려한 비상을 위한 조심스러운 날갯짓을 시작한다. 오로지 맨주먹 하나로, 무거운 현실의 공기를 거친 숨으로 몰아내며 도약을 준비한다.
- 원투 원투, 슉슉
배우들이 가쁜 숨을 몰아쉬자, 관객은 짜릿한 쾌감을 맛본다. 그들의 처절한 움직임은 희망을, 꿈을 좇는 자신의 모습과 다르지 않기에 관객은 그들을 응원한다. 뜨겁게 내뱉은 관원들의 숨결은 객석을 뒤덮고 허공을 날리는 상쾌한 펀치는 관객의 심장을 요동치게 한다. ‘어서 살아 숨 쉬라’며 자신만의 희망을 찾을 것을 채근한다. 멍한 눈으로 무대를 응시하던 관객은 돌연 입을 악물고 느슨해진 주먹을 꽉 쥔다. 마치 희망이라도 잡는 것처럼.
- 자기와의 화해
연극 ‘이기동체육관’에는 관원들의 열정과 땀이 아닌, 사람들의 아픔의 향취가 그득하다. 탁하고도 쓰린 향이 온 사방으로 퍼지며 주변 사람들까지 기어코 아프게 만든다. 도저히 치유되지 않은 것 같은 상처는 곪을 대로 곪아 굳어버린 심장처럼 시간마저 정지시킨다. 빛을 잃은 그들의 눈동자는 살아 있는 박제를 연상시키며, 힘이 풀린 발걸음은 꺼져가는 희미한 불빛 같다. 서로의 아픔에 짓눌린 그들은 타인의 아픔을 보듬을 여력이 없다. 각자의 아픔을 움켜진 채 뒤돌아 서 있다. 자신의 아픔과 마주한 순간, 심장이 찢기는 고통을 맛보지만 찢겨진 살은 다시 붙듯 그들은 점차 자신의 상처를 슬며시 어루만진다. 고통에서 자유로워지자 그들의 얼굴에는 생기가 돌며 멈춰 있던 심장은 쿵쾅거린다.
- 이상을 향해 발을 내딛다
답답한 현실은 나를 옥죄어 오지만 이기동체육관의 사람들은 현실에 무릎 꿇지 않는다. 가드를 바짝 올리고 세상이 날리는 묵직한 펀치를 가볍게 받아낸다. 하나도 아프지 않은 것처럼 날쌘 펀치를 거듭 이겨낸다. 눈두덩이 시퍼렇게 물들어도 그들의 심장은 여전히 뜨겁고 아직 마지막 종은 울리지 않았다. 경기는 계속 된다. 그들이 가드를 내지 않았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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