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의 작은 반응이 배우에게 유기적인 힘을 줘요” 뮤지컬배우 이건명 인터뷰 ②
뮤지컬의 외국진출에 관해 얘기하는 그의 표정과 말투에서 자긍심이 느껴졌다. 데뷔한 지 16년이 된 이건명에게 뮤지컬의 의미는 하루하루 더욱 단단해지고 있다. 자신에게 있어 뮤지컬은 “나의 전부”라고 말하는 이건명과 함께 뮤지컬의 이모저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 현재 우리나라 뮤지컬 제작환경에 대해 배우로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직은 과도기죠. 배우가 충분히 연기에만 몰입할 수 있게 해 주는 작품이 있어요. 연기만 잘하면 잘 만든 톱니처럼 돌아갈 수 있죠. 하지만 아직 그런 작품, 단체가 많지 않아요. 창작이 피어나는 과정이긴 하지만 아직은 라이선스에 의존해있는 상황도 과도기라고 할 수 있죠. 예전에 뮤지컬 ‘렌트’ 오리지널 캐스트 공연을 보고 정말 부러웠어요. 뉴욕에 사는 사람이 뉴욕 얘기를 하니까 정말 자연스러워 보였거든요. 저는 뮤지컬 ‘렌트’를 세 번이나 했지만 부자연스러웠어요. 서울 사는 사람이 뉴욕 사는 연기를 하니까 부자연스러운 거죠. 우리가 그들보다 노래, 연기를 못 하는 건 아니거든요. 아직 우리나라엔 서울사람 연기보다 뉴욕사람 연기를 해야 하는 일이 너무 많아요. 아직은 뮤지컬의 역사가 길지 않기 때문에 배워나가야 할 부분이죠.
- 아직 과도기인 상황에서 뮤지컬 ‘투란도트’가 중국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을 때 정말 뿌듯하셨을 것 같아요.
정말 뿌듯하죠. 예전에 뮤지컬 ‘갬블러’ 해외공연을 갈 때 작은 태극기를 다 사가려고 했어요.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우린 국가대표다’는 의미로 다 달아주고 싶었거든요. 외국에서 국가대표의 마음가짐으로 공연했을 때 관객들이 열광해주면 정말 뿌듯해요. “봤어? 이게 코리안이야. 이게 코리아야”라고 얘기해주고 싶을 정도예요.
- 뮤지컬을 정말 사랑하시는 게 느껴져요.
뮤지컬배우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발레 배우고, 성악 하는 삼촌한테 노래를 배웠어요. 대학교 때도 항상 뮤지컬만 했고 지금까지 뮤지컬밖에 안 했어요. 만약 뮤지컬 못하게 되면 울 것 같아요. 엉엉 울 거예요. 뮤지컬밖에 없어요. 그래서 지금 정말 좋고 행복해요. 뮤지컬 시장이 이렇게 커지고 뮤지컬배우의 위상이 높아진 것에 대해 눈물 나게 고마워요. 가끔 겹치기 출연하는 것에 대해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을 들어요. 뭐가 힘들어요? 무대에 있을 때 제일 좋은데. 매일 무대에 있고 싶어요. 처음 뮤지컬 시작할 땐 더블캐스트가 없었어요. 어느 순간 더블이 생겨서 일주일에 3일밖에 일을 못하는 게 싫어요. 일주일에 6일 공연하고 하루만 쉬고 싶어요.
- 최근 뮤지컬 ‘캐치 미 이프 유 캔’에서는 다섯 명의 프랭크가 나왔잖아요. 어떠셨어요?
연습 때 호흡 맞추는 건 어려워요. 하지만 공연에 들어가면 항상 똑같은 호흡이 오는 게 아니니까 재미있어요. 같은 대사를 해도 주는 에너지들이 다르니 그만큼 재미도 늘어나는 것 같아요. 대신 그 정도까지 맞춰가는 과정은 힘들죠.
- 뮤지컬에서 음악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요?
뮤지컬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죠. 대본에 있는 ‘활자’와 같은 의미에요. 뮤지컬 음악은 노래뿐만 아니라 전주, 반주, 후주, 간주까지 다 포함되잖아요. 뮤지컬 ‘미스사이공’ 음악이 뮤지컬 음악으로써 정말 잘 만들어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노래가 끝나고 무대전환이 되는 동안 후주가 나와요. 그 후주 안에 극이 어떻게 진행될지 다 들어있어요.
- 뮤지컬은 장르 특성상 관객과의 밀접도도 높고, 피드백도 빠른 편이잖아요. 관객과의 소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정말 중요하죠. 배우 생활을 하다 보면 어떻게 치는 박수인지 눈감고도 알 수 있어요. 공연이 끝나고 커튼콜 때 박수소리만으로 벌써 배우의 가슴은 터져요. 커튼콜뿐만 아니에요. 특히 소극장 공연할 땐 관객의 작은 반응들도 배우들에게 힘이 돼요. 관객이 어느 순간엔가 다 집중하고 있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그러면 그날 공연은 정말 좋은 공연이 돼요. 예를 들어, 노래한 뒤 뜨거운 박수가 나오면 그다음에 120% 할 수 있어요. 하지만 박수가 작게 나오면 ‘내가 뭘 잘못했나?’ ‘소리가 이상한가?’ 생각이 들어요. 이런 잡생각이 들면 다시 몰입할 시간이 필요해요. 공연은 이렇게 반응이 오가는 장르다 보니 그런 교류가 너무 소중해요.
- 관객들이 집중했던 걸 느껴서 특별히 좋았던 순간이 있으신가요?
많아요. 소극장을 잊지 않고 자꾸 하려는 이유도 그런 느낌들이 자주 들어서예요. 소극장은 내가 어디 있든 나의 작은 소리에도 관객들이 바로 시선을 주니까 연기를 쉴 수 없어요. 러닝타임동안 그 안에서 살지 않으면 바로 들통 나요. 내가 몰입하지 않으면 끝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집중력도 배가 되죠. 제가 고개를 돌리면 관객들의 시선이 따라오는 게 느껴질 정도거든요. 칭찬은 돌고래를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잖아요. 좋은 에너지로 건드려주는 건 배우를 춤추게 하는 것 같아요.
- 뮤지컬 배우를 꿈꾸는 지망생들에게 꼭 해주고 싶으신 말씀 있으신가요?
진짜 하고 싶은지 물어보고 싶어요. 배우는 즉각 반응할 수 있어야 돼요. 그래서 언제나 가슴을 ‘몰캉몰캉’, ‘말랑말랑’하게 유지해야 해요. 슬퍼서 눈물 흘릴 때도, 기뻐서 웃을 때도 거짓되지 않은 그대로를 표현할 수 있는 감성훈련이 필요해요. 그런 감성훈련을 하면 세상 살면서 느껴지는 게 많아요. 특히, 아름다움을 보는 눈이 점점 더 다양해지고 넓어져요. 그런 삶을 산다는 건 정말 행복하죠. 그래서 배우는 행복한 직업이에요. 하지만 정말 하고 싶은지가 중요해요. 정말 하고 싶으면 달리는 말처럼 뛰어야죠. 이미 뛰고 있는 사람들보다 좀 더 앞서서 좀 더 좋은 무대, 모습 보여주고 싶다면요.
이지혜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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