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리뷰] 객석 사이에서 펼쳐지는 극한의 몰입 "카포네 트릴로지 - 로키"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는 렉싱턴 호텔의 비좁은 방 661호에서 각각 1923년, 1934년, 1943년의 시간차를 두고 벌어진 세 가지 사건을 ‘ 코미디-서스펜스-하드보일드’ 라는 각기 다른 장르로 그려낸 옴니버스 작품이다. 영국 연극계에서 천재 콤비로 불리는 '벙커 트릴로지'의 제이미 윌크스의 대본을 원작으로 하였다. 또 '프론티어 트릴로지', '사이레니아'의 제스로 컴튼이 연출을 맡았던 작품이기도 하다. 지난해 국내 초연 이후 1년 만에 재연된 '카포네 트릴로지'는 사방과 천장이 모두 벽으로 막힌 7평 남짓한 호텔 방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리얼한 무대를 통해 극한의 몰입감을 선사하고 있다. 원작에서 부분 각색된 이번 작품은 원작보다 더 드라마틱하고 더 강렬하다. 

  

 

1. 숨 막히는 공간에서 숨 막힐 듯 폭발하는 과잉된 이야기가 그려진다.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로키 편’(이하 카포네 트릴로지)은 숨 막히는 공연이다. 7평 남짓한 정말 숨 막히게 좁은 공간의 무대에서 연극은 펼쳐진다. 무대는 두 개의 계단식으로 된 객석 사이에 있다. 객석과 무대는 배우의 표정 변화 하나하나 다 보이는 거리로 객석과 무대 사이는 50cm밖에 되지 않는다. 자칫하면 발이 밟힐듯할 정도로 객석과 무대는 딱히 구분되어 있지 않다. 호텔 방 전체에 통일성을 주기 위해 객석 의자의 질감, 색감, 그리고 관객의 등 뒤, 천장 바닥과 좌·우 벽까지도 신경을 쓴 느낌이 들었다. 그 덕분에 이 작품에서 객석, 배우, 공연장이 하나가 된다. 영국 원작과는 다르게 한국 각색 공연에는 호텔 복도와 호텔 로비가 추가되었다. 이는 호텔식 무대에 관객이 들어왔을 때 덜 당황스럽게 하는 장치이다. 공연장으로 들어오면서 먼저 로비를 보고 복도를 거쳐서 방으로 들어오는 시간을 줌으로써 좁은 호텔 방 무대가 주는 거부감을 덜고 점층적으로 ‘아 이곳은 이런 곳이구나’하는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다.

무대의 전체적인 시대는 1900년대 초반의 시카고 렉싱턴 호텔이다. 실제로 1890년대 초 세워진 렉싱턴 호텔은 1920-30년대에 알 카포네와 그 폭력조직의 아지트가 되었으며 꼭대기의 펜트하우스는 알카포네의 본부로 삼았다고 한다. 무대로 쓰이는 렉싱턴 호텔 661호는 설정상 호텔 직원이 쓰는 가장 허름하고 비좁은 방이다. 비좁은 방이 주는 폐쇄성을 살리기 위해 장춘섭 미술감독은 천장을 관객들 머리 위에 위치하여 관객들이 극 중 인물들과 함께 방 안에 갇혀 있는 느낌을 더 리얼하게 받도록 설정하였다. 그리고 관객들이 약 한 시간 넘는 시간 동안 실제 호텔 방에 들어와 있는 느낌을 주기 위해 손만 뻗으면 만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공간과 소품의 리얼리티가 돋보였다. 옷장이나 거울, 양초, 작은 물컵까지도 호텔 방 안에 배우들과 같이 갇혀있는 느낌을 준다.

 

 

2. 연극인 듯 아닌듯 “가장 연극적이면서 연극을 탈피한 작품"
김태형 연출가는 다양한 콘텐츠가 존재하는 지금 이 시대에 관객들이 연극을 보러 오기 위해서는 연극만이 줄 수 있는 ‘차별성'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좁은 공간에서 배우와 관객이 함께 있으면서 훔쳐보듯 이야기를 체험하게 하고 싶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이것은 매우 연극적이면서 동시에 영상을 보는 듯한 느낌도 든다. 관객들이 영화 한 편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는 보통 연극작품에서 볼 수 없는 무대세트와 의상이 굉장히 인상적이다. 또한, 원작보다 많은 상징과 오브제를 부여해 다양한 상상과 해석을 할 수 있는 드라마로 완성했다.

영국 원작은 에딘버러 축제에서 공연되었다. 각색자 지이선 작가는 즐겁게 즐기는 축제라는 점에서 원작의 공연이 시각적인 측면이나 작품의 완성도 자체가 약간은 거칠다고 느꼈다. 그래서 한국 각색 작품에서 원작의 50-70% 이상의 대사를 버리고 다시 썼으며 원작에는 없는 오브제 ‘빨간 풍선’을 넣었다. 추가된 이 오브제는 작품에서 일상적이면서 평범한 느낌을 주면서 극의 긴장을 유발한다. 그리고 룰라 킨이 에피소드의 끝에서 당당히 문밖으로 나가듯이 빨간 풍선의 최후도 주인공들의 끝과 같다.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가 ‘가장 연극적이면서 연극을 탈피’하는 데에는 이 작품에 쓰인 2~3곡 정도의 넘버들도 한몫했다. 롤라 킨이 광대들과 같이 댄스음악을 선보이며 노래할 때 뮤지컬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착각도 들었다. 기존 연극작품들보다 음악에 공을 꽤 들여 오프닝 곡인 ‘룸661’부터 커튼콜에 다시 쓰인 댄스음악까지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의 음악들은 작품 전체를 더 드라마틱하게 만들어주었다. 특히 오프닝 곡에서 글로켄슈필로 시작해서 목관으로, 현으로, 금관으로 점점 확장하는 편곡은 관객들이 호텔 방의 공간으로 이동하는 것을 도와준다.

 

3. 연기가 아닌 롤라 킨 그 자체의 ‘김지현’ 배우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는 총 3명의 배우가 등장한다. 원톱이 아닌 3명의 배우가 자신만의 에피소드를 가지고 동등한 분량으로 작품에 등장한다. 따라서 한 작품에서 많게는 한 배우가 10명의 캐릭터를 소화해내기 때문에 다양한 연기 변신을 볼 수 있는 재미도 쏠쏠하다.
하지만 극의 흐름으로는 주인공은 있기 마련이다. ‘로키’ 편에선 렉싱턴 호텔 바의 은퇴한 쇼걸 ‘롤라 킨’이 그 주인공이다. ‘롤라 킨’은 호텔 방에서 여러 남자를 만나면서 누군가와는 도주를 약속하기도, 누군가와는 결혼을 약속하기도 하지만 ‘빨간 풍선’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그저 사랑받고 싶어 하는 여자이다. 배우 김지현이 연기하는 ‘롤라 킨’은 참으로 진솔하다. 그녀의 노래 자락부터 손짓 끝에서 풍기는 분위기까지도 ‘롤라 킨’을 너무 진실 되게 보여준다. 그녀가 부르는 롤라의 노래 ‘아무도 사랑하지 않아’는 너무도 슬프지만, 시카고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녀가 되뇌었던 마음이 아픈 노래이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아야 이 도시에서 살아남을 수 있어’라는 가사를 부르면서 배우 김지현은 롤라 그 자체가 된다. 배우 김지현은 남자 앞에서는 앙큼한 쇼걸이지만 호텔 방에서 홀로 있을 때 어딘가에 의지하고 싶으면서도 호텔 방에서 독립하고 싶은 롤라의 감정선을 잘 보여준다. 광대들과 공연을 선보일때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당당한 척하는 쇼걸을 연기한다. 커튼콜까지도 그녀는 신나는 음악을 노래하면서 관객들의 흥을 높인다. 작품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는 너무 과하지도 않게, 부족하지도 않게 20세기 초반 시카고를 살았던 ‘롤라 킨’ 그 자체를 보여준다.  

 

사진제공_스토리피

 



문소현 관객리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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