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양이늪 > 헤스터의 서이숙

헤스터의 색깔을 물들인 백지장 서이숙 < 고양이늪 >의 서이숙을 이야기 하기 전에 < 고양이늪 >에 대해 잠시 상식적인 내용에서 짚고 넘어가 보자. < 고양이늪 >은 희곡의 혁명을 불러 일으킨 세계적인 극작가로 활동중인 마리나 카의 대표작이다. 아일랜드 서사시의 분명함과 순수함을 결합시키는 현대적인 희랍비극이다. 이야기를 잠깐 훔쳐 보면 아일랜드 한 농가의 습지에서 시작한다. 떠돌이 헤스터 스웨인은 어린 시절 자기를 버리고 떠난 어머니를 잊지 못해 고향인 습지를 떠나지 못하고 살고 있다. 10여 년 전 10살 연하의 애인, 카사지를 만나 딸 조시를 낳고, 빈농이던 그의 경제적 성공을 돕지만 세월에 흘러 안정된 생활을 누리게 된 그는 그녀를 버리고 이웃 부농의 어린 딸과 결혼을 하겠다며 헤스터에게 떠나달라고 요구한다. 어머니에 이어 남편에게 또 다시 버림을 받게 된 헤스터는 절망과 상심으로 무너져 간다. 남편 카싸지는 결혼식 전에 마을을 떠나라 최후통첩을 하고, 어린 딸마저 빼앗기게 된 헤스터는 막다른 골목으로 몰리게 된다. "이 작품에 왜 저를 선택했을까? 하고 많이 생각했어요. '헤스터'라는 인물은 모든 배우들이 탐을 내는 배역이고 탐을 내는 배우들이 많거든요. 저에게 주어진 이상 제가 가지고 있는 이성과 감성을 겸비해서 감성적으로 무대 위에 풀어 놓는 것이 아니라 절묘하게 절충되고 기존에 가지고 있지 않는 어떤 다른 에너지를 꺼내 놓아야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 고양이늪 >은 여자배우라면 한 번쯤 선망의 대상이 될 만큼 매력적인 작품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헤스터'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고통이 필요하다. 이유는 배우로서 가지고 있는 이성과 감성만이 아닌 자신 안에 있는 미묘한 에너지까지 꺼내어 놓아야 하기 때문에 다른 배역을 맡은 것보다 배가 더 힘들다. '헤스터'라는 인물은 캐릭터로 보통내기의 인물은 아니다. 떠돌이에 즉흥적이고, 원시적이고, 자아도 강하다. 한 사람이 여러 종류의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은 그리 만만하지 않은 작업이다. 그러나 '헤스터'는 여러 종류의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보다 한 사람 안에 다중적인 인물들을 그려내야 한다. 그것은 기본적인 본성의 헤스터라는 인물에서 다중적인 캐릭터를 연기한다고 해도 근본은 헤스터에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더군다나 무대도 적은 무대가 아니기 때문에 그녀의 연기력으로 1시간 30분 동안 큰 무대를 이끌어 간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닌 것이다. "헤스터라는 인물이 보통 인물은 아니에요. 아일랜드에서의 '떠돌이'라는 개념이 우리나라에서는 딱히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없잖아요. 정서도 틀리고. 그래서 소외된 사람들에게 대한 이야기로 생각하고 여러가지 이유와 해석을 붙이기 시작했어요. 다변하는 성격이거든요. 집착하고 광기있고, 여성적인 면도 드러내고, 인간의 가장 원시적인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고요. 절충해서 각 장마다 두드러지고 강조되는 부분을 밀착시키려고 노력했어요. 배우가 이 작품을 해내면서 매력을 발산할 수 있는 역할이고 또 작품인 것 같아요. 1시간 30분 내에 다양한 상황에 헤스터의 상황을 표현해 내는 것이 저에게는 큰 숙제이죠.” 연출과 배우는 서로에 대한 역할에 충실히 집요하게 장점을 끌어내고 있다. 중성적인 매력을 지닌 서이숙을 연출 한태숙은 디테일한 작업에 들어가 서이숙의 다른 정서나 에너지를 끌어내고 있다. < 고양이늪 >은 긴장을 늦추고 갈 수 없는 작품이기 때문에 배우가 그만큼 밀도 깊게 가져가야 한다. 그것은 연출이 가져갈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러기에 배우가 무대 위에서 긴장감과 밀도를 조절하면서 가야 하는 부분이다. 연출은 단지 그 기를 실어 주는 작업을 무대 위에 오르기 전까지 전달해 줄 뿐이다. "연출 선생님이 경계선을 잡아 주세요. 남성성, 중성성, 원시성, 여성성 등을 잡아 주시는 거죠. 한 쪽만 부각시키게 되면 다른 쪽은 다 죽게 되기 때문에 어느 한 쪽에도 치우칠 수가 없는 거죠." 그러면서도 극 속에 헤스터는 즉흥적으로 삶을 살고 있다. 계획이라는 것이 없다. 이런 환경과 저런 환경에 쉽게 길들여지는 그런 여자가 되어 있는 것이다. "이 여자에게 화두는 엄마에게 버림을 받았다는 것이 큰 화두인 것 같아요. 공연이 끝날 때까지 헤스터가 말한 것이 진심이었는지 모를 것 같아요. 자기가 말하면서도 진심이었는지를 알지 못하는, 엄마에 대해 버림받았다는 불안감이 집착으로 엄마의 끈을 놓지 못하는 헤스터의 세계를 이해할지 모르겠어요.” 서이숙은 자아를 논할 정도로 헤스터에 대해 분석이 되어 있다. 본능적인 욕구라던가 자기의 근본에 대한 원시성까지도. 여자로서가 아닌 한 인간으로 자기가 죽임을 당한다고 해도 졌다고 생각하지 않고 투쟁을 하는 헤스터를 머리 속에서 가슴 속에서 그리고 있는 것이다. < 고양이늪 > "늪이라는 것이 습지잖아요. 빨아들이는 것. 운명에 대해서 타고난 운명을 벗어나고 싶은데 무엇인가 나를 끌어 들이는 곳. 그것이 고양이늪이죠." 서이숙은 고양이 늪을 우리식으로 풀고 있다. 헤스터의 떠돌이, 집착, 남성성, 여성성 그리고 중성성. 한 인간이 지고가는 업보라고 생각한단다. '한'과도 일맥상통한 부분이 있다. 그래서인지 헤스터라는 인물을 서이숙은 잘 그려낼 수 밖에 없는 인간으로 태어났을지도 모른다. 서로에 대해서 거부할 수 없는 운명 같은 느낌이랄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문화혜택을 받지 못하던 그녀가 졸업하고 처음으로 연극이라는 것을 보게 된다. 연극을 본 서이숙은 실업팀에 코치로 들어갔다가 모든걸 그만 두고 극단 단원모집 원서를 내고 오디션을 본 후 그녀는 극단으로 입단하게 된다. 화술이 좋다는 평을 받으면서 그녀는 3년 동안 극단에서 공연을 하며 전국연극제에서 수상도 하게 된다. 3년이 지나고 극단을 떠나와 서울로 무조건 상경하여 극단 미추로 들어 간다. 3개월 연수를 받으면서 훈련을 받고 미추에서 작품을 하게 된다. 그리고 외부작품도 하게 되었다. 그녀는 중앙대학교에 만학도가 되었고, 대학원에 재학 중이다. 1986년 대한민국연극제 신인연기상 수상을 시작으로 하여 2003년 히서연극상 기대되는 연극인과 2004년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수상하였다. 서이숙이라는 이름이 알려지게 한 작품 중 주목받는 작품은 < 허삼관매혈기 >에서 대범한 아내 허옥란 역으로 주목 받았고, < 정글 이야기 >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늑대대장 사마루 역, < 최승희 >에서 최승희의 마지막을 지키는 신비의 여인 역을 통해 상을 수상하게 된 것이다. "작품을 할 때마다 감탄해요. '이렇게 완벽한 작품이 있을 수가 있나', '이 배역은 나랑 정말 맞아.'하면서 작품마다 푹 빠지는 것 같아요. 건방지다 할지 모르겠는데 작품하고 연애하는 것 같아요. 연애하면 즐겁잖아요.” 작업을 할 때 어려운 점도 많다. 그러나 그녀는 연애하는 것 같다고 고백한다. 서이숙은 배우로서 백지장 같은 인물이다. 매 작품마다 새로운 색깔의 물을 들인다 그리고 다시 백지장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물을 들이는 배우이다. 그녀의 매력은 거기에 있었다. 그래서인지 작은 역에서부터 큰 역을 맡을 때의 그녀의 마음 가짐은 언제나 한결 같다. "모든 관객이 나를 보는 것 같은 느낌으로 무대에 서요. 원칙적인 것과 배우로서 필요한 것들을 하나하나 쌓아서 뿌리가 굳건해지면 배우의 길이 험난하다고 해도 걸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그녀가 배우로서 생각하는 것을 함축하여 말하고 있다. 자기 것만 표현하기 위해 자기만 앞서가는 작품은 언제나 망가진다. 모든 배우들과 함께 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끝까지 뭉쳐서 한 마음으로, 극에 대한 자세의 일치점을 가지고 가야 한다. 그래야만 관객들과의 만남에서도 그 열정과 에너지를 뿜어 낼 수 있는 것이고 관객들은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서로 힘이 된다면 좋은 작품, 좋은 배우가 나온다는 생각을 서이숙은 가지고 있다. “삶의 목표가 뭐냐고 묻는다면 이 길을 가야 하기 때문에 가는 거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냥 연극 잘하면서 살고 싶죠. 즐기면서 살고 싶고요.” 서이숙은 참 단순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녀의 단순함에 깊이가 있다. 그의 한도 끝도 없는 연기의 세계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그녀만이 알고 있겠지만 그녀도 그 깊이를 잘 알지는 못한다. 그녀 안에 잠재하고 있는 것이 아직 안에 많이 남아 있어 그 열정을 볼 수 있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을 할 뿐이다. 색다른 경험을 하고 싶으신 분들에게 권하고 싶다고 한다. 색다른 연극에 여자 작가, 연출, 배우가 주인공인 작품에서 색다른 경험을 하셨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있다. 또한, 무대미학과 사람의 심리를 조합하고 있는데 무대에서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한다. 서이숙은 < 고양이늪 >에서 백지장에 어떤 색깔을 물들이고 무대 위에 서는지 확인하시기 바란다. ----------------------- 글 : 이준한(인터파크 공연팀 allan@interpark.com) 사진 : 이대훈 (wonderfuli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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