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나와 홍매와> 우리 시대 아버지들을 위한 위로의 굿

“사람이 산다는 건 떠나기 위해 걸어가고 있는 거다, 이런 말도 있지 않나.”
간암 말기 환자로 죽음에 다가서고 있는 남편이자 아버지 역으로 분하고 있는 신구의 말이다. 신구의 아내 홍매 역으로 등장하는 손숙 역시 “연극 같기도, 일상 같기도 한 작품”이라며 삶의 한 자락이 이 작품이라 말한다. 연극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의 이야기이다.

제6회 차범석 희곡상 수상작이기도 한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는 작가 김광탁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다. 간암 말기 아버지가 간성혼수 상태에서 굿을 해 달라고 말했다는 작가는, “우리 시대 아버지들을 위한 위로의 굿을 한판 올리는 의미로 이 작품을 썼다”고 말하며 “오직 배우의 힘에 의해서 살 냄새, 일상 속 평범한 삶의 결들이 들어날 수 있기를 바랐다”고 덧붙였다.


‘배우의 숨결, 삶의 결들’을 드러낼 수 있는 배우로 작가가 강력히 원했던 사람은 신구와 손숙. 말기 간암환자인 아버지 역의 신구는 세상을 떠나는 역할로 “아버지라는 인물이 가시는데 이루지 못한 몇 가지 일들이 있어, 그게 걸림돌이 되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소회를 조심스레 꺼내어 놓는 모습이다.

“그러니까 살아 생전에 계획하고 이루려고 했던 걸 다 이루고 떠나는 분들은 행복한 분들이라고 생각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 죽는다는 게 숨 들이쉬었다 못 내쉬면 죽는 거고, 그 차이다. 나 역시 여러가지를 느끼고 반성하면서 이 작품을 하고 있다.”


처음엔 작품에 대한 큰 기대가 없었다는 어머니 홍매 역의 손숙은 “처음 대본을 읽고 너무 많이 울어서 어떻게 끌고 가야 할 지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한다. 특히 2주 전 무척 사랑하는 후배의 임종을 보며 생과 사가 별게 아니라는 걸 많이 느꼈다는 그녀는, “홍매라는 엄마는 자식과 남편 사이의 아픔, 그런 게 있는 것 같다. 사실 크게 사이가 좋았던 남편도 아니었지만, 툴툴거려도 결국 아내 밖에 없지 않나, 결국 남는 건 부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그녀는 “근래 한 작품 중 가장 아팠던 작품”으로 이번 무대를 꼽기도 했다.

연출을 맡은 김철리는 “이 시대가 자꾸 거대담론 같은 것에 휩싸여가는 것 같고, 실제적인 삶과 죽음에 대해 굉장히 관념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이에 반해 “작가의 경험에 기초해 어떻게 하면 살 냄새가 날 것인가를 기본으로 생각했다”는 이번 작품은 “젊은 배우가 머리에 흰 칠 하고는 절대 하지 못한다”고 강조하면서 “두 선생님들이 인생을 많이 사셔서 굉장히 편하게 작품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아버지와 어머니 외, 극중 화자인 ‘나’이자 둘째 아들 동하 역엔 <푸르른 날에> <전명출 평전> 등의 정승길이, 푼수지만 미워할 수 없는 며느리 역엔 <에이미> <33개 변주곡>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등에 출연한 서은경, 그리고 옆집에 사는 정 많은 정씨 아저씨 역엔 <고도를 기다리며> <과부들> 등에 서온 이호성 등이 맡는 등 연기파 배우들이 무대를 채우고 있다.

“가슴, 몸, 머리가 골고루 조화로운 작품으로 만들고 싶었다”는 김철리 연출이 “배우와 관객의 진정한 교류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는 연극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는 지난 9월 10일 서초동에 위치한 흰물결아트센터 개관작으로 개막, 오는 10월 6일까지 계속된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기준서(www.studiocho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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