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마음 속에 자리한 악마를 끄집어내다, <메피스토> 개막

선과 악이 공존하는 인간의 깊은 내면을 조명한 <메피스토>가 지난 4일 무대에 올랐다. <메피스토>의 제작진은 이날 공연에 앞서 작품의 일부 장면을 언론에 공개했다.

연극 <메피스토>는 뮤지컬 <왕세자 실종사건>, 음악극 <더 코러스-오이디푸스>등을 함께 만들어온 서재형 연출·한아름 작가의 작품으로, 괴테의 <파우스트>를 새로운 시각으로 재해석해 110분짜리 연극으로 재구성했다. 작품의 중심이 ‘파우스트’에서 ‘메피스토’로 옮겨진 이 작품은 지혜와 진리를 추구하는 파우스트 박사가 악마 메피스토를 만나며 벌어지는 일을 담았다. 메피스토는 파우스트의 깊은 내면에 존재하는 악을 상징하기도 한다.

특히 이 작품은 타이틀롤 메피스토 역에 <베르테르><번지점프를 하다> 등에서 활약해온 여배우 전미도가 캐스팅되면서 개막 전부터 궁금증을 자아냈다. 파우스트의 영혼을 담보로 그에게 쾌락의 세계를 보여주는 메피스토 역은 이제까지 주로 남자배우가 맡아왔기 때문이다. 드라마 <상속자들>과 연극 <단테의 신곡>등에서 출연해온 정동환이 파우스트 역을 맡으면서 작품에 대한 기대는 더욱 커졌다.


이날 배우들은 약 40여분에 걸친 작품의 일부 장면을 시연했다. 세상의 진리를 탐구하는 데 일생을 바친 파우스트가 생의 막바지에 이르러 자신의 무기력함을 한탄하고, 이 때 마침 그를 지켜보던 메피스토가 나타나 완성된 세계를 보여주겠다며 유혹한다. 결국 영혼을 담보로 메피스토와 계약을 맺은 파우스트는 젊음을 되찾고 소녀 ‘그레첸’과 사랑하게 되지만, 그레첸을 비극으로 몰아넣게 된다.

이어진 기자간담회에서 전미도는 메피스토에 대해 “꼭 여자라고 말할 수는 없다. 남자도 아닌 여자도 아닌 중성적인 캐릭터다. 그가 남자를 유혹하고 타락에 빠져들게 하는 인물이라서 여자인 나를 캐스팅한 것 같다”고 말했다. 캐스팅된 후에도 몇 번이나 출연을 망설였다는 전미도는 “배우한테는 새로운 역할에 도전한다는 것 자체가 흥분되고 감사한 일이다. 무섭기도 하지만 도전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 하게 됐다”고 전했다.


서재형 연출

방대한 분량의 원작을 해석하고 각색하는 작업이 어려웠다는 서재형 연출은 “원작을 보면서 메피스토가 파우스트를 살려주는 장면이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지금은 괴테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메피스토 역에 여배우를 캐스팅한 이유에 대해서는 "지금은 학구적인 파우스트의 시대가 아니라 유혹적인 악인 메피스토의 시대이고, 또 여성이 우월한 시대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여성 메피스토가 지금의 시대에 더 적합하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보편적 정서 안에서 배우들의 연기를 끌어내고자 했다”며 “원작보다 훨씬 더 쉽게 따라올 수 있는 작품”이라고 이번 공연을 소개했다. 파우스트 역의 정동환 역시 “다른 작품에서는 파우스트의 지적인 면이 강조됐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그의 인간적인 모습이 그려질 것이다. 파우스트뿐 아니라 우리 모든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허점을 겨냥해서 연기를 하려고 한다”며 이 작품이 가진 보편성을 강조했다.

정동환·전미도 외에도 그레첸을 맡은 이진희와 20여명의 코러스 배우들이 펼치는 열연이 인상적이다. <왕세자 실종사건><메디아> 등에서 서재형 연출과 함께 작업해온 황호준 작곡가가 만든 음악과 여신동 무대디자이너가 꾸민 무대도 작품의 흡입력을 높인다. 공연은 오는 19일까지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에서 볼 수 있다.


글: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기준서(www.studiocho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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