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한국 모습과 너무 닮아 놀라워” <사회의 기둥들> 낭독회 현장

"작품 속 이야기가 지금 한국 모습과 너무 똑같아서 놀랐었는데, 어떤 각색도 하지 않았다니 더 충격적이다."

낭독회 후 쏟아진 반응은 하나같았다. 이 작품이 무려 137년 전 노르웨이에서 쓰여졌다는 사실이 더욱 참가자들을 놀라게 만드는 듯 했다.

우리에게 <유령> <인형의 집> 등으로 유명한 작가 헨릭 입센의 또 다른 작품인 <사회의 기둥들>이 개막을 한 달 여 앞둔 10월 18일, 40여 명의 일반인을 대상으로 작품 낭독회를 가졌다.

노르웨이의 한 소도시를 배경으로 하는 이 작품은, 그곳의 영주이자 선박회사를 운명하며 마을 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사회의 기둥' 카르스텐 베르니크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지역민을 위한 여러가지 사업을 활발하게 펼치는 그이지만 그 뒤에 숨겨진 사건과 추악한 비밀, 그리고 그를 둘러싼 많은 '정직한' 사람들의 이중적인 모습들이 하나하나 드러나는 것이 묘미인 작품이다.


총 4막으로 이뤄진 작품 중 이날 낭독회에서는 사건과 인물들의 관계가 어떻게 결말을 맞게 되는지 핵심 열쇠가 담긴 마지막 장을 제외하고, 1막부터 3막까지 만나볼 수 있었다. 주인공 카르스텐 베르니크 역은 박지일이, 그의 아내 베티 베르니크 역은 정재은이 맡았으며 이미 한차례 화제를 일으켰던 화려한 캐스팅의 주인공들인 이석준, 우현주, 정수영, 김주완, 유연수, 이승주 등의 배우들이 <사회의 기둥들>의 생생한 캐릭터들로 변신하여 치열한 낭독을 펼쳤다.

한 시간 반 정도 소요되었던 낭독회는 탄탄하고 견고한 대사와 별다른 동작과 이동 없이도 인물과 장면을 실감나게 구현했던 배우들의 열연으로 채워져 한시도 지루함을 느낄 수 없었다. 낭독 모습을 내내 서서 지켜봤던 김광보 연출은 "무엇보다 관객들의 의견이 궁금하고 오늘의 의견을 통해 앞으로 작품을 어떻게 채워나갈지 고민을 더할 것"이라며 여느 본 공연 때보다도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 모습이었다.


영사 베르니크 역의 박지일

가장 먼저 객석에서 나온 이야기는 "시간 가는 줄 몰랐다."였다. 김광보 연출의 작품을 열심히 찾아 본다는 한 관객은 "사회의 기둥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이면이 너무나 충격적"이었다며 "더불어 세월호 사건도 생각이 났다."고 말했다.

이번 작품의 번역과 드라마투르기를 맡은 김미혜의 제안으로 지난해 11월 작품 제목을 처음 들었다는 김광보 연출은, 올 3월 말 대본을 받았다고 한다. 대사에 매끄러움을 더하고자 윤색 작업은 거쳤지만, 작품의 소재나 흐름에 변화를 주는 각색 작업은 조금도 없었다는 연출의 설명에 객석 반응은 더욱 커졌다. "작품은 당시 시대 상황과 맞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 이 작품을 만난 것은 내게도 참 운이 좋은 일"이라는 것이 김광보 연출의 소감이다.


남편의 도덕적 명성을 한치도 의심하지 않는 베티 베르니크, 누명을 쓰고 고향을 떠나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불쑥 돌아온 요한 퇴네센, 죄의식에 사로잡혀 개인의 행복을 포기하며 지냈던 마르타 베르니크 등 캐릭터들에 대한 많은 질문들도 쏟아져 나왔지만, "4막에서 확인하실 수 있다."는 답변이 가장 빈번히 등장해 배우들과 객석 사이에 시종일관 웃음이 터져 나오며 본 공연에 대한 기대감을 더욱 높였다. 

"공연을 연습하며 평화, 자유의지, 정의, 이런 단어들에 대해 새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는 주인공 카르스텐 베르니크 역의 박지일은 "위선과 거짓, 가식들로 똘똘 뭉쳐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기도, 또 그런 사람들을 조롱하는 재미로도 볼 수 있는 작품"으로 <사회의 기둥들>을 이야기했다.


<인형의 집> <페르귄트> <헤다 가블러> 등 자주 한국 무대에 섰던 입센의 여느 작품들과는 달리 <사회의 기둥들>은 이번이 한국 초연이라는 점도 관심을 모은다. <스테디 레인> <은밀한 기쁨> 등 올해에도 탄탄한 무대를 선보였던 김광보 연출의 <사회의 기둥들>은 오는 11월 19일부터 30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4막까지 다 지켜볼 수 있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LG아트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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