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디팬미팅] 뮤지컬과 창극의 만남, 창작뮤지컬 <아랑가> 음악감상회

 어림잡아 열다섯 평 남짓의 충무아트홀 연습실은 마이크 없이도 배우의 노래를 또렷이 듣기에 최적의 공간이었다. 악기는 피아노 한 대. 스피커 하나 찾아볼 수 없는 공간이었지만 이 단순한 언플러그드 무대 덕분에 관객들은 뮤지컬 <아랑가>에 담긴 처연한 정서를 더 또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관객과 배우가 그 어느 때보다 가깝게 소통했던 <아랑가>의 음악감상회 현장을 들여다보자.

“뮤지컬과 창극의 경계를 없앤, 서양과 동양음악이 조화를 이룬 뮤지컬입니다. 오늘 음감회 자리를 통해 뮤지컬 <아랑가>의 아름다운 선율에 많은 감동받으시길 바라며… 라고 써 주셨네요”(웃음)

피아노 앞에서의 진중했던 모습과는 달리 관객들에게 환영인사를 건네는 이한밀 음악감독은 장난기가 넘쳤다. 지난 20일 저녁 충무아트홀에서 열린 뮤지컬 <아랑가>의 음악감상회는 관객 20여명의 웃음소리로 시작했다. 하지만 개로 역을 맡은 윤형렬이 ‘꿈 속 여인’을 부르기 시작하자 관객들은 모두 차분한 얼굴로 노래에 빠져들었다. ‘꿈 속 여인’은 어린 시절의 저주 때문에 매일 악몽에 시달리던 개로가 꿈속에서 만난 여인에게 위로를 받고, 그 여인에게 느끼게 되는 그리움을 토로하는 곡이다.

“저주받은 태자 개로는 거의 공황장애 수준의 심리상태였을 거예요. 매일매일을 심리적 압박 속에서 지내다가 꿈속에서 만난 여인 ‘아랑’에게 집착하면서 미쳐가는 인물이죠.”(윤형렬)


창작 뮤지컬 <아랑가>는 김부식이 펴낸 삼국사기에 수록된 도미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고구려의 압박에 지쳐가던 백제왕 개로는 꿈속에서 만난 여인과 닮은 아랑을 차지하고자 아랑과 그녀의 남편 도미 사이를 갈라놓는다. 윤형렬은 아랑에게 집착하면서 점점 광기에 사로잡혀가는 개로왕의 감정선을 설득력 있게 표현하는데에 중점을 두고 있다며 배역에 대해 설명했다. 선이 굵은 그의 이목구비와 허스키한 목소리는 고뇌에 몸부림치는 개로왕에 딱 들어맞는 느낌이었다.

이날 선보인 노래는 윤형렬이 부른 ‘꿈 속 여인’부터 고상호와 최주리의 듀엣곡 ‘우리 가요 파트B’, 그리고 모든 배우가 함께 부른 ‘어찌 울지 않을 수 있는가’까지 총 세 곡이었다. 뮤지컬 넘버에 판소리가 함께 어우러진다는 점이 <아랑가>의 가장 큰 특징이지만 모든 배우가 국악창법으로 부르는 것은 아니다. 판소리 창법은 ‘도창’이 전담한다. 전통 창극에서 해설자 격으로 등장하는 도창을 뮤지컬 무대로 데려온 것이다.

“이 작품은 제 대학교 졸업공연으로 기획되면서 출발했어요. 당시 공연분량이 60분으로 제한됐는데 이야기를 1시간 내에 풀어낸다는 게 쉽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도창을 등장시켰죠. 도창의 해설로 드라마를 빠르게 전개시키고 배우들은 매 장면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데에 집중하도록 연출했습니다.” (이한밀 음악감독)


하지만 <아랑가>의 도창은 해설자에 머무르지 않는다. 시연곡 ‘어찌 울지 않을 수 있는가’에서 도창 정지혜는 판소리로 애드립을 더하며 서양음악과 한국의 소리가 어떻게 어우러질 수 있는지 좋은 예를 보여줬다. 다른 배우들이 각자의 개성을 한껏 드러내며 열창하는 동안, 해금 소리를 연상시키는 도창의 애절한 애드립이 곡에 진한 한국적 색채를 덧입혔다. 각기 다른 목소리가 ‘한’의 정서로 엮이는 순간이었다.

“평소 북 반주에 맞춰서 노래하다가 피아노에 맞춰서 노래하니 새로운 느낌이 들어요. 관객분들은 도창의 얘기를 듣다보면 이야기가 무대에 시각화되어 나타나는 듯한 느낌을 받으실 겁니다.”(정지혜)


아랑 역 최주리는 아랑의 남편 도미를 연기하는 고상호와 함께 부른 ‘우리 가요 파트B’를 가장 아끼는 넘버로 꼽았다. 청아하고도 단단한 최주리의 목소리는 남편과 함께 어떤 역경이라도 헤쳐나갈 것을 다짐하는 ‘아랑’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에 더할 나위 없었다.

“아랑은 무척 강한 여자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배역을 이해할수록 그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죠. 아랑은 지극히 평범한 여자지만 고난을 맞닥뜨리면서 점점 강해져요. 결국 우리 모두 어떤 역경에 부딪쳤을 때 아랑처럼 강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최주리)

한편 ‘도미’역 고상호는 최근 출연작 <명동로망스>에서 맡았던 배역과 지금 맡은 배역의 성격이 너무 달라서 적응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창작초연 작품인 만큼 자신의 의견으로 직접 작품을 만들어나가는 데서 재미를 느끼고 있다며 작품에 임하는 마음을 전했다.


그 어떤 팬미팅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배우들의 라이브무대를 감상한 참가자들은 깊이 있는 질문으로 작품에 대한 관심을 드러냈다. 2월 개막을 앞둔 초연작이지만 지난해 3월 리딩공연을 접했던 관객들은 꾸준히 작품에 대해 정보를 모아 왔던 것이다. 기존에 국악과 접목을 시도했던 뮤지컬들과 <아랑가>의 차이점에 대해 날카롭게 질문하는 관객들의 얼굴에서 작품에 대한 애정과 기대감을 읽을 수 있었다.


변정주 연출에 강필석, 윤형렬, 이율, 고상호, 최주리, 김다혜 등이 출연하는 뮤지컬 <아랑가>는 오는 2월 14일부터 약 두 달 동안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에서 공연될 예정이다.

글: 김대열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kmdae@interpark.com)
사진: 배경훈(Mr.Hodol@Mr-Hod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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