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적으로 살아가는 인물들 매력적으로 다가와” 한태숙 연출 <세일즈맨의 죽음>

한태숙이 연출하는 아서 밀러의 대표작 <세일즈맨의 죽음>이 오는 14일 무대에 오른다. 그간 <레이디 맥베스><오이디푸스> 등을 통해 부조리한 사회와 관계, 그 안에서 극도로 흔들리는 인간의 내면을 예리하게 드러냈던 한태숙 연출이 이 작품을 어떤 무대로 만들어낼지 주목된다.

여전히 유효한 <세일즈맨의 죽음>의 이야기  
<세일즈맨의 죽음>은 미국 현대 희곡의 거장이라 불리는 아서 밀러가 1949년 발표한 작품이다. 아메리칸 드림을 쫓아 30년간 세일즈맨으로 살아오던 윌리 로먼이 경제 대공황으로 직장에서 내쫓겨 파국으로 치닫는 이야기를 담은 이 작품은 초연 당시 퓰리처상 극본상, 뉴욕드라마비평가협회 최우수작품상 등을 휩쓸며 미국 전역에서 화제를 낳았다.

사회가 부추기는 꿈을 쫒던 한 가장이 냉혹한 현실에 좌절하고 그와 함께 온 가족이 희망을 잃고 난파하는 <세일즈맨의 죽음>의 이야기는 비단 대공황기뿐 아니라 돈과 성공을 둘러싼 온갖 허상과 낙망이 교차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끊임없이 시의성을 갖고 공연되어왔다.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과거의 행복했던 기억으로 도피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소외와 고독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이번 공연에서 작품의 윤색을 맡은 고연옥 작가는 <세일즈맨의 죽음>에 대해 “대단히 치밀한 작품이다. 주인공과 가족들과의 관계, 세일즈맨의 일상을 굉장히 전형적으로 그렸으면서도 우리 삶과 가까이 맞닿아 있다. 사실 별다른 각색이 없이도 현대성이 살아있는 작품”이라고 평했다.

한태숙 연출이 만드는 <세일즈맨의 죽음>은…
이번 공연이 특히 이목을 끄는 것은 한태숙이 연출을 맡았기 때문이다. 한태숙 연출은 <안티고네><오이디푸스>와 같은 고전뿐 아니라 <아워 타운><대학살의 신>등의 현대 영미 희곡 역시 깊고 치밀한 시선으로 다뤄 호평을 이끌어낸 바 있다.


(위) <안티고네>(2013) (아래) <아워타운>(2012)

드라마터그를 맡은 강태경 이화여대 영문과 교수는 “한태숙 연출은 어떤 작품을 하든 ‘왜 오늘날 이 작품을 하는가, 왜 이 작품으로 오늘날의 관객들과 소통하려 하는가’라는 질문을 먼저 던진다. <세일즈맨의 죽음>이 ‘가족비극’을 다뤘다는 점으로 인해 오늘날까지 크게 변하지 않고 공연되어왔는데, 이번에는 인물의 내면에 좀 더 초점을 맞춰보기로 했다”고 이번 공연이 향하는 방향을 예고했다.


(왼쪽부터) 한태숙 연출, 강태경 교수, 고연옥 작가

강태경 교수의 설명처럼, 한태숙 연출은 환상과 현실을 오가는 윌리 로먼의 내면, 그리고 그와 가족들과의 관계를 보다 극대화해서 드러낼 계획이다. “작품을 봤을 때 출구가 없는데도 필사적으로 살려고 하는 인물들의 의지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는 한태숙 연출은 “병든 가장을 방치한 가족들의 책임에 대해서도 묻고 싶다. 윌리 로먼의 아들과 아내는 윌리의 정신분열을 걱정하지만, 실제로 아무런 실행을 하지 않는다. 그런 부분을 각각 예리하게 극대화했다”고 전했다.

“내 작품이 무겁고 찢어발기는 듯한 게 많기는 하지만, 이번 작품은 위트도 있고 위로도 있는, 극과 극을 다 가진 연극"이라는 한태숙 연출은 “학자는 원론적인 것을 고수하고, 나는 반칙을 좋아한다. 지금에 이르기까지 (강태경 교수와) 서로 많은 반론을 주고받았다. 강태경 교수와 고연옥 작가는 아직도 조금 불안해하겠지만, 나는 앞으로도 계속 반칙을 할 것”이라며 웃음 지었다. 인간 내면을 샅샅이 파고들어 조명했던 한태숙 연출이 이번에는 어떤 '반칙'으로 인물들을 그려낼지 기대를 모은다.


박동우 무대디자이너

이날 연습실에서는 공중 높이 매달린 거대한 오브제와 실제 무대와 최대한 유사하게 구현된 세트가 눈길을 끌었다. 극이 진행될수록 양쪽에서 8.4m에 달하는 거대한 벽이 점차 윌리 로먼의 집을 압박해오고, 윌리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는 6m 에 달하는 대형 오브제가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 난다. 인물들의 내면을 극대화해 보여주기 위한 장치다.

연습 세트에 대해 “많은 공연을 했지만 이렇게까지 완성도 높은 연습 세트를 만든 건 처음”이라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어 보인 박동우 무대디자이너는 “시대가 변화하며 종내의 가치관을 새로운 가치관으로 바꾸지 못한 이들이 그 압박을 버티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일들은 우리도 많이 겪어왔다. 그래서 이 작품이 미국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로 느껴질 수 있도록 무대를 만들고자 했다.”고 전했다.


주인공 윌리 로먼 역의 손진환과 둘째 아들 해피 로먼 역 박용우는 아직 공연계에서 이름이 많이 알려지지 않은 배우다. 이에 대해 한태숙 연출은 “이름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앞으로 연극계의 자산이 될 수 있는 배우를 택했다. 그리고 조연들이 이들을 탄탄히 받쳐주고 있다.”고 말했다. 윌리 로먼의 아내 린다는 예수정이, 첫째 아들 비프 로먼은 이승주가 맡았다. 큰 중압감을 느끼고 있다는 손진환은 "주인공을 처음 맡은 것은 아니지만, 이런 큰 프로덕션에서 엄청난 배역을 맡게 되어 영광”이라며 "윌리를 노쇠한 사람으로만 그리고 싶지는 않다. 삶의 끝자락을 놓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람으로 그릴 것”이라고 전했다.

<세일즈맨의 죽음>은 14일부터 5월 8일까지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에서 펼쳐진다.

글: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기준서(www.studiocho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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