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살장의 시간> 연극을 향한 치명적 사랑

극장과 도살장과 도서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세 곳이 한 자리에 섰다 무너진다. 이질적인 것들의 충돌에 사람과 시간은 부패하고 바스라진다. 무엇을 향한 경고인가.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르 클레지오가 한국작가 중 유력한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황석영과 함께 꼽은 이승우의 단편 ‘도살장의 책’을 원작으로 한 연극 <도살장의 시간>은 소설 속 ‘문학의 죽음’ 대신, ‘연극의 죽음’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

한 순간의 실수로 연극 무대에 설 수 없게 되어 버렸지만 마음 속에 불타는 연극의 열정과 그 열정으로 인해 방황과 파멸의 길로 들어서게 된 주인공 천편이 등장한다. 극장이 세워졌던 자리에는 도살장이 들어서고, 그 이후 도서관이 자리하게 되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아이러니하게도 또 그 곳에 극장이 세워진다. 무대의 열정으로 몸부림 치는 천편의 모습이 아찔하다.

한태숙 연출은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소설을 연극 무대로 만들기 위해서는 구체성을 부여해야 했다”면서 “연극에 몸 담고 있는 한 사람으로, 연극이 힘을 잃고 사라져가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다”며 작품의 메시지에 개인적인 신념을 담아내는 모습이었다.

소설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 ‘천편의 내면’ 역할 등이 추가되어 주인공의 잠재의식과 감정 표현을 시도하고 있는 연극 <도살장의 시간>은 오는 11월 8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계속된다.


연극<도살장의 시간> 공연장면


천편의 내면이 표출된다.


"공룡? 염소? 다 집어 치우라고!"


"오래 전 이곳이 어디었는지 아시나요?"


"머리를, 단 한번에, 단 한번에 쳐야 해"


"이봐요, 난 당신 같은 사람을 잘 알아"



"아저씨, 제가 하는 연극 보셨어요?"


"넌 지금 뭘 하려는 거야?"


"분명히 기억해, 그 언젠가 내게 와서 구두를..."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다큐멘터리 허브_김귀영(club.cyworld.com/docuher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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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1

  • A** 2009.11.04

    천편의 내면으로 나온 정영두씨 멋있었어요.. 그리고 원작처럼 사서를 죽이기를.. 극 극단적 광기에서 폭발해주기를 바랬는데.. 좀 누그러트린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