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s 2005 투란도트의 박현준 단장

불가능을 가능케 만든 자랑스런 한국인 2003년 제작비 70억원을 들여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70%의 공정으로 만들어져 12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오페라 투란도트>가 5월에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장기 공연에 들어간다. ㈜투란도트 한강 오페라단의 박현준 단장은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한 장본인이다. 박현준 단장은 89-95년 유학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왔고, 성악가로서 그 명성을 떨쳤다. 국내외 오페라는 물론이고 독창회 등 다양한 활동을 가졌었다. “성악가의 궁극적인 목표는 오페라입니다. 최종이 오페라 무대죠. 그 때는 김자경 오페라단, 국립오페라단, 시립오페라단과 민간 오페라단 2-3개 뿐이었어요. 문호도 좁고. 그래서 오페라 저변 확대를 위해 지금의 한강 오페라단을 창단하게 되었습니다.” 그에게는 오페라에 온 정신이 다 팔린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니 당연히 <오페라 투란도트>를 야외에서 성공한 오페라로 만들었지. 그렇지 않고야 어떻게 그런 무모한 일을 했겠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무모한 짓이었는지도 모른다. 계획된 무모한 짓. 97년도 중국 자금성에서 공연된 < 오페라 투란도트 >를 관람했었단다. 그 장관을 보고 부러워한 건 당연지사. 그런 마음으로 한국에서 오페라 무대를 만들어 오고 있던 때였다. 언젠가는 야외로 가자 생각했던 중국 자금성에서의 결심으로 “그래 이번만큼은 야외로 가자”라는 생각으로 야외를 택했다고 한다. 실상 야외 오페라는 이태리를 비롯해서 여러 나라에 있는 공연형태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충분히 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지만 이 규모와 또 특정된 장르로 야외 오페라를 개최해 본 곳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작품선택. 야외 오페라를 하기에 좋은 작품으로는 푸치니의 < 투란도트 >, 푸치니의 < 아이다 >, 비제의 < 카르멘 > 정도가 있었다고 한다. 자금성에서 공연되었던 버전을 가지고 오고 싶었지만 ‘우리’만의 힘으로 하고 싶었다 한다. “곧바로 이태리 피렌체 극장으로 달려 갔고, 함께 프로듀싱을 하기로 하고 자금성에서 공연되었던 < 투란도트 >의 예술감독 장예모를 만나 협상을 하기 시작하였죠. 어려운 점이 있었어요. 한국에서 장예모 감독과 공연을 하기로 하고 2002년도에서 1년 전에 계약까지 하고, 그 약속을 어겨서 한국사람에 대한 믿음이 기본적으로 없더라구요. 설득하기가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한국에서 < 오페라 투란도트 >를 위한 공정이 시작되었다. 의상과 무대, 조명 등의 디자인과 설계도를 20회씩이나 다시 받으면서 새로 제작이 되기 시작했고, 합창단, 연기자, 무용단 등 500여명의 사람들을 오디션을 통해 선정하고 다듬고, 완성을 해 나갔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전문적으로 무대와 장치를 만드는 사람이 드물어서 힘들었었단다. 자금성에서 보았던 그 무대를 상암월드컵 경기장에 똑같이 재현하기에는 힘들었기 때문에 많은 공정과 싸움 속에서 불과 20여일 만에 조합하여 만들었던 무대였던 것이다. 문제를 풀 것도 많았다. 상암월드컵 경기장의 잔디 훼손에 대한 문제와 인원의 통제, 연습실 등 해결해야 할 것이 너무도 많았던 상암 버전의 < 오페라 투란도트 >였던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상암월드컵에서 올려진 < 오페라 투란도트 >는 정말 좋은 오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성이 짜임새가 있으며, 관객의 이해를 돕기에 좋은 오페라이며, 음악 자체가 스펙타클하고 섬세하여 이해하기가 쉬우면서 귀에 쏙쏙 들어오는 장점이 있는 오페라입니다.” 4일간의 대 장정을 마치고 마지막 공연 후 4만 여명의 관객이 30분 가까이 기립 박수를 치는 동안 박현준 단장은 무대에서 벅찬 감격을 맛 보았다. 불가능한 일이라고 여겨졌던 야외 오페라를 성공한 박현준 단장은 다시 또 일을 만들었다. “이번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 Bis 2005 투란도트 >는 2003년 투란도트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원작의 기본 골격을 유지하면서 국내외 제작진으로 무대, 의상, 연출 등에 색다른 변화를 시도합니다. 2003년에 올려졌던 < 오페라 투란도트 >가 70%가 우리나라의 힘으로 만들어졌다면 이번 무대는 90%에 가까운 제작을 모두 우리나라에서 직접 하고 있으니 명실공히 ‘국산 오페라’, ‘한국 오페라’라고 말할 수 있는 겁니다. 오디션도 세계 여러나라에서 오디션을 봐서 캐스팅 되었고, 지휘자 선정부터 연출, 스텝 등을 모두 결정하여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한국표 <오페라 투란도트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박현준 단장에게는 당당함이 있었다. 서양 문화를 흡수시켜 다시 역수출하는 힘을 느낄 수 있었다.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한 투란도트는 이제 세계의 무대에서 각광 받는 < 오페라 투란도트 >가 된 것이며, ‘한국’이라는 문화적 가치를 상당한 가치까지 올려 놓은 장본인이 된 것이다. 한국말로 < 오페라 투란도트 >를 하는 것에 대한 것은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박현준 단장은, “성악은 이태리말이나 한국말로 노래해도 잘 안들립니다. 액센트가 다르기 때문에 한국말로 만들어서 부른다는 것은 별다른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죠. 그럴 것 같으면 굳이 한국말로 번역해서 만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원어와 자막으로 이해를 도우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 또한, 세종문화회관에서 가수들은 육성으로 노래를 불러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부담감을 가지고 공연하게 되는데 공연장에 대한 부담감도 없어진지 오래 되었다고 한다. 오케스트라나 500여명이나 되는 합창단이 잘 해주었으면 하는 바램뿐이라고 말한다. “개인적으로 제가 욕심이 많은 건 압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오늘 제가 몽골을 가거든요. 왜 가냐구요? 의상 디자인을 몽골에 보내고 디자인 수정을 거친 후 과연 그곳에서 제작이 가능한지를 보기 위해 직접 가는 겁니다.” 참 부지런했다. 그리고 지독하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무대와 작품이 나오는 것인지 모른다. 그는 < Bis 2005 투란도트 >를 끝내고 한국에서는 계속 제작을 하면서 한국을 떠나 이태리에서 공부하면서 무대에 서고 싶다는 바램을 가지고 있다. 그의 이름은 개인적이든 한국으로서든 세계에서 인정하는 오페라 제작자가 되어 있었고, 한국은 세계적인 작품을 올린 역량 있는 국가가 되어 있는 것이다. 오페라 한 작품에 우리의 자긍심과 포부,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박현준 단장에게 관객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물어 보았다. “< Bis 2005 투란도트 >를 관람하러 오시는 분들은 오시기 전에 내용을 충분히 알고 오시면 좋겠습니다. 충분하다는 것은 투란도트의 내용을 알고 오시면 무대를 보며 느끼는 감동이 배가 된다는 것을 아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제작한 < Bis 2005 투란도트 >입니다. 우리나라 오페라는 세계적이라는 자부심을 가져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것이 우리나라 오페라를 사랑해 주시는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또 하나 < Bis 2005 투란도트 >를 통해 많은 오페라와 클래식 분야가 대중에게 사랑 받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들이 사랑해 주시는 투란도트가 되게 멋지게 만들겠습니다.” < 오페라 투란도트 >는 2002년부터 < 2003 투란도트 >, 로 계속적인 행보를 해오고 있다. 그가 꿈꾸는 오페라의 무대와 자신의 삶의 무대가 똑 같은 사람. 우린 그 사람의 긍정적이고 자부심 넘치는 삶에 뿌듯하고 든든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사치일까? 그에게 모든 힘을 불어 넣어 주고 싶다. 대리만족일지는 몰라도 충분히 해내고도 남을 만한 그이기 때문에 해주고 싶은 것이리라. < Bis 2005 투란도트 >가 올려지고 끝나서 30분 아니 1시간여에 가까운 기립박수 소리를 들을 때까지 잔인한 4월을 기쁜 마음으로 지내리라 생각했다. --------------------------- 글 : 이준한 (인터파크 공연팀 allan@interpark.com) 사진 : 전대수 (cloudsclear@hotmail.com) [프리뷰 1] -Bis 2005 투란도트(1) - 투란도트가 만들어지기까지 [프리뷰 2] -Bis 2005 투란도트(2) - SYNOPSIS 1 [프리뷰 3] -Bis 2005 투란도트(3)-SYNOPSIS 2 [프리뷰 4] -Bis 2005 투란도트(4)-SYNOPSIS 3 [뉴스] 제작 발표회 및 기자 간담회 오페라 투란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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