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심장을 쏴라> 심장이 미쳐 날뛰는(?) 막바지 연습현장

한 편의 소설이 새로운 무대 데뷔를 앞두고 있다. 정신병동에 수용된 다양한 캐릭터의 사람들, 그들 중 탈출을 꿈꾸는 두 명의 젊은 청년을 주목해 보자. 2009년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정유정 작가의 동명소설이 연극 무대로 부활하는 <내 심장을 쏴라>가 공연을 앞두고 남산에서 막바지 연습에 한창이다.


소설의 희곡화를 거쳐 수정 대본이 15고가 넘는 치밀한 텍스트 작업에 더하여, 공연 시작 열흘 전을 앞둔 연습실에는 잠시의 쉬는 시간에도 말 소리를 높이지 못할 정도의 긴장감이 서려 있다.

김광보 연출(오른쪽)

연극 <인류 최초의 키스> <발자국 안에서> 등의 작품을 통해 호흡을 맞춰 온 김광보 연출과 고연옥 작가의 ‘또 한번의 합체’ 뿐 아니라, 연기파 배우 김영민(40)과 떠오르는 신예 이승주(30)의 변신도 눈에 띈다.

* 혹시 나중에 미치더라도 여긴 오지 마세요 _ 김영민의 ‘이수명’

정신 분열, 공황장애로 6년간 정신병원의 입원과 퇴원을 되풀이 해 온 수명을 두고 김영민은 “엄마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으로 이야기 한다.

“수명은 엄마가 정신병을 앓고 있어서 어렸을 때 제대로 말도 못 배워 말더듬이로 자란 사람이에요. 나의 실수 때문에 엄마가 죽게 되는데, 그 충격으로 편집증적 사고를 갖게 되죠.”

1971년생, 올해로 마흔의 나이를 얻은 김영민이 이번에 맡은 이수명은 스물 다섯 살. 연극계 최강 동안의 자리를 여전히 지키고 있는 그는 “저 같은 얼굴이 한방에 간다는 소리도 있던데”하며 껄껄 웃어 보인다.

“배우든, 사람 누구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얼굴도 변하고 마음도 변해가잖아요. 그 변하는 과정에서 굉장히 힘들 때가 있는데, 그런 걸 극복해야 될 시간이 분명 필요한 거고, 요즘도 그런 시간이 아닌가 싶어요. 지금은 젊은 역을 했을 때 내가 정말 잘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 고민하고 있어요. 어린 배역을 맡는 게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거든요.”

* 나, 히말라야의 독수리야 _ 이승주의 ‘류승민’

허리춤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카락을 가진 이수명에게 새로운 삶의 길을 보여주는 사람, 다소 위험한 불놀이를 삶의 탈출구로 지닌 재벌가의 사생아 류승민. 김영민을 비롯 “이 캐릭터를 통해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 많다”고 입을 모으는 류승민 역은 이승주의 몫이다. KBS공채 탤런트이자 올 봄 <추적>을 통해 참신한 배우 탄생을 알린 이승주는 “승민은 철저히 환경에 의해 변하게 된 인물”이라 설명한다.

“이도 저도 아닌 사생아로 태어나 주변의 견제나 의심도 많이 받은 인물이에요. 그런 세상의 분노로 어렸을 때부터 불놀이를 시작했고, 결국 계모가 정신병원에 절 넣게 되죠. 승민은 비행(패러글라이딩)을 통해 상처를 치유 받지만, 다시 격리되게 되요.”


정신병동을 배경으로, 저마다의 상처와 사연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라기에 자칫 무겁고 날카로울 듯한 선입견이 생긴 게 사실. 하지만 그런 이미지는 정신병동에 다시 들어오게 되는 이수명과 그를 맞는 류승민을 비롯한 수용자들의 모습 장면에서부터 무너진다. 어눌한 말투의 이수명, 어두운 유년 시절과 의지할 가족 없는 류승민의 외향적이고 거침 없는 모습은 의외의 연속이다.

“제가 가진 성향 자체가 승민의 표현 방식스럽지가 못하기도 하고.(웃음) 처음 희곡이나 소설을 읽었을 때 승민에게 무거운 느낌을 받았고, 연습 초기에 그렇게 표현 했거든요. 그런데 연출 선생님이 그런 서브 텍스트는 가지고 가되, 승민이 표현하는 방식은 그렇게 무겁진 않을 거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조금씩 해 보면서 어떤 식으로 표현해야 하는지 계속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에요.”(이승주)


김영민과 이승주는 <내 심장을 쏴라>에서 처음 만났다. 오랜 시간 대학로의 무대를 채워 온 김영민은 승주를 ‘이번에 처음 보았’으나, 이승주는 형인 김영민의 남다른 첫 인상을 살짝 털어 놓는다.

“워낙 유명하시니까 형에 대해선 알고 있었죠. 이건 형한테 한번도 이야기 안 한 건데, 제가 스물 네 살 땐가? <청춘예찬>이란 연극을 보고 ‘어린 친구가 저렇게 연기를 잘해? 난 이제서야 제대했는데?’ 그런 생각 했었어요.(웃음) 그랬던 분과 같이 연기한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감동스럽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고, 이번 작품 하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들더라고요.”

단순한 호기심에서 출발, 운이 많이 따랐다며 겸손의 말을 잇던 이승주, 고등학생 때부터 우연히 운명처럼 연기를 시작하게 되었다는 김영민. 이 둘을 비롯 <내 심장을 쏴라>의 병동에서 만나는 개성 강한 수용자들의 모습도 놓치지 말자.

'또별'을 찾아, 등만 보면 찰싹 붙어버리는 만식씨(박노식)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국민 대사 “향숙이?”를 탄생시킨 박노식은 머리 속에 기억을 뜯어 먹는 염소가 사는 만식씨로 등장하며, 가장 화려한 병동 탈출전력을 가졌으며 기가 막힌 하모니카 연주 솜씨를 지닌 거리의 악사 이용근, 거리낌없이 바지를 벗는 509호 거시기 역의 권택기, 본인이 공주라고 믿는 버킹엄 공주 역의 백지원 등도 함께 한다. 공연을 위해 정신병원에 가 사이코 드라마를 체험하고 의사를 초빙해 전문 공부도 했다고 한다.


아름다운 몸매와 소박한 덩치(?)의 소유자, 현선 엄마(최현숙)


환자 괴롭히는 즐거움에 사는 병원 보호사 점박이(윤영걸)
정신병동 귀여운 커플의 남다른 애정표현
"한이가 지은이를 잡아먹으려 해요"

본인의 일에 충실한 간호사 최기훈(이남희)

“정말로 내 심장이 살아 있다고 생각하는가, 운명이 나를 침몰시킬 때 난 어떻게 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에요. 취직 하기도, 또 안정적인 일을 가지고 있더라도 항상 마음 안에 응어리들이 있잖아요. 그런 현대인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혹이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 게 아닐까, 이런 것들을 이야기 하는 작품이 <내 심장을 쏴라>라고 생각합니다.”(김영민)

“지금 뭐 하고 계세요? 이런 질문이 던져질 수 있다면 정말 좋겠어요.”(이승주)



연극 <내 심장을 쏴라>는 오는 10월 7일부터 24일까지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에서 공연한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기준서(스튜디오 춘 www.studiocho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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