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상상력으로 다시 태어난 신라 설화, 연극 <꽃이다>

"용모가 세상에 견줄 이가 없었으므로 깊은 산이나 못을 지날 때면 번번이 신물들에게 붙들림을 입었다"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헌화가'의 주인공, 수로부인에 대해 전해져 내려오는 글이다. 그런데 절세미인으로만 기록된 수로부인이 역사 속의 능동적인 주체로 다시 태어났다. 바로 국립극단의 삼국유사 프로젝트 두 번째 작품, <꽃이다>에서다. 지난 21일 진행된 <꽃이다> 프레스콜 현장에서는 독특한 상상력으로 다시 태어난 신라시대 설화를 만나볼 수 있었다.

<꽃이다>는 <에비대왕>의 홍원기 작가와 <헤다가블러> 박정희 연출이 만나 함께 무대에 올린 연극이다. 홍원기 작가는 '삼국사기'에 나와 있는 당시 신라의 정치적 상황을 수로부인 설화에 결합시켜 새로운 이야기를 탄생시켰다. 이 연극에서 수로부인은 자신의 미모를 탐한 용에게 납치당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치적 의도를 품고 스스로 용의 제물이 된다.



수로부인 외에도 많은 인물들이 <꽃이다>를 통해 새롭게 생명력을 얻었다. 수로부인의 남편 순정공과 화랑 득오, 무당 겁네를 비롯해 성채 건설에 동원된 남편들을 돌려달라며 목숨을 걸고 농성하는 아낙들까지 다양한 인간군상이 어울려 이야기를 끌어간다.

이야기의 중심 수로부인은 <짐><거투르드>의 서영화가, 그녀에게 꽃을 따다 바치는 할배 역은 <탕아 돌아오다>의 정재진이 연기한다. <한네의 승천> 이용이가 무당 검네를, <전명출 평전>의 이승훈이 화랑 득오를 맡았고, <헤다 가블러>의 김정호가 순정공으로 분한다. 이 밖에도 유병훈·호산·이서림·임성미 등이 출연한다.

성채 건설에 동원된 남편들을 돌려달라며 농성하는 아낙들

목숨을 걸고 아낙들의 농성을 이끄는 무당 검네(이용이)

작품 속 이야기처럼 무대도 독특하게 꾸며졌다. 고색의 나무널빤지로 단출하게 마련된 무대를 물이 둘러싸고 있고, 배우들의 움직임에 따라 그 물 위로 크고 작은 파동이 일어난다. <모비딕>의 여신동 무대디자이너가 고안한 무대다. <됴화만발>의 심새인 안무가가 구상한 역동적인 춤도 함께 어울려 오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꽃이다>는 신라시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오늘날을 살아가는 서민들의 애환과 정치가들의 복잡다단한 정략다툼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배우들이 주고받는 독특한 말투의 대사들도 듣는 맛이 있다. 

수로부인(서영화)에게 절벽 위 꽃을 따다 주겠다고 약속하는 할배(정재진)
마을처녀를 용에게 바치는 무당 검네와 사람들
수로부인(오른쪽, 서영화)는 용각시 대신 자신이 용의 제물이 되겠다고 나선다.

화랑들의 권력다툼

<꽃이다>는 10월 7일까지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볼 수 있다. 

글: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기준서(스튜디오춘 www.studiocho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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