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 심포니 오케스트라 내한공연
작성일2005.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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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강국 체코가 자랑하는
프라하 심포니 오케스트라
첫 내한 공연
동유럽의 최고의 문화 강국 체코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21세기 체코 음악계를 이끌어 가는 프라하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내한한다. 지휘에는 페트르 알트리히터가 맡았고, 바이올린 협연은 강동석, 첼로 협연은 조영창, 피아노 협연은 김대진이 함께 한다. 이 날 연주될 곡은 3곡이며 7월 6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다.
프로그램
Smetana, Bedrich (1842.3.2-1884.5.12)
체코슬로바키아의 작곡가. 보헤미아의 리토미실 출생.
아버지는 맥주 양조업자로 그의 반대를 무릅쓰고 일찍이 프라하에 나가 프록시에게 피아노와 음악이론을 배웠다.
어릴 때부터 피아노 연주에 뛰어나 한때는 피아노 연주자가 될 것을 꿈꾸었으나, 1848년 오스트리아 2월 혁명의 여파로 프라하에도 6월에 혁명운동이 일어나 이에 가담하였다. 그리고 오스트리아의 지배하에 놓인 체코슬로바키아 민족으로서의 의식에 눈떠, 민족운동에서의 작곡가의 역할을 새삼 자각하게 되었다. 혁명 실패 후의 가혹한 억압 시대에는 스웨덴으로 건너가(1856) 5년간 에보리에 체재, 지휘자?작곡가?피아니스트로서의 발자취를 남겼다. 1860년대 오스트리아 정부의 탄압이 느슨해지자 체코슬로바키아 민족운동이 되살아났고, 그도 귀국하여 이 민족운동의 선두에 서서 지휘자?작곡가?평론가로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62년 체코슬로바키아 국민극장의 전신인 가극장(假劇場)이 프라하에 건립되자 이 극장을 위해 작곡한 오페라 < 팔려간 신부:Prodan nevesta(The Bartered Bride) >를 상연, 큰 성공을 거두고, 그 해 가을에는 이 가극장의 지휘자로 임명되어 여러 면에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으나 74년 50세의 한창 나이에 숙환인 환청(幻聽)이 악화되어 10월에는 귀가 전혀 들리지 않게 되었다. 이로 인해 그는 모든 공적 활동을 중지하고 프라하 교외에 은퇴하였다. 만년의 작품으로는 연작 교향시 < 나의 조국 >(74∼79), 현악 4중주 곡 < 나의 생애로부터 >(79) 등이 있다.
Ouverture Prodan nevesta(The Bartered Bride)
- 스메타나 : 오페라 < 팔려간 신부 >
서곡 : Vivacissimo, F장조, 2/2박자, 소나타 형식
1859년 오스트리아는 이탈리아에 참패를 하며 소수민족에 대한 탄압을 완화하기에 이른다 이에 체코에는 새로운 희망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 당시 스메타나는 스웨덴에서 활동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조국의 소식을 듣고 1861년에 귀국하여 국민적 오페라를 발표하였다. 이 곡은 이러한 의도에서 작곡된 2번째 작품으로 그에게 있어서 최고의 걸작으로 꼽힌다. 향토적인 민속무곡을 재치있게 살리고 야성적인 농민들의 꾸밈새 없는 열광이 즐겁기만 한 작품으로 1863년 완성되었다.
5음계에 의한 거친 8바디의 도입부를 거쳐 제 1테마가 현악기의 유니즌으로 나타난다. 뒤이어 제 1바이올린이 응답하며 푸가토조의 카논을 전개시킨다. 제 2테마는 보헤미아의 무곡으로 나타나 발전되다가, 재현부를 거쳐 긴 코다로 넘어간다. 이는 마치 소동을 연상케 한다. 이 화려하고 명랑한 서곡은 연주회용으로도 널리 연주되고 있으며, 완벽한 형식의 구성과 발랄한 멜로디를 가진 익살스런 맛을 겸한 걸작이다.
L.v.Beethoven : Concerto for Piano, Violin, Cello and Orchestra in C Major, Op.56 베토벤 삼중협주곡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발트시타인] [열정] 등의 피아노 소나타와 [감람산 위의 그리스도] 같은 걸작들이 쏟아져 나온 무렵인 1804년에 완성된 작품이다. 근대 악기를 대표한다고도 할 수 있는 피아노?바이얼린?첼로를 독주 악기로 쓰고 여기에 오케스트라의 협연을 붙인 형식, 이런 형식은 바로크 시대에 크게 유행했던 '합주 협주곡(concerto grosso)'인데, 베토벤은 왠지 느닷없이 이런 복고풍의 아이디어를 갖고 이 협주곡을 썼던 것이다. 가장 근대적인 악기와 낡은 형식이 만난 셈이다.
결과적으로는 작곡가의 의욕이 크게 돋보이는 것이 되지 못했다. 피아노?바이얼린?첼로의 3중주만 해도 벅찬 작업인데 여기에 오케스트라가 추가되다보니 앞선 의욕만큼 결과는 미치지 못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협주곡이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은 아름답고 로맨틱한 선율의 매력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아름다운 선율 창조의 장인(匠人)인 베토벤을 이 작품을 통해서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세 사람의 독주자에게 이 협주곡은 만만치 않은 부담을 준다. 완벽한 호흡의 일치를 위한 세 연주자의 노력이 전제되는 작품인 것이다. 때문에 3중 협주곡의 음반이 그리 많지 않은 형편이다.(1992년판 [펭귄 가이드]에 등록된 이 작품의 음반은 불과 5 종류뿐이다). 독주자 3명의 기교가 완벽한 균형을 이루었을 때 비로소 베토벤이 들려주고자 했었던 농도 짙은 로맨티시즘이 객석에 전해질 수 있는 것이다.
1st mov. Allegro
2nd mov. Largo
3rd mov. Rondo Alla Polacca
베토벤의 기악협주곡 중에서는 물론이고, 협주곡이라는 장르 전체에서 희귀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1803/4년에 작곡된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및 오케스트라를 위한 삼중협주곡'(Tripelkonzert), 이다. 베토벤의 비서이자 전기작가였던 쉰들러(A. Schindler)에 의하면, 이 곡은 베토벤의 후원자이며 제자였던 -당시 17/8세였던- 루돌프 대공 (피아노), 그의 고용음악가인 칼 아우구스트 자이들러 (바이올린), 그리고 하이든의 에스터하지 오케스트라의 수석주자였던 안톤 크라프트 (첼로)를 염두에 두고 작곡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어느 특정 연주자를 염두에 두고 쓴 곡의 성격에 따라, 이 곡에 등장하는 세 개의 협연악기에 요구되는 기술적 난이도는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즉 이 곡은 첼로 문헌 중에서 가장 어려운 곡으로 꼽힐 정도로 첼로 파트에 고도의 테크닉을 요구하고 있는 반면, 피아노 파트는 이에 비해 훨씬 간단한 구성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베토벤의 이 작품에서처럼 협주곡에서 한 명 이상의 협연자가 출연하는 것은 '심포니 콘체르탄테' (Symphonie concertante)라고 하는데, 이것은 형식적?악곡기법적인 면에서 볼 때 교향곡 (Symphonie)보다는 협주곡에 더 접근하고 있다. 베토벤은 이러한 장르사적 흐름을 숙지한 듯하다. 이 곡의 처음 출판본의 파트악보에 "Grand Concerto concertante"라고 표기된 것이 바로 이를 증명하고 있다.
오늘날 자주 연주되고 사랑 받는 이 곡은 그러나 당시에는 그다지 큰 호응을 받지 못하였다. 그 이유는 '콘체르탄테'의 전통이 18세기말을 기점으로 이미 그 전성기의 막을 내렸고, 다른 한편으로는 베토벤이 이 곡의 피아노 파트를 -아마도 루돌프 공을 위한 교육적 목적에서- 상대적으로 매우 단순하게 구성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연주의 난이도가 수월하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바이올린과 특히, 첼로 파트의 경우, 앞서 언급했듯이, 매우 어렵고 까다로우며, -비르투오소 유형의 협주곡처럼 협연자의 화려한 기교가 과시되는 효과를 추구하지 않으면서도-, 때로는 편치 않은 운지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곡은, 베토벤이 여러 차례(1803/4년)에 걸쳐 라이프찌히의 '브라이트코프 & 해르텔' 출판사에 출판을 의뢰했음에도 불구하고 출판사의 외면과, 루돌프 공이 개인적 목적으로 수년간 악보를 소지하는 바람에 1807년에 이르러서야 빈에서 출판되었으며, 작품의 초연은 그 이듬해인 1808년에 베토벤의 후원자였던 로브코비츠 (Franz Joseph von Lobkowitz)후작의 저택에서 이루어졌다. 연주회 역시 협연자들의 충분치 못한 준비로 인하여 청중들의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하였다. 베토벤은 이 곡을 루돌프 공을 위해 작곡했지만, 작품은 로브코비츠 후작에게 헌정하였다. 아마도 작품의 헌정을 통해 초연 성사에 대한 감사의 뜻을 표하고자 한 듯하다.
A.Dvorak : Symphony No.8 in G Major, Op.88
드보르작 : 교향곡 제8번
드보르작은 생애 9곡의 교향곡을 작곡했는데, 5곡만이 생존시에 발표되었으며 나머지 4곡은 유작으로 나중에 밝혀지게 된다. 그의 유명한 마지막 교향곡 9번 , 신세계 >는 간혹 5번으로 불려지기도 한다. 2차 대전 후에 프라하에서 정리 발표된 드보르작의 작품 전집에 따라 초기 습작이라 할 수 있는 4곡을 포함, 총 9곡의 교향곡으로 작품 번호가 붙게 된다.
교향곡 8번은 드보르작이 영국 방문을 마치고 난 후, 그의 유명한 미국 방문이 이루어지기 3년 전에 작곡된 것으로, 1892년 영국의 노벨로출판사가 악보를 출판했다고 흔히 < 영국 교향곡 >으로 불리워지기도 한다. 이 교향곡의 닉네임과는 달리 영국적인 성격 및 분위기는 거의 느낄 수 없고, 그의 교향곡 중 가장 보헤미아 국민주의적 성격이 짙은 작품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드보르작은 이 작품에서 종래에 그가 모범으로 삼았던 베토벤의 독일 교향곡 풍에서 탈피하여 보다 민족적인 성격을 부각시키고 있다. 형식 구성이 매우 자유스럽고, 전통적 교향곡의 개념에서 상당히 동떨어져 표제 교향곡적인 성격을 갖춘 교향시라고까지 불리워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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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준한(인터파크 공연팀 allan@inter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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