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왕의 남자 >의 원작 연극 [이(爾)]

단 하나의 진실은 사랑이었던
광대와 왕의 남자 그리고 왕


2,000년도에 초연되어 한국연극협회의 올해의 연극상, 희곡상, 연기상, 2001 동아 연극상 작품상, 연기상 등을 수상했고, 영화 ‘왕의 남자’로 크랭크 인 된 연극 이(爾)를 마주했다. 연극 이(爾)는 연산군의 눈에 들어 웃음과 몸을 바쳐가며 낮은 신분인 천민에서 희락원 종4품이라는 지위까지 오른 궁중 광대 ‘공길’의 이야기이다. ‘이(爾)’는 조선조때 왕이 신하를 높여 부르는 호칭으로 연산군이 아기는 궁중광대 공길을 부르는 호칭이다. 연산군에게 ‘이(爾)’라는 호칭을 받은 공길은 역사적 실존 인물로 전해지고 있다.



연산은 중종반정으로 왕위에서 물러날 때까지 12년간 왕위에 있었다. 무오사화, 갑자사화를 통해 많은 사람을 죽였고, 자신을 비판하는 무리는 단 한 사람도 곁에 두지 않는 전형적인 독재 군주로 군림했다. 죽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채울 수 없는 모성결핍으로 뒤틀리고 비둘어진 인간 연산과 연산의 결핍을 채워주고 위로하는 궁중광대 공길. 연산의 연인이자 어머니였으며, 공길의 연적이었던 질투의 화신 녹수. 연극 이(爾)는 연산, 녹수 그리고 공길 세 명의 역사적 실존인물들을 무대 위로 등장시켜 허구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역사극을 보는 것과 같은 착각 속에 빠지게 된다.

연극 이(爾)는 여러 모양새의 사랑을 보여주고 있다. 먼저 연산의 공길에 대한 사랑이다. 웃음을 좋아하고 광대극을 좋아하는 연산은 공길을 사랑하게 된다. 그것이 꼭 동성애를 드러내는 모습은 아니었지만 둘만의 신분 차이에서 오는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코드가 그들에게 존재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연산의 공길에 대한 사랑은 때로 어린 아이와 같아 지기도 하고 아버지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반대로 공길은 때로는 요부로 때로는 현모양처의 모습으로 연산을 사랑하고 있다. 권력을 가진 이가 신분이 낮은 자를 사랑하게 되면 얻게 되는 수많은 질투와 질책들을 모두 감수하게 되는가 보다. 연산은 공길에 대해서는 모든 것을 감수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공길은 연산에게 거짓없는 마음을 보이려고 애쓰는 모습이 보인다. 그러면서도 정치적인 함수관계를 가지게 되면서 생존의 법칙에 맞추어 서로 길들여 진다. 마지막은 연산과 공길의 진실된 사랑의 모습을 보인다. 그것이 공길로서 할 수 있는 연산에 대한 마지막 사랑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연산과 녹수의 사랑도 엿보인다. 연산은 녹수를 진심으로 사랑하지는 않은 것 같다. 육체적인 사랑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으나 진실된 사랑이라고 보기에는 엄한 구석이 있게 그려지고 있다. 녹수의 질투도 사랑에서 나오는 행위이겠지만 권력에서 나오는 질투라고도 볼 수 있어서 알 수 없는 사랑의 한계를 그려놓고 있다.

공길과 장생의 사랑도 애절하다. 장생의 공길에 대한 큰 형 같은 사랑이 연극 이(爾)에 많이 녹아 있다. 음모에 휘말린 공길을 구하면서도 그것이 자신의 삶이라고 여기는 장생을 통해 공길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보여주고 있다. 공길도 정신적 지주와 같은 장생에 대한 사랑이 연민이 되어 극의 전반에 흐르고 있다.

쓰다 보니 심각한 사각관계를 그리는 듯 하나 재미적인 요소도 많다. 광대들의 익살스럽고 걸쭉한 마당놀이가 전개되고 극의 전반적인 흐름을 깨지 않으면서도 해학과 재미적인 요소를 관객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연극 이(爾)는 ‘연산군은 궁중 광대극을 좋아했고 광대 중 공길과 남색관계였다’는 극적인 설정을 전재로 극이 전개된다. ‘동성애’라는 코드는 연극과 영화, 드라마에서 심심치 않게 나오는 소재이다. 그러나 조선시대를 거슬러 올라 대단위의 소재로 쓰였다는 것이 이채롭다. 연산군과 공길의 사랑을 표현하기 위한 한 수단으로 묶여있고, 녹수와 공길의 갈등이 고조되어 대결구도로 끌고 가는 원동력을 제공하고 있다. 위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광대와 광대극이라는 것을 끌어 들여 긴장과 이완을 넘나드는 극적효과를 노려 그 성과를 누리고 있다.

많은 공연이 되어지면서 관객들에게 꾸준히 사랑받았던 작품 ‘연극 이(爾)’는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한 인간들로 무대를 채우고 있다. 선과 악을 다루는 구조가 아니면서도 선과 악이 있고, 사랑과 아픔이 있으면서도 사랑과 아픔이 뒤섞여 있는 것이 연극 이(爾)의 특징인 듯 하다. 잘 짜여진 구성과 스토리에 공간 구성과 무대장치, 조명 그리고 제일 중요한 배우들까지 연극과 개그콘서트를 넘나 들면서 웃고 울게 만든다. 그래서 이 무대를 관객들은 사랑할 수 밖에 없는가 보다.

연산을 맡은 이남희의 알 수 없는 연산의 모습을 너무도 잘 표현하고 있었고, 그의 연기에는 몰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연극 이(爾)의 큰 축을 맡고 있는 인물이기에 그가 없어서는 그 큰 무대를 이끌어 갈 수 없다는 것이 자명한데 관객들을 이끌어가는 힘이 그에게는 100% 충분하였다. 공길의 박정환은 시종일관 여유있는 모습으로 과하지도 않고 모자람도 없이 연기를 소화해 내고 있다. 장생을 맡은 이숭훈도 초인과 같은 광대의 사랑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녹수도 사랑과 질투로 보이는 모습을 좀 더 강하게 어필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연극 이(爾)의 무대를 뒤로 한다. 몇 번이라도 보고 싶은 명품 연극 중에 하나이다.

-------------------------

글 : 이준한(인터파크 공연팀 allan@interpark.com)
사진 : 극장 용 제공



[ⓒ플레이DB m.playdb.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