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연극 아트]

'웃기는 남자들의 수다' 우정은 어렵다. 누가 우정을 사랑보다 지키기 쉽다고 했던가. 심심치 않게 찾아오는 마음의 상처를 넘어야 하고, 암묵적인 서열과 지배를 헤쳐나가야만 한다. 연극 [아트]는 이에 대한 사나이들의 우정을 위트있게 풀어가는 작품이다. 시작은 이렇다. 잘 나가는 친구 하나가 1억 8천만원 짜리 고가의 미술품을 샀다. 그런데 그 미술품이라는 게 하얀 바탕에 하얀 줄이 그어진 그림. 자세히 보면 하얀 대각선 하나가 보일 듯 말 듯 그려져 있는 난감한 그림이다. 아무리 봐도 그냥 흰색 종이로만 보이는 물건을 아파트 전세 값보다 비싸게 사다니. 사나이들 우정은 여기서부터 흔들린다. 아니, 사실 그 이전부터 그들은 꿍하고 있었던 거다. 흰색 바탕에 흰색 줄이 그어진 누구 씨 그림은 단지 발단을 제공했을 뿐. 남자들 우정, 사실은 섬세하다구 연극 [아트]는 남자들의 우정에 대한 유쾌한 수다다. 여자들만 수다를 떠는 게 아니듯 남자들의 우정이 특별히 단순하진 않을 것이다. 눈빛만으로도 통하는 사나이들의 우정은 편견이라는 사실. 이 작품은 이를 확실하게 말해준다. 소재가 그렇다. 말 많은 세 남자, 서로에 대한 해 묵은 서운함. 중학교 동창인 수현과 규태, 덕수. 이들 사이에 놓인 하얀색 (아주 비싼) 작품은 세 사람에게 각각 다르게 다가온다. 이 그림을 소유한 수현에게는 ‘최고의 갤러리로부터 사랑을 독차지한 앙트로와 작품'이다. 그러나 규태에겐 ‘그냥 하얀색 판떼기’일 뿐이다. 자기 의견이 별로 없는 덕수에겐 ‘좋아 보였다가 그냥 판떼기었다’하는 그림이고. 최고의 모더니즘 작품이었다가 하얀 판떼기로 전락하기를 반복하는 이 그림 하나는 세 남자들이 그동안 외면해 왔던 감정을 들춰내게 만든다."걘 예술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무조건 비아냥부터 하고 봐" "전시용으로, 우리에게 잘난척 하느라고 그 말도 안돼는 그림을 산거야" 등등 서로를 긁으면서 말이다. 그들은 소파 하나, 그림 하나를 두고 계속 아웅다웅 한다. 언제부터인가 같이 있어도 웃지 않고 질투나 서운함이 쌓여갔던 감정들이 폭발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쉽사리 하지 못한다. "그 녀석 변했다구" 같은 두리뭉실한 불만의 표현을 쏟아 부을 뿐이다. 지켜보는 관객은 웃겨서 배꼽빠지지만 이들은 우정에 금가는 소리가 확실하게 들었을 것이다. 유쾌한 블랙 코메디 사실 근본적인 문제는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친구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규태는 자신의 말이라면 항상 따르던 친구가 잘 나가는 피부과 의사가 되더니 난해한 미술품으로 잘난 척을 한다고 느끼고 분노와 당혹감을 쌓아간다. 수현은 자신의 예술 취향이라면 무조건 비판하고 깎아 내리려는 친구가 못마땅하고 서운하다. 덕수는 개성강한 친구들에 맞춰 주려 하지만 그들의 성깔에 못배겨 나겠다. 연극 [아트]는 남자들의 상처받은 우정이 회복해 가는 과정을 기발한 대사와 위트로 풀어나간다. 그 과정은 어찌 보면 소심하고 쪼잔해서 여성 관객에게는, 특히 터프하고 대담한 남자의 세계를 기대한 관객에게는 묘한 카타르시스마저 느끼게 한다. 여자들만 저러는 건 아니구나 하는. [아트]는 지난 2001년부터 국내에 초연돼 현재 9번째 새로운 배우들로 무대에 올려지고 있다. 지난 3월 김석훈, 송승환, 정원중, 이성민 등에 이어 이번 [아트]에는 남성진, 문천식, 고명환, 김지완 등이 더블 캐스팅 돼 열연하고 있다. 덧붙이자면 골칫덩이로 부상한 하얀 그림은 결국 세 친구의 우정을 다시 한번 도모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1억 8천만원 값어치를 한 것이다. ---------------------- 글 : 송지혜(인터파크 엔터테인먼트 운영마케팅팀 song@inter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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