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뇌와 해학의 미학 [왕의 남자 원작 연극 爾]

울고 웃기는, 공연의 백미 선사

지난해 말 개봉해 10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신드롬을 일으킨 영화 <왕의 남자>의 원작 [연극 이]가 LG아트센터에서 서울 앵콜 공연 중이다. 영화가 워낙 기록적인 관객을 동원했거니와 많은 화제를 낳은 작품이기에 제목에서조차 <왕의 남자>의 원작임을 부각하고 있지만, 실상 이 작품은 영화와는 또 다른, 힘있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우선 주목해야 할 인물은 공길이다. 극 속에서 공길은 권력을 위해 광대로써의 자부심과 사명감을 버린 세속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세속적이고 권력추구적인 인물이면서도 사랑에 약해 갈등하는 공길은 연산과의 미묘한 관계 속에서 미워할 수 없는, 애처로운 인물로 그려진다. 공길이란 인물의 다면적인 면이 이 작품의 힘 중 하나인 것. 특히 연산과의 교감과 갈등은 극적으로 부각돼 연산, 공길, 장생, 녹수가 펼치는 사각관계는 극 속 몰입을 부추긴다.



극이 진행되는 내내 긴장과 안타까움이 있다면 관객은 감정의 소모로 지쳐버릴 것이다. 마치 북의 강약을 조절하듯 한바탕 웃음거리도 만들어 놓았다. 특히 공길의 청으로 궐내의 광대집단 ‘희락원’이 보여주는 광대놀음은 백미 중의 백미인데 썩은 양반무리들을 ‘아닌 척’ 조롱하는 모양새는 마당놀이 버금간다. 그들은 극중 연산과 공길을 질타하기도 하고, 탐관오리들을 꾸짖기도 하며 질퍽한 풍자로 웃음을 끌어낸다.

연극은 영화와는 달리 공길과 장생보다는 연산과 공길과의 관계에 무게 중심을 둔다. 권력욕에 번뇌하며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다”라며 성 정체성에 대해 체념하듯 말하는 공길과 어머니의 억울한 죽음을 알고 흉폭해져가는 연산은 애처롭기가 비등하다.



이번 공길역에는 오만석, 박정환, 김호영이 트리플 캐스팅 돼 서로 다른 개성으로 승부하고 있다. 특히 다른 두 배우와는 달리 처음 공길 역에 도전하는 김호영은 가장 여성적인 캐릭터로 영화 속 공길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감성적이고 연약한 공길의 면모를 섬세하게 그리고 있어 두 연극 선배와는 다른 면모를 개척해 나가고 있다.
또한 연산역의 김내하, 녹수 연의 진경의 활약도 눈에 띈다. 김내하는 흉폭한 폭군이지만 한없이 외롭기도 한 연산 캐릭터를 훌륭하게 소화한다. 진경 역시 연산을 쥐락펴락했던 요부를 매끄럽게 표현해 낸다.

爾(이)란 조선조때 왕이 신하를 높여 부르는 호칭으로 연산군이 자신이 아끼는 궁중광대 공길를 부르는 호칭이다. 천민 광대 출신으로 임금에게 爾(이) 호칭을 받은 공길이라는 인물은 역사적인 실존이라고 한다. 이 작품은 연산군일기에 한줄 나온 공길을 중심으로, 연산과 녹수를 극속에 생기 있게 살려냈다. ‘극적 설정과 창작’의 묘미가 무엇인가를 새삼 느끼게 해준다. [연극 爾]는 7월 14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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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송지혜(인터파크 엔터테인먼트 운영마케팅팀 song@inter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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