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캬바레', 향락의 꺼풀 아래 전체주의 그림자가

24일 밤 대전 충남대의 정심화홀. 이날 개막한 브로드웨이 뮤지컬 ‘캬바레(Cabaret·연출 샘 멘데스)’의 객석을 가득 메웠던 1500명은 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그동안 한국 땅을 밟은 브로드웨이 뮤지컬들이 심어놓은 모든 환상들에 대한 배반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눈이 휘둥그레지는 춤도, 격정적이고 파워풀한 노래도 없었다. 해피 엔딩과도 거리가 멀었다. 1930년대 혼란스러운 독일의 베를린을 배경으로 사랑과 나치즘, 동성애 등을 뒤섞은 이 작품은 관객의 감성을 공략하는 다른 방법을 썼다. 영화 ‘아메리칸 뷰티’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연출가 맨데스는 어둡고 퇴폐적인 카바레의 손님들을 앉혀놓고 가장 은밀한 얘기를 들려주며 지성을 일깨웠다. 2층으로 짜인 무대에는 이 뮤지컬의 도발적 발상이 압축돼 있다. 연주자들은 무대 아래 오케스트라 피트 속에 묻히는 게 아니라 거대한 액자틀로 눈길을 끌어당기는 2층의 노출된 공간에 자리를 잡았다. 몰락하는 베를린과는 정반대의 수직적 상승. 이들은 2층에서 연주를 하다 나선형 계단을 통해 1층으로 내려와 연기를 하는 등 연주와 연기를 겸한다. 성적 정체성이 모호한 엠씨는 등장인물의 모든 갈등을 관조하는 전능한 인물. 나치즘의 선동에 그가 엉덩이를 까 보여주는 1막 마지막 장면에서 객석은 폭소를 터뜨렸다. 하지만 2막에선 그도 결국 나약한 인간임이 드러난다. 가장 냉철한 지성인 클리프도 베를린의 야만적 변화에 무기력한 이방인일 뿐이다. 샘 멘데스는 클리프까지 양성애자로 바꾸는 모험을 시도했다. “인생은 만족하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이라고 말하는 ‘소 왓(So What)’, “인생은 카바레 같은 곳”이라고 외치는 ‘카바레(Cabaret)’ 등 노래들은 드라마와 잘 맞물렸다. 무대는 이물감 없이 카바레로, 기차로, 하숙집으로 바뀐다. 시험대에 오른 건 한국 관객의 스펙트럼이다. 히틀러 통치를 불러왔던 ‘전체주의’와 동성애라는 주제(이자 소재)는 감성으로 받아 안기에 상당히 부담스러운 소재. 그로테스크하고 지적인 자극에 관객들이 기꺼이 마음을 내줄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7월 3~16일에는 서울 세종문화회관으로 무대를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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