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남의 버자이너 모놀로그] “숨기고 감출 대상이 아니야”

여성의 성기를 이르는 말인 ‘버자이너’, 지금껏 있어 왔지만 은밀하고 음습한 곳에 숨겨놓고 쉬쉬하던 그곳이, [버자이너 모놀로그]에서는 공연 내내 주인공이 돼 관객을 향해 외치고, 속삭이고, 울고, 웃는다.

버자이너가 우리말로 번역돼 사용될 때 이 단어는 사실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사회적 관습과 터부란 무서운 족쇄 같아서, 금기시 된 말을 했을 때는 대가를 치뤄야 한다는 관념이 사람들 마음 속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극이 처음 시작할 때 배우가 단어를 입밖에 꺼내기까지 배우도, 관객들도 긴장하기는 마찬가지다. 머뭇거리듯, 쑥스러운 듯 ‘걱정된다’고 말하며 꺼낸 이 단어는, 하지만 한번 꺼낸 이후에는 더 이상 창피하지도, 금기 시 되는 단어가 아닌, 여성의 소중한 일부분이 된다.

1시간 30분 동안 한 명의 배우는 10여명의 여성이 되어 그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또는 코믹하게, 과감하게 내보인다. 그들은 ‘버자이너’에 대한 남성들의 편견, 자신의 편견 고통 받는 여성이 대부분이다.

남편으로부터 그곳의 털을 깎기를 강요 받고 고통스러워 하는 여성, 처음 성적인 자극을 받고 남자친구로부터 면박을 당한 후, 두려워 누구도 사귀지 못한 할머니, 성에 무감각해져 시들 거리는 여성 등이 받는 성적인 압박을 풀어 낸다. 버자이너는 여성의 성과 정체성을 가장 직접적으로 나타내는 이름이자 매체인 것이다. 그래서 이름을 숨기고 왜곡하는 사회에 대해 호소하고 질타한다.

[버자이너 모놀로그]를 맡은 장영남은 수많은 여성의 심정을 토로하고, 때로는 버자이너가 되면서 집중력 있는 연기를 보여준다. 직장 여성, 주부, 70대 할머니, 5살 여자 아이까지 소화해 내며 그들의 고통과 기쁨, 두려움과 희망을 전한다. 모놀로그 드라마에서 배우의 역량에 많이 의지함을 생각하면 믿음직한 배우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10여 명의 여성을 끊이지 않고 이어서 표현한다는 게 사실 용이한 일은 아닐 것. 간혹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은 부분에 있어서는 아쉽다.

이 작품을 보기 전에 직설적이라 민망하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가 있을까. 감추려 하고 숨기려 들어 왜곡될 때나 부끄러울 뿐, 당당하게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면 여성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연인이나 친구와 함께 보면, 그 동안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여성의 몸, 정체성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듯하다. 물론 유쾌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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