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퐁모단걸] “이게 사람 목소리를 뽑는 기계란 거야?”

[다리퐁모단걸]. 우선, 아리송한 제목부터 짚고 넘어가자. 다리퐁이란 처음 우리나라에 전화기가 들어왔을 당시, 텔레폰 즉 전화기를 지칭한 말이다. 모단걸은 모던걸을 말한단다. 서구 문화을 받아들인 신여성 말이다. 전화와 신여성…[다리퐁모단걸] 처음 우리나라에 전화기가 퍼지기 시작하면서 생기는 여러 에피소드로 진행되는 연극이다. 지금이야 화상 전화까지 가능한 시대지만 서신이나 봉화 이외에는 상상도 못했던 100년 전 전화가 나타났을 때 사람들은 얼마나 황당했을까. 멀리 떨어진 사람들이 마주보지 않고도 대화를 하다니! 전화기를 처음 들여온 한 양반집에서도 이만 저만 신기한 게 아니다. 멀리 계신 친척댁에 앉아서 안부도 전할 수 있고, 유학 가는 큰 아들 소식도 쉽게 들을 수 있으니 신통한 물건이 아닐 수 없다. [다리퐁모단걸]은 신기한 이 신식 물건을 사이에 두고 생기는 로맨스 혹은 좌충우돌 사건을 맛깔나게 보여준다. 호기심과 도전정신이 강해 우리 나라 최초로 여성 교환원이 된 외출이. 이런 외출이의 남모르는 사랑을 받는 전화기 너머의 군악대장. 그리고 군악대장과 그의 다리퐁을 애써 외면하는 신여성 서연…. 이들의 애틋한 로맨스는 안타까운 눈물을 흘리게 한다. 웃음을 터트리는 에피소드도 별미다. 목소리만 들린다는 점을 악용(?)한 에피소드도 있는가 하면 고종황제의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해 여러 날 다리퐁 앞에서 근신하는 내무대신 이야기도 재미있다. 무엇보다 100년 전 처음 전화기가 들어왔을 때의 이야기라는 신선한 발상이 이 작품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양반으로 구성된 다리퐁 교환원의 권위적이고 제 멋대로인 태도로 여성으로 바뀐다던가, 까만 물인 ‘코피’ 못지않게 지탄과 호기심을 자아낸 다리퐁에 대한 의구심 어린 시선도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100년이 지난 현재도 보도 듣도 못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가 어디 쉬운가. 충격적이라 할 만한 신식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생기는 좌중우돌 에피소드는 공감을 자아낼 만 하다. 하지만 너무 잦은 장면 전환과 암전, 약간 줄여도 되지 않나 싶은 에피소드 구성은 아쉽다. 한 작품에 4~5개의 에피소드가 병렬로 구성되다 보니 극 중간 즈음에 가서는 약간 산만하다. 다행인 것은 외출이의 사랑 이야기가 정점에 이르면 어느새 여기저기에서 눈물을 닦는 기척을 느낄 정도로 이야기는 흡인력을 높인다. 100년 전 선조들이 다리퐁과 처음 마주쳤을 때가 엿보고 싶다면 [다리퐁모단걸]을 찾아가보자. 전화기를 사이에 두고 애환과 기쁨, 슬픔과 희망이 오가고 있는 현장을 느낄 수 있다. 오지 않는 전화를 노심초사 기다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제발 전화를 받기 바라는 마음이 그곳에도 그대로 녹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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