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도록 달린다] 새롭게 만나는 달타냥, 그가 미친듯이 뛴다
지난 2004년 아룽구지에서 초연하며 독특한 형식과 상상력으로 주목 받은 연극 [죽도록 달린다]가 다시 관객 앞에 섰다. 두산아트센터 ‘소극장은 넓다’ 시리즈로 소개되는 이번 작품은 작품성과 대중성을 갖췄다는 입 소문을 타고 순항을 달리고 있는 중이다.
이 작품의 배우들은 제목대로 틈만 나면 뛰고 구르고, 다시 뛴다. 등장부터 워밍업 하듯 뛰면서 등장하는데다 때론 숨이 넘어갈 것처럼 격렬하게, 그야말로 ‘죽도록’ 내달린다. 여기에 라이브로 연주되는 긴박한 북소리와 배우가 만들어내는 고양이 울음소리, 방울소리 등은 이 작품이 가진 독특한 입체감과 분위기를 형성한다.
이렇게 실험적인 장치와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스토리는 비극적인 정극을 택했다. 대중적으로 낯익은 알렉상드르 듀마의 소설 ‘삼총사’를 원작 삼아 달타냥과 왕비, 왕비의 시녀 보나쉬, 추기경과 왕 등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 또한 기막힌 상상력으로 이야기를 다시 한번 비튼다. 17세기 프랑스와 영국을 배경으로 모험과 정의를 내세운 대중적인 소설이 인간 욕망과 배신, 탐욕이 넘치는 비극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독특한 형식과 기막힌 상상력의 결합
추기경의 그늘에서 벗어나질 못하는 나약한 왕과, 그런 왕 때문에 여자로서의 외로움에 떠는 왕비, 보나쉬를 사랑한 달타냥으로 향하는 왕비의 유혹이라는 흥미로운 상상은 이 작품에 생명을 불어 넣어준다. 이렇게 다시 한번 가공된 인물들은 비극에 가속을 붙이듯, 욕망을 좇듯 뛰고 뛰고, 또 뛴다. 특히 왕비의 욕망에 이용당하는 달타냥의 달리기는 보는 사람마저 입이 벌어질 정도. 달타냥은 처음 보나쉬의 사랑을 얻기 위해, 그리고 어떤 목적을 위해서든 숨막히게 달린다. 이 극에서 달리기는 욕망을 위한 무모한 질주로 봐도 무방할 정도다.
배우들은 무대에서 퇴장하지 않고 효과음을 내거나 함께 극을 본다. 서재형 연출은 이에 대해 “가끔 배우들이 무대 뒤에서 전화통화를 하는 등의 행동이 싫어 퇴장을 못하게 한 것”이라고 우스갯 소리로 답했지만 퇴장하지 않는 배우와 라이브 연주는 이 작품이 가진 또 다른 매력이다. 극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극에 참여 하지 않는 배우들은 오히려 무대를 채워주고 보강해주는 듯 하니까.
배우들의 열연은 빼 놓을 수 없는 요소. 특히 왕비를 연기하는 홍성경과 왕으로 분한 민대식은 캐릭터에 몰입하고 연기하는 데 있어 모자람이 없다. 나약하고 겁많지만 내면에서는 울부짖고 있는 왕과, 그런 냐약한 왕과 정치적 상황에 의해 고통받고 욕망하는 여왕이 보이는 애증은 흡입력을 발휘한다.
아쉬운 점이 없는 건 아니다. 중반 이후 되풀이 되는 인물들간의 갈등과 감정과잉은 오히려 극의 몰입도를 떨어뜨리는 요소. 권력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왕비에 달타냥과 왕, 보나쉬에 대한 ‘애증’이 더해지면서 후반부 넘치는 감정들은 간혹 불편하다.
[죽도록 달린다]는 2005년 초연 이후 제 41회 동아연극상, 2005년 올해의 예술상 등을 수상하며 작품성과 대중성에 인정 받았다. 이 작품에는 소위 말하는 스타배우가 출연하지 않는 창작 연극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특한 발상과 배우들의 열연으로 관객과 여론의 주목을 받고 있는 점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초연 당시 관객 6명 앞에서 공연을 하곤 했다고 한다. 이제 배우들은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많은 관객들 앞에서 공연을 하고 있으니 열심히 뛰어도 힘들지 않을 듯 하다.
글 : 송지혜(인터파크ENT 공연기획팀 song@inter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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