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자식 사랑했네> 사랑-사람 이야기 한 조각

소매를 걷어 올렸을 때 드러나는 팔뚝 힘줄에 반했다. 운명의 신호? 천만에. 첫 눈에 사람에게 반할 수 있는 백 만가지 요인 중 하나에 걸려든 것 뿐이다. 연극 <그자식 사랑했네>는 나에게만 특별하지만 모두가 느꼈을 법한 사랑의 잔재들을 여지 없이 파헤쳐, 공감과 괴로운 마음을 동시에 만들어낸다.

임용고시를 준비중인 28살 보습학원 영어강사와 시인을 꿈꿨던 26살 국어강사는 첫 만남, 우연한 술자리, 어색한 농담과 격양된 웃음, 그리고 나서의 키스처럼 연인되기 단계들을 차근차근 밟아 나간다. <그자식 사랑했네>가 보여주는 남녀사(史)는 별거 없다. 다르지 않다.

그래서 내숭 좀 떨어주고 점잔을 좀 뺐거나, ‘비밀’로 기억을 특화시키고 싶은 사람들은 이 무대를 마주하고 있기가 민망하다. 현실을 환상으로 안내하는 무지개 대신 사람이 있는 ‘너의 일상’을 들어다 놓은 순간이동무대가 이 작품이기 때문이다.

사랑했던 그 자식과 헤어진 전직 국어강사 미영(박보경 분)이 이야기하는 그와 나의 사랑 이야기 속에 “난 너한테 뭐니?”, “미안하단 말이 그렇게 어려워?”와 같이 거창하진 않아도 관계에 민감한 말이 가득하다. 과거 ‘그 자식’이 있었던, 과거 ‘그 자식’이었던 관객들의 오랜 기억이 아찔해 진다.

사랑은 스스로 취하고 빠지는 것이기에 미영을 사랑하는, 그리고 헤어지는 정태(민준호 분)가 나쁜 놈은 아니다. 순애보는 드물고, 그래서 어려운 것이다.

‘사실적으로 간다’라는 컨셉에 맞게 작품은 지극히 ‘오늘’이다. 하지만 이야기를 풀어주는 요소들은 연극적인 힘을 최대로 발휘하고 있다. 배경이 되는 보습학원, 그곳에 세워진 칠판 위에는 둘이 마시는 맥주잔도 있고, 야동으로 바이러스 먹은 컴퓨터도 있다. 어지러운 분필 낙서 끝을 따라가 보면 만남, 이별, 그리고 상대방을 향한 속마음이 친절하게 적혀 있기도 하다. 앞뒤좌우로 헤쳐지고 모아지는 칠판을 보며 관객들의 상상력은 그럴듯한 무대 전환을 충분히 그려낼 수 있다.

작년 첫 선을 보인 이후 극장을 바꿔 세 번째 무대로 만나는 중이다. 모든 것은 이면(二面)이 있듯, 영원한 아름다움 속에 사랑의 추억만큼은 남겨두고 싶어하는 사람들과, 사랑했던 사람을 아직도 ‘그 자식’이라고 부를 만큼 어떤 색깔의 감정이든 남아 있는 사람들이 <그자식 사랑했네>를 바라보는 시선은 분명 다를 것이다.


글 : 황선아 기자(인터파크ENT suna1@interpark.com)



[ⓒ플레이DB m.playdb.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