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금> 무대 맞춤형 장금이를 만나다
경희궁에 설치된 야외 무대. 퓨전한복을 넘어선 과감한 디자인의 의상을 입은 장금이가 자신이 지닌 숙명에 괴로워하며 울부짖고, 그 옆을 민정호가 묵묵히 지킨다. 이어 진행되는 역사적 소용돌이. 개혁을 추구하는 조광조와 나약한 중종, 왕을 조종하려는 오겸호의 첨예한 대립이 빠르게 진행된다. 역사적 사실과 픽션이 얽혀 끝을 향해 달려가는 이 작품은, 뮤지컬 <대장금>이다.
뮤지컬 <대장금>이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경희궁 야외무대에서 펼쳐지고 있는 이 작품에서 초연 때의 모습이란 찾아보기 힘들다. 제목만 같을 뿐 스토리, 음악, 등장인물, 의상이 모두 달라졌다.
결과는 뮤지컬 맞춤형 장금이를 보게 됐다고 할만하다. 초연 당시 드라마 줄거리를 그대로 압축해 맥빠진 스토리 전개를 보여줬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과감하게 드라마에서 벗어나 새로운 이야기를 선보인다. 여기에 밋밋했던 캐릭터에 개성을 불어넣고 음악과 의상, 안무에서는 현대적인 해석을 불어넣어 독특한 볼거리를 마련했다.
초연 때 방대한 드라마 스토리에 얽매였던 경험 때문인지, 이번에는 아예 원조 드라마의 줄거리는 양념 정도로만 사용했다는 점이 이번 무대의 가장 흥미로운 점. 음식경합 에피소드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나래이션과 빠른 안무로 흘려버린다. 드라마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무슨 이야기인지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다. 이렇게 장금이의 음식과 의학 이야기를 포기한 대신, 조광조의 개혁이라는 역사적 사실이 채택됐다. 나약한 왕을 사이에 두고, 개혁과 반대파라는 간단한 대립구조로 초점을 옮겨버린 것이다.
분명 주인공은 장금이인데 이야기는 조광조의 개혁 시도로 흘러간다는 게 이번 작품의 강점이자 약점이다. 장금이의 방대하고 구구절절한 사연을 생략함으로써 무대 맛을 찾았지만 주객이 전도되는 느낌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장금과 민정호의 알콩달콩한 사랑은 흐뭇한 미소를 끌어낸다. 어려서 민정호를 보고 한 눈에 반해 “내가 예쁜가요?”라며 적극적으로 대쉬하는 장금이와 한결 부드러워진 민정호와의 러브스토리는 역사의 암투를 그린 스토리에서 별처럼 빛난다.
초반 장금의 개인사를 쏟아내며 정신없이 흘러가는 듯한 이 작품은 중반 이후부터 긴장감을 가지고 진행돼 이지나 연출을 힘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캐릭터와 어울리는 배우들의 이미지도 무대를 생동감 있게 만든다. 특히 고영빈은 부드러우면서 사려 깊은 민정호 캐릭터와 잘 어울리고, 조광조의 조정석, 오겸호의 김태한도 제 몫 이상을 해준다.
한번의 쓰라린 경험 이후, 장금이가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관객 앞에 섰다. 더 파격적이고 날렵해진 모습에 관객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이번 고궁 무대 이후, 좀 더 성숙해진 대장금을 만나기를 바라는 마음은 한결 같을 것이다.
글 : 송지혜 기자(인터파크INT song@inter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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