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듯이 햄릿> 광대가 든 인형 속 햄릿의 모습

단순한 재공연 작으로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이 작품은 여전히 변화, 진화 중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공연창작집단 뛰다의 <노래하듯이 햄릿>이 설치극장 정미소가 2008년에 총 3편의 작품을 선보이는 창작지원프로젝트 중 마지막 주자로 공연 중일 것이다.

또, 햄릿이다. 하지만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를 고뇌하는 햄릿이 아닌, 그를 이야기 하는 다섯 수다쟁이들이 주인공이다. 황량한 벌판에서 해골을 발견한 이들 광대들은 해골 옆에 놓여있던 수첩의 기록을 토대로 해골의 주인, 햄릿의 죽음을 추적해 나가며 떠도는 영혼의 한을 토닥거려 줄 진혼굿을 벌린다.

광대들이 뛰노는 너른 무대 위에 수레(무대)가 있고, 객석 앞에는 찰랑거리는 강물이 차 있다. 작은 공연장 안에 광대들의 자리와 햄릿이 살던 시대, 그 사이를 오고 가는 제 3의 무대가 공존한다.

수첩의 기록들을 한 장씩 넘길 때마다 이목구비도 비뚤어진 탈이, 손 발이 없는 인형이, 공중에 드리워진 천이 사람이 되고 배경이 되며 이들을 옥죄고 감싸는 사유가 된다. ‘정해지지 않음’은 ‘무엇으로도 변할 수 있는’ 신비롭고 놀라운 재치를 부린다.

자유로운 공간에 펼쳐지는 이들의 재연 속에서 광대들은 아버지 죽음에 통곡하는 햄릿이 되었다가 사랑에 상처받은 오필리어도 되고, 햄릿이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삼촌이자 새 아비 앞에 벌려 놓은 연극 속 광대로도 보인다. 돌고 돌아 결국 누구에게도 잘못을 묻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비극적 굴레 속 햄릿이 떠오른다. 아이러니한 세상사다.

이 작품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음악극이다. 즐겁게 웃고 이야기 하고 떠들며 노래하는 광대들의 모습과는 달리 구슬픈 단조의 음색이 가득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들 얼굴에는 떠나지 않는 미소가 한아름 그려진다.

2005년 초연 이후 워크숍을 통한 장면 및 노래 등이 추가, 삭제되며 텍스트, 음악, 움직임 등이 계속 변하고 있다. 그렇기에 프로그램 뒷면에 ‘공연일지’가 아니라 ‘제작일지’로 오늘날의 행보까지 기록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노력이 일구어 낸 작품의 구석구석들이 자칫 관객들에게 지루함을 가져다 줄 수도 있겠다. 정독하진 않았어도 누구나 ‘내용’은 아는 햄릿을 장면 별로 나열하듯 풀어가는 모습은 장면 각각의 신선함 보다는 형식의 반복으로 비춰질 수 있다. 사라져버린 마지막 장에 대한 광대들의 추측은 그리하여 쫓기듯 빠르게 지나가는 느낌이 크다.

‘영혼을 달래주는 광대들, 그들로 재현되는 햄릿의 삶’이라는 독특한 시각과 그것을 풀어내는 노래와 춤, 그리고 인형극이 <노래하듯이 햄릿>이 가진 제일의 매력임은 분명하다. 오랜 시간 훈련되어 각각의 개성이 재간지게 드러나는 광대들의 몫이 무엇보다 크다. 바람 좋은 늦은 저녁 때 호롱불 켜고 떠돌이 유랑 극단의 인형극을 보는 것 같은 소박하고 포근한 정취가 물씬 묻어나오는 이 작품을 보노라면 무대 예술만이 줄 수 있는 끝 없는 상상의 재미에 감탄이 절로 나올 것이다.


글: 황선아 기자(인터파크INT suna1@inter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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