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메네오> 오케스트라, 가수들의 호연 앙상블

길지 않은 서른 다섯 생애 동안 모차르트가 남긴 오페라 중 스스로 가장 사랑하는 작품이라고 꼽은 것은 ‘돈 조반니’도, ‘피가로의 결혼’도 ‘마술피리’도 아닌 <이도메네오>였다. 1781년 뮌헨 퀴빌리에 극장에서 초연한 이 작품이 약 230년 만에 한국 무대에 섰다.

지난 21일부터 나흘간 예술의전당에서 오페라 <이도메네오>가 무대에 올랐다. 바다의 신 넵튠과의 약속으로 아들을 죽여야 하는 비극적 운명의 왕 이도메네오, 적국의 여인 일리아와 사랑에 빠진 이도메네오의 아들 이다만테, 그리고 사랑하는 왕자의 마음을 빼앗겨 질투심에 불타는 아가멤논 왕의 딸 엘레트라의 갈등이 극적 긴장감을 한시도 놓지 못하게 한다.

총 3시간이 넘는 3막의 공연은 2막으로 가지를 쳤다. 이도메네오의 심복인 아르바체의 아리아 등이 빠졌지만 극의 흐름은 무리가 없었다. 풍성함이 덜했지만 중심을 관통해 나가는 힘은 살아있었다. 다만 관객들에게 삭제된 부분에 대한 사전 언급이 없었던 점은 내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도메네오 역을 맡은 테너 김재형의 호연이 무엇보다 빛났다. 1998년 독일 뮌헨 ARD 국제 음악 콩쿨에서 순수 국내파로 1위 없는 2위를 거머쥔 그는, 어찌할 수 없는 운명 앞에 선 인물의 고뇌를 드라마틱하고도 완벽한 기교로 호소력 짙게 표현해 냈다. 왕자의 사랑을 빼앗긴 엘레트라 헬렌 권의 연륜에서 뿜어지는 탁월한 연기력을 보는 것은 국내 오페라 팬들에게 좋은 경험이었을 것이다.


가수가 다른 성의 역을 맡는 트라베스티(travesti)는 대부분 여자가 남자 역을 맡기 때문에 ‘바지역할’이라 부르는데, 이번 <이도메네오>에서는 메조소프라노 양송미가 이다만테로 바지역할에 나섰다. 주로 테너가 이 역을 맡는 것에 비해 메조소프라노로서 분한 양송미는 듬직한 체격과 안정적인 소리로 역에 큰 무리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바지역할이 오페라에서는 잦은 일이지만 주로 소년이나 하인, 심복 등 주인공의 주변 역할에 주어지는 터라, 관객들은 단발머리의 그녀가 굳이 이다만테로 분한 것엔 고개가 갸웃거려질 듯 하다.

무엇보다 아쉬운 점은 무대이다. 사실성을 배제하고 영상과 조명으로 상징성을 배가시킨 무대는 간결하고 세련되었지만, 단순함이 명료함과 더불어 허전함을 동시에 수반하고 있는 결과를 낳았다. 가수들이 합창과 더불어 무대를 오가는 동선의 유기성도 부족해 보인다.

커튼콜 박수의 상당량은 서울시향에게 향한 것도 사실이다. 정명훈이 이끄는 서울시향이 오케스트라 피트에 자리한다는 것 자체가 큰 매력일 뿐더러, 이들은 기존 음악회에선 쉽게 나서지 않는 타악과 현악의 매력을 십분 발휘하여 음악에 탁월한 드라마틱함을 실었다. 탄탄한 믿음의 오케스트라와 새로운 작품을 탐하는 국립오페라단의 의지가 신년 초 객석을 뿌듯하게 만든 명작을 선사했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국립오페라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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