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식 백반 맛있게 먹는 법> 희망고문의 최후는?

꿈이 없다 질책하지 마라. 그 사람에게 섣불리 꿈을 제시해 주려 하지 마라. 그리고 무엇보다, 그 꿈으로 상대를 인도하지 않은 채 돌아서지 마라.

타인은 너무 쉽게 나에게 드높은 하늘을 보여주지만, 견뎌낼 수 없는 폭우와 번개가 그 안에 있을 수 있음을 알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때론 꿈이 없는 것보다 더 불행한 사람은 자신의 꿈이 헛됨을 뒤늦게 깨달은 사람일 지도 모른다.

<가정식 백반 맛있게 먹는 법>엔 꿈을 가진 두 사내가 나온다. 유려한 말솜씨와 두터운 뻔뻔함으로 온몸을 무장한 도서영업사원 양상호(임형택 분)는 어수룩한 만화가 김종태(김문식 분)의 집에 들어오는데 성공한다. 전문가들의 검증된 지식이 올 컬러 사진과 함께 수록된 백과사전을 기어코 파는 것이 그의 역할이자 오늘의 꿈이다.

만화가 김종태는 번번이 뺀질뺀질한 판매원에게 당하고만 있다. 잠시 화장실만 쓰겠다는 사람이 거실에 주저 앉아 철 지난 백과사전을 싸다고 할 수도 없는 특별세일가로 주겠다며 계약서를 들이 밀자, 가만히 서명 난에 자신의 이름을 적는다.

여기까지 보면 영리한 영업의 달인이 어떻게 희생양을 요리하는지 보여주는 영락 없는 한 편의 재간극이다. 하지만 본 게임은 지금부터다. 가정식 백반 요리를 배우고 있다는 만화가가 판매원에게 함께 점심을 먹자고 권유하면서 수줍던 그의 꿈의 실체가 서서히 드러난다.

가정식 백반의 맛은 어떨까. 대체로 간이 싱거운가, 혹은 국의 건더기를 좀 더 크게 썰어 넣는 것인가. 정확히 규정할 수 없는 평범함을 좇아 온 시간들. 만화가의 꿈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흘러가는가. 빈 손의 그가 희망의 이름으로 내 달리기 시작했던 출발선에서 영업사원은 무엇을 했는가. 선함을 가장한 희망고문의 최후를 그는 예상이나 했을까.

흔히 ‘밀도 있는 2인극’이라는 수식어에 따라붙는 ‘무대를 짓누르는 무게감’은 이곳에 없다. 쉬지 않고 능수능란하게 쏟아내는 영업사원의 언변에 관객들도 휘둘리며 웃기에 바쁘다. 순간 넋을 놓고 있었다면 뒤통수를 치는 찌릿한 결말에 더욱 어안이 벙벙해질 것이다. 한 문장도 빠짐 없이 존재의 이유를 갖고 둘의 입을 오가는 대사는 이렇듯 관객의 혼을 쏙 빼놓는다.

두 남자는 2인극에서 배우의 역량과 호흡이 무엇인지 잘 보여주고 있다. 질질 끌리는 정장 바지와 불룩 나온 뱃살도 극 몰입에 한 몫을 한다. 작지만 대단히 알차다. 지난 해 2인극 페스티벌에서 빛을 내어, 올해 벌써 두 번째 공연이다. 오랜만에 소극장을 꽉 채운 뿌듯한 무대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코르코르디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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