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척가> 그 무엇도 진보한 놀라운 감격
작성일2011.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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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이 커졌다. 공간의 의미가 아니다. 무대를 향한 호흡은 담대했고, 시야는 넓어졌다. 오밀 조밀 맛있는 재미에 더하여 파도가 일고 폭풍이 몰아쳤다. 거대한 소용돌이 끝에는 커다란 한숨을 파안대소로 받아치는 해학의 맛이 꿈틀거리며 살아 숨쉬었다. <억척가>는 이자람과 판소리 모두 이전의 어떤 모습보다 진보했음을 보여주는 무대다.
커다란 달구지를 끌고 전쟁터를 누비며 버려진 잡동사니들을 줍거나 사들여 되파는 전쟁상인 억척네, 성이 다른 세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는 그녀의 삶을 <억척가>가 담아 낸다. 브레히트의 희곡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을 원작으로 하나, 이야기의 뼈대만 가지고 왔을 뿐 표정도 의미도 다르다.
뚜렷한 이념이나 투철한 자기 의식이 중요한 게 아니다. 그저 착하고 정직하게 살고자 하는 한 사람, 꽃 다운 열 여섯에 시집 온 김순종이 김안나, 억척네로 이름을 바꿔 다는 과정에서 우리들이 목격하는 그녀의 가치 파멸과 몰락. 불우한 시대가 낳은 기구한 개인사로 끝날 법한 이야기가 시공을 막론하고 생을 사는 인간 전체의 숙명으로 투영되고 있음에 <억척가>는 개성 넘치는 창작극으로 새롭게 서고 있다.
주어진 생을 살아내고 있는 본능 이전의 본능, 의지 이전의 의지. 쉬이 형용할 수 없는 생명, 인간, 삶의 관계가 이자람의 몸짓과 소리로 그려진다. 전작인 <사천가>가 매 장면 인물변신과 소소한 반전의 재미가 일품이었다면, <억척가>에서는 커다란 그림을 관통하는 선 굵은 전개가 돋보인다.
전쟁통에 자식들을 차례로 잃고, 벼랑 끝에 몰려 구슬프고도 오싹하게 절규하는 억척이의 울음에 소름이 끼친다. 그러다 암전 후 어느새 눈물을 닦아낸 그녀가 “그러지 않습니까?”하고 되물을 때 오그라든 마음이 순식간에 풀리니, 이자람은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법을 아는 사람임이 확실하다.
북, 장구, 드럼, 베이스, 퍼커션 등 국악과 양악이 어울려 음악을 만들어 흥을 돋구고 긴장을 더한다. 경계를 허문 이 모든 조화는 이야기, 배역, 작품, 작품이 나아가는 방향을 보여주고 있다. 판소리가 아닌 막내 딸 추선이의 노래가 아름답게 기억되고 있는 것도 그 한 예이다.
올해 의정부국제음악극축제에서 첫 선을 보여 LG아트센터에서 6일간 서울 공연을 이어가고 있으나 이미 전석 매진이다. 벅찬 감동을 주는 잘 만들어진 작품에 기립 박수를 칠 수 있는 기쁨은 관객들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그 특권을 누릴 수 없는 사람들에게 씁쓸한 위로를 건내본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LG아트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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