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척가> 그 무엇도 진보한 놀라운 감격

판이 커졌다. 공간의 의미가 아니다. 무대를 향한 호흡은 담대했고, 시야는 넓어졌다. 오밀 조밀 맛있는 재미에 더하여 파도가 일고 폭풍이 몰아쳤다. 거대한 소용돌이 끝에는 커다란 한숨을 파안대소로 받아치는 해학의 맛이 꿈틀거리며 살아 숨쉬었다. <억척가>는 이자람과 판소리 모두 이전의 어떤 모습보다 진보했음을 보여주는 무대다. 커다란 달구지를 끌고 전쟁터를 누비며 버려진 잡동사니들을 줍거나 사들여 되파는 전쟁상인 억척네, 성이 다른 세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는 그녀의 삶을 <억척가>가 담아 낸다. 브레히트의 희곡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을 원작으로 하나, 이야기의 뼈대만 가지고 왔을 뿐 표정도 의미도 다르다. 뚜렷한 이념이나 투철한 자기 의식이 중요한 게 아니다. 그저 착하고 정직하게 살고자 하는 한 사람, 꽃 다운 열 여섯에 시집 온 김순종이 김안나, 억척네로 이름을 바꿔 다는 과정에서 우리들이 목격하는 그녀의 가치 파멸과 몰락. 불우한 시대가 낳은 기구한 개인사로 끝날 법한 이야기가 시공을 막론하고 생을 사는 인간 전체의 숙명으로 투영되고 있음에 <억척가>는 개성 넘치는 창작극으로 새롭게 서고 있다. 주어진 생을 살아내고 있는 본능 이전의 본능, 의지 이전의 의지. 쉬이 형용할 수 없는 생명, 인간, 삶의 관계가 이자람의 몸짓과 소리로 그려진다. 전작인 <사천가>가 매 장면 인물변신과 소소한 반전의 재미가 일품이었다면, <억척가>에서는 커다란 그림을 관통하는 선 굵은 전개가 돋보인다. 전쟁통에 자식들을 차례로 잃고, 벼랑 끝에 몰려 구슬프고도 오싹하게 절규하는 억척이의 울음에 소름이 끼친다. 그러다 암전 후 어느새 눈물을 닦아낸 그녀가 “그러지 않습니까?”하고 되물을 때 오그라든 마음이 순식간에 풀리니, 이자람은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법을 아는 사람임이 확실하다. 북, 장구, 드럼, 베이스, 퍼커션 등 국악과 양악이 어울려 음악을 만들어 흥을 돋구고 긴장을 더한다. 경계를 허문 이 모든 조화는 이야기, 배역, 작품, 작품이 나아가는 방향을 보여주고 있다. 판소리가 아닌 막내 딸 추선이의 노래가 아름답게 기억되고 있는 것도 그 한 예이다. 올해 의정부국제음악극축제에서 첫 선을 보여 LG아트센터에서 6일간 서울 공연을 이어가고 있으나 이미 전석 매진이다. 벅찬 감동을 주는 잘 만들어진 작품에 기립 박수를 칠 수 있는 기쁨은 관객들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그 특권을 누릴 수 없는 사람들에게 씁쓸한 위로를 건내본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LG아트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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