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디 레인> 뫼비우스 띠 위를 걷는 자들

어린 시절에 우리는 남다른 사람이 되기를 꿈꾸었던 것 같다. 아이들은 이다음에 커서 공룡이 될 거라고 큰소리를 쳤다가, 그 다음날은 기관차가 되고 싶다고 하기도 한다. 학교에 들어가서는 대통령, 우주비행사, 정글탐험가를 꿈이라 말하지만, 몸집도, 키도, 그리고 사고의 폭도 크고 넓어질수록 우리는 '보통사람'처럼 살아가기를 은연 중에 갈망하고야 만다. 큰 탈 없이, 큰 무리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인생. 특별하지 아니하고 흔히 볼 수 있어 평범한, 뛰어나지도 열등하지도 아니한 중간 정도(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보통' 정의)의 인생. 이것은 과거의 꿈을 버린 것이 아니라, 남들 만큼 사는 보통의 삶이 얼마나 이루기 힘든 일인가 몸소 부딪혀 얻은 처절한 최후이자 최대의 꿈이 아닐런지.

<스테디 레인>은 평균의 삶을 향한 인간의 사투가 얼마나 눈물겹고 아찔한지 여실히 보여준다. 보통의 삶을 무단히 바라는 경찰 대니는 한 기업의 시청률 조사 표본 집단에 들어가기 위해 무리해서 새 텔레비전을 샀고, 온 가족이 둘러 앉아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지금의 완벽한 가족의 모습이 무척 뿌듯한 사람이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해온 친구 조이에게 "사람 사는 모습은 이러한 것"이라며 자신과 같은 삶을 살기를 끊임없이 강요할 정도다. 독신자 아파트에서 알코올로 대부분의 시간을 채우는 조이의 삶이 '비정상적'인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니가 만들어 내던 표준의 삶은 갑자기 창문을 뚫고 날아든 총알 하나로 걷잡을 수 없이 금이 가기 시작한다. 쨍그랑, 유리창이 깨진 후 들리는 아들의 비명소리와 바닥에 낭자한 붉은 피. 자신의 가정을 위협하는 대상을 향해 거침없이 분노를 쏟아내기 시작하는 대니와 그 곁에서 그간 몰랐던 삶의 욕구를 거부하지 않는 조이의 질주가 <스테디 레인>을 숨가쁘게 끌고 나간다.


<스테디 레인>은 상식과 비상식의 마찰이며 이 마찰은 자신 안에서, 그리고 자신과 사회 사이에서 끊임없이 일어난다. 하지만 대니와 조이의 바람은 태생적 오류, 사회 구조적 모순 안에서 지리하게 맴돌 뿐 결코 이뤄질 수 없다. 그런 대니의 좌절은 조이에게 그간 없던 '보통의 꿈'을 움트게 만들며, 조이 역시 대니가 질주하던 뫼비우스의 띠 위에 서서 끝도 없는 전진을 이어 나가리라 우리 모두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마치 쉼 없이 내리는 비처럼 질척이는 발걸음, 잿빛 하늘만이 그 둘의 몫인 것만 같고, 그들에게서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이 비춰질 때 삶의 무게는 객석을 덮쳐버린다.

오로지 긴밀한 대사의 힘으로만 진행되는 밀도 높은 2인극이다. 어두운 텅 빈 무대에 자리한 두 명의 배우가 쏟아내는 격렬한 스토리 텔링은 대사로 압도당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여실히 체험할 수 있게 해준다. 연륜을 증명해 내고 있는 이석준, 이명행의 호흡과 젊고 거친 에너지의 문종원, 지현준의 궁합이 전혀 다른 매력을 표해내고 있다는 것 역시 놀랍다.

인생은 종종 날씨에 비유된다. 계속될 비인 줄 알았는데 어느새 맑은 하늘이 나타나는 날씨처럼 지금 웃더라도 나중에 울게 될 수도, 지금 좌절하더라도 내일엔 희망이 피어날 수도 있다는 희망고문. 계속 삶을 살게 만드는 그 모습 한 켠을 비춰내며 웃지도, 울지도 않고 막을 내리는 <스테디 레인>이 그래서 더욱 섬뜩하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플레이디비DB



[ⓒ플레이DB m.playdb.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댓글1

  • beelove5** 2014.01.14

    저와 기자님이 같은 생각을 했네요. 듀올로그인데도 굉장히 밀도있고 처음부터 끝까지 스릴 넘치는 극이었습니다. 노련한 연기에서 뿜어져나오는 이석준배우의 그 연륜이 너무 좋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