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이 앗아간 농밀한 중심들 <더 데빌>

<더 데빌>을 보고 나서 가장 먼저 떠오른 작품은 <바람의 나라>였다. 이미지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 작품은, 2006년 초연 당시 '이 작품이 뮤지컬인가 아닌가'에 대한 논란이 일 정도로 기존 서사 위주의 뮤지컬 전개 관습에 익숙해진 많은 이들을 당혹스럽게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낯선 요소들이 이 작품만의 개성과 매력으로 작용해 매해 재연이 이어지고 있는데, 소위 시대를 앞선 사고와 시도가 대중의 잣대 속에 부침을 겪은 후 그 가치를 인정받은 예라 할 수 있다.

이지나 작, 연출의 <더 데빌>과 만난 후 첫 느낌 역시 당혹스러움이었는데, 이것이 <바람의 나라> 경우처럼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거부감인지 스스로를 의심해 본 것이다. 하지만, 그런 까닭은 아닌 듯 하다. 낯설어 어색한 것이 아닌, 명확하지 않은 모호함이 불러온 혼란스러움이었다.

이 작품에서 관객들이 낯설어할 만한 요소는 하나도 없다. 작품의 모티브가 된 괴테의 소설 <파우스트>는 극단적인 상황에 몰린 인간의 방황과 심리를 철저히 그의 의식의 흐름에 따라 순차적으로 기승전결을 밟는 작품이며, <더 데빌> 역시 배경을 뉴욕 증권가로 바꾸었을 뿐 전체적인 플롯은 <파우스트>를 기초로 하고 있다. 또한 각 넘버들은 상징 가득한 단어들로 채워져 있는데, 이들은 전개되는 장면과 그에 따른 캐릭터의 상태를 충실히 설명해 주는 기능으로 등장한다.

날카로운 록 음악 역시 그간 뮤지컬에서 자주 접해오던 부분이며 선과 악, 그 사이에서 파멸의 길로 빠져들어가는 인간의 모습을 강렬하게 표현하기에 아주 적합한 선택이라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오롯이 흡수하기란 쉽지 않다.

그 첫 번째 이유가 볼륨 균형을 잃고 질주하는 라이브 밴드에 있다는 점이 무척 아쉬운 부분이다. 무대 왼편에 자리한 라이브 밴드는 시종일관 높은 데시벨을 발휘하며 배우들의 의미 있는 대사와 처절한 절규를 자신의 사운드에 묻어버린다. 신작 첫 공연에서는 종종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연습과 실제 공연, 빈 무대와 객석까지 꽉 찬 공간에서 음향 차이는 날 수 밖에 없는 터라 프리뷰 기간을 통해 이러한 부분들을 확인하고 수정하곤 하는데, 문제는 <더 데빌>은 프리뷰를 거치지 않고 바로 본 공연의 막을 올렸다는 점이며, 이 요소가 그 무엇보다 관람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제 3의 배우라 불릴 수 있는 코러스들의 개입 역시 수위 조절에 실패한 듯 하다. 고대 그리스 비극에서도 코러스는 배우로서 작품을 진행시키고 종종 극 중에 개입하는 등 빠져서는 안될 역할들을 했으며, 현대 많은 작품들에서도 그 역할의 매력은 여전하다. 하지만 <더 데빌>에서는 코러스의 볼륨 역시 밴드와 함께 주 배우들의 외침을 가리고, 때때로 그들의 의아한 안무는 관객들의 시선을 중심이 아닌 주변부로 분산시킨다.

차디찬 철제로 구성된 2층 무대는 작품의 색채에 꼭 들어 맞는다. 다만 2층으로 연결된 계단을 통해 이뤄지는 배우들의 잦은 등퇴장은 무대 구조를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하는 느낌을 준다.


따라서 <더 데빌>이 시도하고 있는 여러가지 신선한 설정들, 예를 들어 자본주의가 낳은 섬뜩한 현실과 그 속에 자아를 잃고 악마로서 방황하는 현대인의 등장, 그리고 그를 구원하기 위해 자신을 내던지는 거룩한 또 다른 인간성 등은 그 강렬한 매력을 다소 잃은 모습이다. 원작의 메피스토펠레스를 악이자 선이며 피의 내기를 제안하고 또 그 속에 뛰어드는 X로 변신시킨 것 역시 매력적이며 상황에 따라 X가 변하는 모습 등은 대단히 농밀하게 생각한 부분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 설정의 전환이 그들만의 약속처럼 대단히 미묘해 처음 보는 관객들이 알아차릴 수 있는 충분한 설득력을 갖고 있진 않다. 또한 강렬한 이팩트들이 사방을 점령한 무대 위에서 X를 비롯한 인물들의 잦은 등퇴장, 동작, 대사들이 내포한 상징성을 음미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무엇보다 <더 데빌>에서 그레첸의 비중이 원작 <파우스트>에서보다 훨씬 커졌는데, 그녀를 통해 느낄 수 있는 영적 메시지와 강렬한 기운 등은 이 작품에 더욱 특별한 음산함을 부여하는데 단단히 한 몫을 하고 있다. 현실과 환상, 기도와 파멸 사이를 오고 가며 때때로 존과 X를 압도하는 그녀의 존재감에 관객들은 분명 전율할 것이다. 반대로 존이 추구하는 이상, 또 고뇌에 대한 부분이 명확하지 않아 그의 자리는 좁아진 느낌이다.

각 넘버들이 갖는 완성도는 뛰어나다. 이번이 첫 한국 작품인 작곡가 우디 박과 국내 음악 작업을 오래 해온 이지혜 작곡가의 장점이 만나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는 모습이다. <더 데빌>을 향한 관객들의 반응이 나뉜다면, 많은 관객들을 '호(好)'로 끌어당기는 것은 음악일 것이다. 이처럼 <더 데빌>에는 매력적인 요소들로 가득하지만 그 요소들이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며 손을 맞잡고 있는가에는 아쉬움이 크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클립서비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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