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찔한 기울기가 우리와 닮았다, <사회의 기둥들>

지난 19일 개막한 연극 <사회의 기둥들>은 무엇보다 극이 진행될수록 점점 한 쪽으로 기우는 무대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하얀 액자처럼 꾸며진 이 무대는 마치 한 척의 배처럼 등장인물을 태운 채 위태롭게 기울어지고, 그 아찔한 기울기를 느끼지 못한 채 서있는 인물들은 보는 이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그 위태로운 모습이 꼭 우리와 같기 때문이다.

<사회의 기둥들>은 노르웨이 작가 헨릭 입센이 1877년 발표한 희곡으로, 국내에서는 이번에 처음 소개되는 작품이다. 고상한 명분 뒤에 이기심을 감춘 인간들의 본심을 낱낱이 드러내는 이 연극은 <살아있는 이중생 각하><은밀한 기쁨>의 김광보 연출과 박지일, 정재은, 이석준 등 쟁쟁한 배우들의 참여 아래 무대에 올랐다.

연극은 노르웨이의 한 소도시, 시민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영사 베르니크(박지일)의 저택 거실에서 펼쳐진다. 선박회사를 운영하는 베르니크는 높은 도덕성으로 ‘사회의 기둥’이라 불리지만, 사실은 공익을 가장한 철도사업을 벌여 자신의 재산을 늘리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그런데 그의 비밀을 알고 있는 처남 요한(이석준)과 옛 연인 로나(우현주)가 갑작스레 미국에서 돌아오고, 궁지에 몰린 베로니크는 제대로 수리되지 않은 배에 요한을 태워 출항시키려 한다.

헨릭 입센이 130여년 전 쓴 이 이야기는 놀라울 정도로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한국 사회의 모습과 닮아 있다. 저마다 양심을 가진 인간들이 어떻게 탐욕에 휩쓸려 자신을 잃게 되는지, 사회적 권위를 가진 자가 어떻게 제 욕심을 그럴듯한 가치로 포장해 타인의 삶을 지배하는지 등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들, 혹은 우리 자신의 모습이 극 속에 그대로 담겨있다. 여기에 세월호 참사의 기억이 더해져 베르니크가 무리하게 배를 출항시키는 4막에 이르러서는 잔뜩 기울어진 무대를 바라보는 객석에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게 된다.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도 입센의 날카로운 통찰을 전달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배의 출항을 앞두고 갈팡질팡하며 무너져 내리는 베르니크 역의 박지일은 선과 악을 오가는 인간의 나약함을 그대로 드러내고, 부인들에게 도덕적인 삶을 살라고 종용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아집으로 똘똘 뭉친 뢰를룬 역의 이승주는 틈틈이 웃음을 자아내며 극의 무게를 던다. 주연부터 조연까지, 모든 배우가 저마다의 목소리로 다양한 인간군상을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다.

이 극의 4막은 관객들의 예상을 뒤엎는 반전을 담고 있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결말이지만, 이 반전을 통해 입센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무엇인지도 곰곰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공연은 이달 말까지 LG아트센터에서 볼 수 있다.

글: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플레이디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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