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벌렁대는 가슴을 따라 온 것이라고<br> - 연극 이(爾)에서

너를 두고 한양을 떠날 수도 있었지만 내 벌렁대는 가슴을 따라 온 것이라고.

 

조선 연산군조. 궁중배우 공길은 연산의 가학적 성희의 상대자 역할을 한다. 공길은 몸과 웃음을 바치는 대가로 희락원의 우두머리 종3품의 자리에 오른다. 공길은 그렇게 입고 싶어하던 비단 도포를 연산으로부터 하사 받는다. 공길은 금부에서 관리하던 우인들을 희락원에 편입시켜 관리한다.

 

장면#1 [비단도포를 입은 공길]

 

 

 

공길의 남자이자 친구인 장생은 공길이 권력에 눈이 멀어 놀이의 본질을 변질시키는 것을 질타하며 공길을 떠난다. 녹수는 공길에게 연산의 애정을 빼앗기는 것을 시기하여 경회루에서 잔치가 한창일 때 공기의 옷을 벗게 하여 모욕을 준다. 이에 공길은 녹수의 하수인인 형판의 비리를 들추어내는 놀이를 하고 이를 통해 그를 제거한다. 이에 녹수는 홍내관과 짜고 공길의 필체를 모필하여 연산과 녹수 자신을 바방하는 언문 비방서를 작성한다. 언문비방서 사건에 화가 난 연산은 범인을 찾는데 혈안이 된다.

 

장면#2 [놀이한마당]

 

 

 

이에 위기의식을 느낀 공길은 언문으로 된 글들을 모두 불살라 버리고 판세를 뒤집을 생각으로 입궐, 연산에게 비방서 사건을 기화로 언문의 사용을 금할 것을 청한다. 이를 안 녹수는 공길이 쓰다가 버린 파지를 들고 들어와 비방서와 파지의 필체가 같다는 것을 증거로 공길을 잡아 들이게 한다.

 

장면#3 [비방서가 모함이라고 말하는 공길]

 



공길을 떠났던 장생은 전라도에서 반정을 도모하는 이과, 유손의 통문을 한양의 불만 세력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언문비방서를 보게 되고 그것이 공길의 필체임을 알게 되는데 갑자기 장생이 나타나 자신이 언문비방서를 썼다고 하면서 왕을 비방할 사람은 장생, 그 자신밖에 없다고 한다. 이에 격분한 연산은 그를 잡아 그의 눈을 뽑아 버리고 옥에 가둔다.

 

눈이 뽑힌 채로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장생에게 공길이 찾아온다.

우리는 여기서 연극 이(離) 최고의 명대사를 들을 수 있다.

공길

누가 알아준다고 그 따위 거짓말을 해? 누가 누구한테 뭘 배워? 확실히 해둘게 있는데 확실히 해둘게 있는데 난 비방서 쓰지 않았어

장생

 대견한 놈. 너도 천상 광대라. 임금은 내가 애들 모으러 나간 줄 알고 있더군

공길

 애들 단속 못한다고 추궁 받기 싫어서 둘러 댄 것 뿐이야. 난 나를 위해서만 살아. 너도 너를 위해 내 앞에 나타나지 말았어야 했어.

장생

 “난 내 가슴이 벌렁거릴 때만 살아있다고 느껴. 그래서 온 거야. 내가 살아서 꿈틀거리고 있다는 것을, 내가 살아서 웃고 떠들고, 치받고 얻어맞고, 싸고 갈기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누구도 그걸 짓밟을 수 없다는 것을 알리려고 온 거라고. 너를 두고 한양을 떠날 수도 있었지만 내 벌렁대는 가슴을 따라 온 것이라고.”

 

장생은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놓고 시원함을 맛보면서 공길에게 자신의 마음을 드러낸다. 내 벌렁대는 가슴을 따라 온 것이라는 것이 어떤 느낌일까? 내 가슴이 움직이는 대로 사랑에 이끌려 감성에 좌우하는 장생을 보게 된다. 그러나 한 사람만을 향한 그의 마음은 공길을 중심으로 그의 삶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우리도 때로는 미치는 사랑을 하고 싶을 때가 있다.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미치도록 아름다운 사랑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가지기도 한다. 한 번뿐인 인생에 미치도록 사랑도 한 번 해보고 죽을 때까지 사랑이라는 가슴으로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싶다.

 

그러나 장생의 경우는 그의 세계가 공길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장생의 벌렁대는 가슴을 따라 가는 결과가 결국은 공길을 위해 죽음을 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광대로 죽음의 의식을 선택하는 장생을 보면서 저런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역사를 거쳐 현재까지 살고 있는 인생사를 보았을 때에는 장생과 같은 사랑을 해보고도 싶고 그런 사랑을 받아보고도 싶지만 내가 만약 장생이라면 그렇게 사랑하면서 죽음까지도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내 인생에 있어서는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고, 역사에 있어서는 의미가 있는 장생의 죽음과 장생의 사랑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이렇게 가슴에 남아 맴도는 것일지도 모른다.

 

연극 이에는 명장면과 명대사가 많다.

 

연산이 공길을 평하는 대목도 계속 생각나게 한다. 니 놈은 본시 여자도 아닌 것이 여자이고, 부끄럽고 수줍고, 때론 앙탈도 부리고, 때론 눈물도 흘리고, 때론 서글퍼 꺽꺽 울기도 하고 때론 턱없이 헤헤 웃는구나 그것이로? 너는 정히 그것이로? 길아. 이상하지? 돌아서면 이내 니가 사무치니. 길아. 이리 와 나를 안아라.도 사랑인지 연민인지 놀잇감으로 생각을 했는지는 몰라도 사람의 감정에그 어떤 이유도 달지 않는 순수한 마음의 사랑을 나타내는 것이다.

 

장면 #4 [ 연산이 공길에 대한 마음을 표현하는 장면]

 

 

 

죽은 공길에게 연산이 자기의 용포를 벗어 덮어 주면서, 연산이 말한다. 인생 한바탕 꿈! 그 꿈이 왜 이리 아프기만 한 것이냐? . 반겨줄 이 이제 아무도 없으니 나를 빨리 저 어둠 속으로 데려 가다오. 탕진과 소진만이 나였으니 나를 어서. 한때 깜빡였던 불길이로 바람 앞에 촛불이로. 다 탄 불길이로. 연기같이 사라질 불꽃이로. 다 탔구나! .

 

 

장면 #5 [죽은 공길을 끌어앉은 연산]

 

 

연산과 공길 그리고 장생. 권력과 사랑이 뒤엉켜 있는 곳에 장생의 자유로움은 사랑으로 대변하고 있다. 연산과 장생을 사랑한 공길은 자신의 죽음으로 장생을 따르게 되었고, 마지막으로 연산의 웃음을 보게 된다. 세상에 행복한 사람이란 그리 많지 않은데 사랑받을 만한, 사랑하기에 충분한 공길이었으리라.

 

손 닿으면 터질 것 같은 연인이지만 보듬어 안아 마음을 나누면 이 세상 다 얻은 기분이다. 요즘 같은 인스턴트식 사랑이 아닌 죽음을 넘나드는 사랑이란 어느 옛날에, 빛이 바랜 흑백영화 속에나 있는 사랑일까? 겨울을 지내면서 알 수 없는 가슴 시린 사랑이란 잣대로 연극 이를 보면 또 다른 시각의 사랑이 그려질 것이다.

 

내 사랑을 위해 죽음을 택할 사회환경이 되지는 않겠지만 한 번 정도는 생각해 봐도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연극 이는 그래서 또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

 

: 이준한(엔터테인먼트 사업부문 공연사업부 allan@interpark.com)

 

[ⓒ플레이DB m.playdb.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