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벽 없는 자유의 메시지, '몸이 다가온다'
작성일2013.10.23
조회수18,125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그저 바라보면’. 큰 환호 속에 막을 내린 TV 경연프로그램 <댄싱9>은 말, 문자가 아닌 몸과 몸짓으로 빚어내는 이야기가 얼마나 강렬하고 아름다운지 여실히 보여주었다. 낯선 그들만의 언어라는 선입견에 쌓여 있던 몸의 메시지가 국경도, 장벽도 없는 아름다운 소통이 되어 우리 곁으로 점점 다가오고 있다.
이렇게 빠른 템포의 발레도 있구나 싶었다. 이렇게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익살 넘치는 몸짓이 요란하게 오고 가는 것도 무용이라는 게 신기하기도 했다. 세상의 희로애락을 말로 표현하듯, 몸짓에도 그 모든 것이 담길 수 있다는 것, 유별난 해석 없이 보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그것이 정답이라는 무용의 매력이 바로 이러한 것일 테다.
감상을 가두지 않는 자유의 바람은 발레도 예외는 아니다. 유니버설발레단의 <디스 이즈 모던>은 ‘발레’하면 떠오르는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 혹은 ‘지젤’ 등의 고전 발레가 아닌, 신선한 의외의 몸짓을 관객들에게 선사한다. 난해할 것이라는 현대 무용이 그간의 오해였음을 다시 한번 확인해 주는 이 작품은, 보이는 그대로, 느끼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관객이 가장 무대를 만끽하는 사람이 될 거라는 유쾌한 제시다.
세상에서 가장 정직한, 몸
“관객들은 더욱 즐겁고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무대”라지만 “무용수들은 더더욱 힘든 작품”이 <디스 이즈 모던>이기도 하다며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이동탁과 솔리스트 이용정은 입을 모은다. 하루 종일 계속되는 연습으로 시간이 날 때 각자 짬을 내어 식사를 할 정도.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이동탁(위)과 솔리스트 이용정(아래)
“이곳 무용수 대부분이 하루에 한끼 먹는 것 같아요. 다이어트 때문이 아니라 아침엔 너무 피곤해서 더 자는 걸 택하고, 낮에는 종일 연습이 이어지니까요. 대신 한번 먹을 때 꼭 먹고 싶은 걸 먹어요. 피자를 엄청 좋아하거든요.”(이용정)
선화예고, 한국예술종합학교 동기이자 발레단에서 함께 활동하고 있는 스물 다섯 살 동갑내기 친구이며 동료 이동탁은 “혼자 라지 사이즈 한판을 먹을 정도”라며 이용정의 먹성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발레리나는 새 모이만큼 먹고 살 것 같다”는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이들. 특히 이동탁은 “남자 무용수들은 정말 잘 먹어야 해서 가리는 것도 없고,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 술도 잘 마신다”며 무용수들에 대한 편견을 바로 잡는다.
하지만 편견이 아닌 진실 그 이상의 것들이 이들 삶을 채우고 있음도 당연하다. 무용수들이 무대 위에서 백조 같은 우아한 몸짓, 흐트러짐 없는 턴, 지치지 않는 체력을 위해 얼마나 대단한 노력을 하고 있는가는,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을 본 이들이라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터.
“하루라도 무용을 쉬면 몸의 균형이 무너져서 굉장히 힘들어요. 공연 때도 몸의 축이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컨디션이 안 좋거나 전날 리허설이 힘들었다고 생각이 되면 잘 때 딱딱한 바닥에서 자요. 허리가 쫙 펴지는 느낌이랄까? 그러면 다음날 회전 동작할 때 중심이 더 잘 느껴지더라고요.”(이동탁)
무용수라면 다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직업병. 왼쪽 발목이 좋지 않은 상태라는 이동탁은 평소 계단을 내려가거나 길을 걸을 때에도 걸음걸이에 특히 주의를 기울인다. 이용정은 부상 때문에 무용을 그만 두어야 할 위기를 겪기도 했다.
“대학 다닐 때 왼쪽 발등이 안 좋았어요. 인대가 늘어나고 파열도 있었거든요. 발레를 할 수 없었던 상황인데 아팠다가 다시 좋아졌다가, 그 상황이 1년간 반복되니 다시 한번 다치면 발레를 그만 둘 생각으로 죽자고 재활을 하면서 열심히 했죠. 그런데 그때부터 정말 전문 무용수로서 발레에 계속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고 몸도 더 좋아져서 다치지도 않는 거에요. 아파서 쉬고 있으면 빨리 무대에 서고 싶다, 더 연습하고 싶다, 정말 잘할 수 있는데, 그런 생각이 들어요.”(이용정)
한 회 공연을 마치고 나면 “수명이 줄어드는 느낌” 혹은 “기가 다 빠져 말도 못할 지경”이라는 이들, “조금이라도 발레 안에서 행복을 찾지 못하면 단 하루라도 할 수 없는 것”이 무용수의 길이라고 한다.
“<댄싱 9>에 나오셨던 모든 무용수들과 그 프로그램도 너무 고마워요. 저희도 무용을 알릴 의무가 있는데 그 분들이 크게 많이 알려주신 거잖아요. 그 여파 때문에 관객분들은 한번이라도 더 저희가 하는 무용을 보러 오시게 되고, 그때 어떻게 그 사람들을 매료시키느냐 아니냐는 저희 책임인 것 같아요.”(이동탁)
느낀 그대로! 그것이 정답
특별한 동작이 지칭하는 의미가 담긴 고전 발레와는 달리 모던 발레는 안무가의 의도에 따라 새로움이 태어나고 표현된다. 눈동자가 돌아가는 것까지 다 짜여져 있다고 하나, 관객들은 그저 그들의 정교한 움직임을 무장 해제된 시선으로 즐기는 것이 가장 좋은 감상법. 2010년부터 <디스 이즈 모던>이라는 타이틀로 그간 쉽게 접하지 못했던 폭발적인 에너지와 유쾌한 전개, 파격적인 의상 등으로 구성된 모던 발레를 선보인 유니버설발레단은 올해에도 총 네 편의 기발한 현대 작품을 준비했다.
<디스 이즈 모던> 연습장면
와인파티에 초대받은 커플들이 점점 만취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담은 <블랙 케이크>는 점점 우스꽝스럽게 변해가는 사람들의 모습에 키득키득 웃음이 나오는 코믹 무대. 드뷔시 음악에 어울려 신비로운 숲으로 빠져드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두엔데>는 무용수들의 아름다운 몸짓의 정수를 만날 수 있으며, ‘어떤 죽음’이라는 뜻의 <프티 모르>에서는 치마 모양의 독특하고 거대한 소품의 등장과 더불어 남녀 간의 사랑을, <젝스 탄체>는 넌센스로 보이는 여섯 편의 춤을 통해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어려운 세상을 유머러스하게 풀고 있다.
<프티 모르>에서 호흡을 맞추는 이동탁과 이용정은 <디스 이즈 모던>을 찾을 관객들에게 힘주어 말한다. “무용은 결코 어려운 게 아니니까요. 즐길 준비만 하고 오시면 되요. 관객들이 무언가를 느낀다면, 그게 맞는 거거든요. 저건 사랑이고, 또 저건 슬픈 것, 의심하지 마세요. (웃음)”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기준서(www.studiochoon.com)
[ⓒ플레이DB m.playdb.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