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곳에 뿌리내린 개척자들의 이야기, 연극 <병동소녀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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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죽음으로부터 삶의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지난 7일 개막한 연극 <병동소녀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이하 <병동소녀>)는 위와 같은 대사로 약 50여 년에 걸친 실제 인물들의 생생한 역사를 풀어놓기 시작한다. 개막일 언론에 공개된 이 작품의 무대에서는 1960년대 초반 한국을 떠나 타국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했던 재독간호사들의 굴곡진 삶과 감동의 순간들이 펼쳐졌다.
 
연극 <병동소녀>는 예술의전당이 3년 만에 제작한 창작 초연극으로, <알리바이 연대기><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의 김재엽 연출이 내놓은 신작이다. 2015년 2월부터 약 1년간 베를린에 머물렀던 김재엽 연출은 당시 교류했던 한국계 이주민 여성들의 삶에서 깊은 인상을 받아 그들이 지나온 반 세기의 역사를 연극 무대로 담아냈다.
 
이 연극은 극중 정원조 배우가 연기하는 ‘김재엽’이 베를린에서 노년의 재독간호사들을 만나며 시작된다. 이후 40년 전 각기 다른 사연으로 독일로 떠나온 명자, 순옥, 국희, 정민 등 네 여성의 이야기가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펼쳐진다.
 
이 주인공들은 흔히 ‘파독간호사’로 불려왔지만, 이들은 자신이 ‘파독간호사’가 아닌 ‘재독간호사’라 불리기를 바란다. 이들은 정부의 어떤 지원이나 보호도 받지 않고 독일로 건너갔으며, 이후에도 타국에서의 고달픈 생활을 오롯이 감당하며 스스로 삶을 개척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120분간 펼쳐진 무대에서는 재독간호사들이 얼마나 역동적인 삶을 살아왔는지, 1980년 5월 광주 민주항쟁이나 1989년 베를린장벽 붕괴 등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 이들의 삶과 얼마나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는지가 생생하게 그려졌다. 그 중요한 순간마다 기꺼이 거리로 뛰쳐나가 서로 연대하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알렸던 주인공들의 모습이 잔잔한 감동을 전한다.
 
김재엽 연출은 <병동소녀>의 주인공들을 ‘세계시민’이라고 정의했다. 타국에 정착해 ‘한 개의 심장, 두 개의 뿌리’를 가진 사람으로서 다른 소수자들과 적극적으로 연대해온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세계시민이며, 그 모습이 관객들에게도 새로운 삶을 향한 상상력을 넓혀줄 것이라 생각했다는 것. 김재엽 연출은 “우리에게도 역사적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계를 넘어서고 국경, 인종과 같은 벽을 허물어야만 새로운 대안에 대한 상상력이 생길 것 같았다”고 전했다.
 
<병동소녀>에 출연한 배우들은 자신들이 연기한 인물들의 삶을 통해 큰 용기를 얻었다고 입을 모았다. 순옥 역 이영숙은 "실제 역사를 살아오신 분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두시간 안에 보여드릴지 고민이 많았다”며 “낯선 땅에서 삶을 쟁취해오신 분들의 이야기가 너무 감동적이어서 나도 이 연극을 끝내고 나면 더 성숙해질 것 같다”고 말했고, 국희 역 홍성경 역시 “그분들의 치열했던 삶을 생각하면 우리도 열심히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간담회에는 김순임, 서의옥, 송금희 등 작품의 실제 모델이 된 세 명의 재독간호사들도 참석했다. 1966년 프랑크푸르트로 건너가 이후 베를린에서 살아온 김순임 씨는 “연출님이 내 생애 의미있는 순간들을 너무나 감동적으로 잘 표현해주셔서 감사하고 감개무량하다”고 공연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 
 
연극 <병동소녀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12월 3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볼 수 있다.
 
글/구성: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배경훈(Mr.Hodol@Mr-Hod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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