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등대는 어디인가요?” <사이레니아> 배우들의 셀프 힐링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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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혼자 식사하는 것을 즐기는 혼밥족부터 영화나 공연을 혼자 보러 다니는 혼영족, 혼공족까지 등장하면서 혼자 노는 것이 더 이상 쑥스럽지 않은 시대로 변하고 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혼자 있고 싶어 하고, 어떻게 하면 혼자만의 시간을 더 의미 있게 보낼 수 있을까?

플레이디비 배우와의 만남 ‘힘내라 청춘!’ 시리즈의 이번 만남은 외로운 등대지기가 주인공인 연극 <사이레니아>의 배우들과 함께 했다. 지난 12일 대학로 티오엠 연습실A에 모인 <사이레니아>의 배우와 관객 열 명은 혼자 있고 싶었던 순간들에 대해 속 깊은 얘기를 털어놓았다.

66제곱미터 남짓의 아담한 공간에 모인 만큼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도 오붓했다. <사이레니아>에서 8년 동안 홀로 등대를 지킨 남자 아이작 역을 맡은 홍우진, 이형훈과 폭풍우에 떠밀려 온 신비스런 소녀 모보렌 역의 전경수, 김보정은 관객들의 고민에 깊이 공감하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심한 몸살로 끝까지 자리를 지키지 못한 김보정은 관객들에게 사과의 마음을 전했다.)
 
“남과 비교 당하느니 차라리 혼자 있겠어요.”

첫 번째 대화 주제는 ‘혼자 있고 싶어지는 순간’이었다. 여러 사람 앞에서 개인적인 고민들을 털어놓기가 쑥스러웠던 걸까? 잠시 침묵이 흐른 후 한 관객이 먼저 입을 뗐다.

관객 : 남과 비교당할 때 혼자 있고 싶어져요. 혼자 있으면 누구와도 비교당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집에서 맏딸이다 보니 부모님이 저한테 기대를 많이 갖고 있으세요. 그래서인지 가끔 동생과 저를 비교하시더라고요. “얘는 잘하는데 너는 왜 그것밖에 못하니?”라는 얘기를 들으면 열등감이 생기기도 하고 그럴 때마다 혼자 있고 싶었어요.

이형훈 : 저도 맏이예요. 첫째는 원래 부모님이 많이 기대하시잖아요.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연기에 뜻이 있어서 연극부에 들어갔는데, 부모님은 연기보다는 공부를 많이 시키려고 하셨어요. 근데 전 공부의 길로 가서 성공할 것 같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연기연습을 더 해서 대학 실기시험에도 합격했죠. 반면에 공부만 계속했던 동생은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어요. 원하는 진로로 진학에 성공한 저와 자신을 비교하면서 힘들어하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동생은 열등감에 빠져 있지 않고 목표의 방향을 ‘취업’으로 바꾸더라고요. 열심히 준비하더니 대학 1학년 때 취업에 성공했어요. 결국 남과 비교하는 것보다는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삶을 추구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전경수 : 남들이 보는 저와 실제 제 모습이 다르다고 느껴질 때도 혼자 있고 싶어요. 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이미지와 제 평소 성격이 많이 달라서 힘들었어요. 배우는 사람들 앞에서 뭔가 보여줘야 하는 직업인데 전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말수가 줄어드는 성격이거든요. 작품할 때마다 주변 사람들이랑 빨리 친해져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꼈어요. 배우는 내게 잘 안 맞는 직업인가 싶어서 그만둘 생각도 많이 했어요. 하지만 전 저의 내성적인 성격을 극복하려 노력했어요. ‘나도 활발한 면을 가지고 있고,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자존감을 높였죠.
 
뷔페, 고깃집, 클럽, 공항…. ‘혼자 놀기’ 어디까지 해봤니?

‘혼자 놀기’에 일가견이 있는 배우와 관객들이 모인 만큼 자신만의 혼자 놀기 노하우를 공유하는 시간도 가졌다. 카페, 도서관, 공연장은 물론 뷔페나 고깃집까지 혼자 갈 수 있는 곳은 생각보다 많았다.

관객1 : 전 혼자서도 뭔가를 잘 해내는 연습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혼자 제주도로 여행 가보기도 했고요, 뷔페도 혼자 가봤어요. 다음 목표는 놀이공원이에요.

이형훈 : 전 혼자 클럽 가봤어요. 제대 후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일 마치는 시간이 새벽 3시쯤이었거든요. 일 마치고 클럽갔다가 잠깐 놀고 첫차 타고 집에 왔죠. 아주 건전하죠?(웃음)

관객2 : 전 마로니에 공원에서 책을 읽거나 너무 더우면 도서관에 가기도 해요. 혼자 공연을 보기도 하고요. 그러면 생각이 잘 정리되더라고요.

홍우진 : 20대시죠? 20대랑 30대는 좀 달라요. 30대가 되면 아무도 없는 곳에 가고 싶어져요.(웃음)

관객3 : 국립현대미술관에 가보세요. 조용하고 넓고, 볼거리도 많아요.

이형훈 : 삼청동에 있는 곳요? 저도 거기 좋아해요. 아늑하고 전시회도 재밌던데요. 기둥에서 물이 나와서 안개를 만들어주는 설치 미술작품도 있었는데 진짜 신기하더라고요.

관객4 : 혼자 있고 싶을 때 공항에 가보세요. 전 공항에서 가까운 지역에 살았었는데 종종 공항에 가서 생각을 정리했어요. 공항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한 곳에 머무르기보다는 어디론가 바쁘게 움직이잖아요. 그런 사람들을 구경하다보면 왠지 나를 중심으로 모든 사람들이 스쳐지나가는 영화 속 한 장면에 들어온 기분도 들고요. 시간도 빨리 가고 잡념도 사라져요.
 
혼자 놀기는 스스로를 치유하는 방법

혼자 시간을 보내는 법에 대해 얘기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사이레니아>의 외로운 등대지기 아이작에 대한 얘기도 오갔다. 사람들에게 상처 받고 등대지기가 되어 8년간 홀로 시간을 보낸 아이작은 혼자 있고 싶어 하는 현대인의 심리가 극단적으로 반영된 캐릭터로 볼 수도 있다.

홍우진 : 요즘 캐릭터에 몰입하기 위해 혼자 있는 시간을 늘리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아이작에게 혼자 보낸 8년이란 시간이 지겹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가 겨우 찾아낸 유일한 탈출구이자 휴식처가 등대였으니까요. 세상에서 받은 상처 때문에 마음은 괴로웠겠지만 그에게 8년은 일상처럼 쉽게 지나가는 시간이었을 거예요.

아이작에게 등대가 외로운 공간이 아닌 휴식처였던 것처럼, 현대인들에게도 혼자 놀기는 외로운 시간이 아닌 꼭 필요한 휴식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배우들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스스로를 치유했던 경험도 털어놓았다.

전경수 : 전 슬플 때 눈물이 더 이상 나오지 않을 때까지 우는 편이에요. 그러면 좀 후련해져요. 슬픈 감정을 피하기보다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하죠. 일부러 슬픈 음악을 듣거나 해서 그 감정의 바닥까지 치고 나면 괜찮아지더라고요.
 

이형훈 : <사이레니아>가 2인극이다보니 상대배우에게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을 때가 많아요. 그렇게 공연을 마치고 집에 가면 되게 혼자 있고 싶어요. 상대에게 쏟던 정신을 나한테 쏟고 싶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요. 이건 외로움이랑은 다른 것 같아요. 일종의 재정비에 가깝죠.
 

홍우진 : 사람마다 방법이 다르겠지만 여행도 좋은 방법 같아요. 현재 있는 곳에서 혼자 고민하는 것보다는 분위기가 다른 새로운 곳에 가셔서 시간을 보내면 또 느낌이 다를 겁니다.


1시간 동안 이어진 대화가 끝나고 배우와 관객들의 얼굴은 한결 편안해져 있었다. 특히 배우들은 그동안 관객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볼 기회가 별로 없었는데, 가까이서 대화할 수 있어서 즐거웠다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스스로 혼자 있기를 선택한 등대지기 아이작과 그를 찾아온 신비스러운 소녀 모보렌의 미스테리한 이야기 <사이레니아>는 오는 8월 15일까지 대학로 티오엠 연습실 A에서 공연된다.

 

글: 김대열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kmdae@interpark.com)
사진 : 배경훈 (Mr.Hodol@Mr-Hod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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