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기억 일깨우는 오르골 같은 공연, 뮤지컬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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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신작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가 지난 1일 무대에 올랐다. ‘인조로봇’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앞서 공연된 ‘어쩌면 해피엔딩’을 떠올리게 하지만, 극중 설정과 드라마는 전혀 다른 작품이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박해림 작가, ‘판’의 박윤솔 작곡가 등의 참여 소식으로 일찍부터 공연 마니아들의 관심을 받았던 이 작품이 어떤 무대로 만들어졌는지, 지난 8일 공연장을 찾았다.
 
귀엽고 따스한 감성 물씬
‘땡큐’라는 말의 의미 드러내는 반전도 감동  

 
이 뮤지컬의 배경은 ‘싱글’인 사람들이 모여 사는 한 마을이다. 집에 틀어박힌 채 매일 TV만 보며 지내는 늙은 여인 엠마의 집에 어느 날 시키지도 않은 택배가 도착한다. 택배는 정부가 보낸 것으로, 독거노인의 복지향상을 위해 만들어진 서비스봇이다. 놀란 엠마가 의도치 않게 활성화 버튼을 누르는 바람에 깨어난 로봇은 엠마의 일상을 온통 뒤흔든다. 제발 나가달라는 엠마의 비명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집안을 휘젓고 다니는 로봇의 천진한 모습이 웃음을 자아낸다.
 
빛 바랜 가구와 잡동사니가 층층이 쌓인 무대도 로봇의 등장과 함께 생기를 띤다. 로봇이 충전 중이거나 각종 컨디션을 체크할 때마다 무대 벽면에 작동 상황이 그래픽영상으로 보여지는데, 이같은 무대 활용이 극이 진행되는 내내 소소한 볼거리를 더한다.   
 
로봇은 엠마의 건강을 위해 매일 습도와 온도를 체크하고, 음식을 만들고, 집안 곳곳에 쌓인 먼지를 털어낸다. 로봇이 그 대가로 바라는 것은 ‘땡큐’라는 말뿐이지만, 엠마에겐 타인에게 쉽게 마음을 열 수 없는 사연이 있는 듯 보인다. 이후 극이 진행됨에 따라 그녀가 세상을 등지고 죽은 듯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드러난다.
 
‘낯선 존재와의 만남을 통해 세상과 화해하는 주인공’이라는, 자칫 진부하게 느껴질 수 있는 설정은 적절히 배치된 경쾌한 음악,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부드럽고 따스한 감성과 어우러져 깊은 감동을 전한다.
 
특히 그 중심에는 배우들의 열연이 있다. 첫 장면, 앙다문 입술을 삐죽 내밀고 앉아 TV를 보는 스산한 모습으로 등장한 엠마 역의 정연은 생의 가장 괴롭고 슬픈 순간 처절하게 무너지는 모습과 상처를 딛고 차츰 온화해지는 모습까지 모두 완벽히 소화하며 극을 이끌었다.
 
이휘종은 똘망똘망 반듯한 태도의 로봇으로 분해 곳곳에서 미소를 자아냈다. 로봇이 왜 엠마에게 ‘땡큐’라는 말을 듣고 싶어했는지도 후반부에 밝혀지는데, 나름의 반전이라 할 수 있는 이 장면에 이르러서 ‘땡큐’라는 (극의 제목이기도 한) 단어는 ‘사랑했던 기억의 소중함’을 일깨우며 관객들에게도 각별한 의미로 다가오게 된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극이 다소 싱겁게 흘러간다는 것이다. 로봇을 밀어내던 엠마는 로봇과 함께하는 첫 산책에서 그를 선뜻 신뢰하게 되고, 별다른 극적 계기 없이 과거의 중요한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엠마의 이웃 버나드가 굳이 등장해야 하는 이유도 명확하지 않다.
 
작고 예쁜 오르골처럼 각자의 소중한 추억을 일깨워주는 이 공연은 마지막에 생각지 못한 철학적 질문도 던진다. 만약 인간의 기억을 온전히 이식 받은 로봇이 있다면, 우리는 그 로봇을 어떤 존재로 받아들이게 될까? 정연과 이휘종 외에도 정영주, 유연, 이율, 고상호 등이 주연을 맡은 ‘땡큐 베리 스트로베리’는 오는 10월 28일까지 아트원씨어터 2관에서 볼 수 있다.
 
글: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좋은사람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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