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욕은 없다! 류정한의 빛나는 캐릭터들
- 2016.08.04
- 김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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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살인마잭>으로 초연 후 2010년 <잭더리퍼>로 공연명을 바꾸고 거의 매년 공연되는 인기 뮤지컬 잭더리퍼의 2016년 재연 소식은 그 어느 해보다 화제를 모았다. 이유는 대한민국 최고의 배우인 류정한의 캐스팅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서울대 성악과 출신으로 1997년 뮤지컬 <웨스트사이드스토리>로 데뷔한 류정한은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기 힘든 현재 대한민국 최고의 티켓파워를 자랑하는 뮤지컬 배우다. 일단 뮤지컬을 자주 보는 관객이 아니어서 선호하는 배우가 없더라도 그가 공연장의 ‘오늘의 캐스팅’ 보드에 있다면 안심하고 봐도 되는,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는, 몇 안 되는 ‘믿보배’라 할 수 있겠다.
류정한의 이름 석자가 가진 아우라는 사실 그 이상이다. 류정한이 출연했던 작품 히스토리는 곧 국내 뮤지컬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한국 뮤지컬의 역사에서 류정한이라는 이름을 빼놓고는 설명이 불가하다.
류정한은 지난 19년간 (플레이디비 등록 공연기준) 뮤지컬 91편에 출연했다. 90년 후반에 <세자매>를 비롯해 연극 3편과 드라마와 영화 각 1편(영화는 신춘수대표가 뮤지컬 제작환경을 영화로 만든 ‘멋진 인생’이라는 뮤지컬 영화다)에 출연했던 전적을 제외하고는 언제나 뮤지컬에 집중했다. 19년간 그가 선택한 뮤지컬들과 그가 분한 캐릭터들 사이에선 어떤 공통점을 찾기가 어렵다.
<지킬앤하이드>나 <맨오브라만차>, <오페라의 유령> 같은 초대형 라이선스 뮤지컬인가 하면 <영웅>, <프랑켄슈타인>, <마타하리> 등 창작 뮤지컬 초연작에 수시로 이름을 올린다. 헌신적이고 부드러운 남자(시드니 칼튼)인가 하면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안가리는 차가운 사람이다가(라두 대령), 역사적 사명을 지닌 뜨거운 심장의 지닌 실존 인물(안중근)이 되기도 한다.
내년이면 데뷔 20년이 되는 류정한은 거의 한 해도 쉬지 않고 늘 새로운 모습으로 관객들을 만났다. 관객들은 그의 뮤지컬에 대한 집중력과 애정, 그리고 완벽주의에 기반한 탄탄한 실력(가창력과 연기력, 무대매너)에서 나오는 완전히 새로운 모습들에 언제나 열광하고 환영했다.
뮤지컬에 대한 애정과 철학을 가졌기에 그는 장르를 넘나드는 작품과 다양한 캐릭터, 초연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류정한의 19년 뮤지컬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그리고 레어한) 캐릭터를 다섯 편 꼽아보았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2001년 초연 LG아트센터 라울역
류정한은 <오페라의 유령> 초연 당시 크리스틴(당시 김소현)의 약혼자이자 팬텀의 연적인 귀족 청년 라울 역을 맡았다. 2001년 <오페라의 유령> 초연은 그 자체가 축제이기도 했고, 국내 뮤지컬 시장의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이기도 하다. 2001년 오페라의 유령은 우리나라 뮤지컬이 산업으로의 기틀을 다지게 된 초석이 된 작품이자 배우 류정한에게도 뮤지컬 배우로서 지금의 위치에 있게 한 초석이라고 볼 수 있겠다.
한국 뮤지컬 관객들이 가장 사랑하는 뮤지컬 중 한편인 <지킬앤하이드>. 초연은 2004년 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였는데, <지킬앤하이드>는 류정한뿐만 아니라 조승우라는 ‘뮤지컬’ 배우의 등장도 알린 작품이다. 2004년 초연, 2006년~2011년까지 지킬앤하이드에 출연하고 한 동안 지킬을 하지 않다가 2014년-2015년 다시 출연했다. 관객들은 전석매진으로 류지킬의 컴백을 환대했다.
뮤지컬 <이블데드> 2008년 초연 충무아트센터 블랙 애쉬역
이름에서 이미 눈치 채셨겠지만 호러광의 필수 코스이자 스플래터 무비의 원조인 <이블데드>, 그 영화 맞다. 미국의 저예산 B급 호러, 컬트 영화인 이블데드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로, 뮤지컬 버전은 좀더 코믹하다. 비교적 최근 뮤지컬을 보기 시작한 관객이라면 이런 류의 작품이 최근 몇 년간 공연되지 않아 아마도 조금 상상이 안될 수도 있겠다.
류정한이 맡은 애쉬 역은 반듯한 청년이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천연덕스럽고 뻔뻔하게 악령들을 처단한다. 그렇다. 류정한, 코미디도 된다. 게다가 컬트 장르에서 말이다. 류정한은 플디와의 인터뷰에서 다시 하고픈 뮤지컬로 <이블데드>같은 B급 뮤지컬이나 <넌센스잼보리>도 꼽은 바 있으니 재연에서 다시 만나보길 상상해본다.
뮤지컬 <쓰릴미> 2007년 초연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 네이슨 레오폴드 나 역
한국 뮤지컬 역사상 다시 보고 싶은 역대급 페어를 꼽는다면, <쓰릴미>의 류정한 김무열 페어가 아닐까. 수많은 뮤덕을 양산한 쓰릴미의 초연은 2007년 충무아트홀 블랙에서 류정한과 김무열 페어의 공연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회자되고 있는 류정한 김무열 페어의 역사적인 첫 공 320석 중 한 명임이 뿌듯함을 넘어 이상한 자부심까지 느끼는 걸 보면 그 페어가 대단하긴 대단했다)
김무열은 당시 신인이었는데, 이 작품 이후 바로 드라마와 영화로 작품활동을 이어갔고, 한동안 좋은 신인을 찾기 위해 방송 캐스팅 담당자들이 뮤지컬을 보러 간다는 말이 돌 지경이었다.
뮤지컬 <스위니 토드> 2007년 초연 LG아트센터 스위니 토드 역
2006년 <지킬앤하이드> 이후 2007년부터 2008년 사이 류정한의 작품 행보는 예측을 불허한다. 2007년 스티븐 손드하임의 대표작인 <스위니 토드>가 초연되고, ‘당연히’ 류정한이 스위니 토드를 맡아 열연했다. 스위니 토드는 작품 분위기에 맞게 불협화음이 많고 전형적이지 않은 멜로디라 다소 음악이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는데, 그만큼 배우에게는 음악적 테크닉을 요한다.
류정한이 맡은 스위니 토드에선 류정한은 보이지 않고 복수에 눈먼 스위니 토드만이 보였다. (영화와 드라마와 다르게 뮤지컬에서는 배우가 아무리 연기를 잘하더라도 배우가 안보이긴 힘들다) 흥행은 아쉬움이 있었으나 평단과 공연을 본 관객들은 찬사는 엄청났다.
*본문 중 2010년-11년 지킬앤하이드 출연 부분이 누락되어 수정되었습니다.
글 : 김선경 기자(uncanny@inter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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