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께 모든 것을 바쳤어요" 윤석화의 마지막 <마스터 클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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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넓은 성역과 풍부한 성량, 거부할 수 없는 특유의 아우라를 뿜어냈던 한 여성이 있었다. 풍부한 드라마를 담아내는 그녀의 목소리는 청중을 사로잡았고, 세계 제2차 대전 이후 최고의 오페라 가수로 자리했다. 연극 <마스터 클래스>의 실제 주인공인 그녀, 마리아 칼라스는 그동안의 무대를 되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당신께 모든 것을 바쳤어요.”

이번 <마스터 클래스>에서 마리아 칼라스 역을 맡은 배우 윤석화는 연극배우이자 뮤지컬 배우로, 공연제작자이자 연출가로 종횡무진 다양한 무대를 채워왔다. 그녀는 배우 생활 40년을 돌아보며 마지막 <마스터 클래스> 무대에 오른다. 개막에 앞서 한발 먼저 만난 토크 콘서트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께 모든 것을 바쳤어요.”

지난 12일 대학로 설치극장 정미소에서 열린 <마스터 클래스> 토크콘서트에는 '영원한 마리아 칼라스' 윤석화를 비롯해 테너 토니 역의 양준모•김현수, 소프라노 소피 역의 박선옥, 샤론 역의 윤정인, 그리고 반주자 안드레이 비니첸코가 함께 했다.
 
#연극 <마스터 클래스>는…

연극 <마스터 클래스>는 70년대 초, 마리아 칼라스가 줄리어드 음악 스쿨에서 특별강의로 학생들을 가르쳤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이 작품을 쓴 테렌스 맥날리는 실제 마리아 칼라스의 수업을 청강하며 작가를 꿈꿨다.

테너 역의 양준모는 “이 작품은 마리아 칼라스가 3명의 성악가를 가르치는 모습을 통해 그녀의 예술관을 전달한다. 작가는 너무 쉽지도, 어렵지도 않은 적절한 연극적 언어로 그 예술관을 드러낸다. 예컨대 마리아 칼라스는 극 중 ‘잘나가는’ 테너인 내게 ‘나는 기능적으로 노래하는 건 관심 없다. 마음에 우러나는 예술과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노래를 해야 돼’ 하고 가르쳐준다.”라며 작품을 소개했다.
 
#데뷔 40주년, 윤석화가 돌아본 연극인생
올해로 배우 데뷔 40주년을 맞은 배우 윤석화는 이번 작품을 하게 된 감회가 남달랐다. “영상 속 내 모습을 보니 ‘아, 내가 이렇게 살아왔구나’ 싶었다. 이 작품을 하게 되어 감사하고, 함께 한 후배들에게도 감사하다.”고 소감을 밝힌 그녀는 첫인사에 눈물을 보였다.

“40년 동안 행복했던 때는 참 많았다. 그중에서도 ‘무대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행복했다. 똑같은 공연을 하더라도 극 중 인물이 아닌 ‘나’라는 사람이 개입된 날은 꽝이다. 반면에 내가 생각해도 그 역할에 몰입해 무아지경으로 끝난 날은 천국이다. 큰 박수나 기립 박수까지 받게 되면 천국도 그런 천국이 없다. 관객들에게 박수를 받을 때 가장 행복하다.

마리아 칼라스와 나의 공통점은 자신이 선택한 일에 치열하다는 점이다. 작품 속에서 마리아 칼라스가 ‘오 다또 뚜또 아 떼(Ho dato tutto á te)’라는 말을 많이 한다. ‘나는 당신에게 모든 것을 바쳤어요’라는 의미다. 이 대사에서 알 수 있듯 그녀는 사랑이든 일이든 자신이 선택했던 것에 최선을 다하고 치열하게 살아왔던 여자다. 저도 그렇게 치열하게 여기까지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이번 공연이 마지막 <마스터 클래스>인 이유는…
연극 <마스터 클래스>는 어려운 시기에 배우 윤석화를 다시 일으켜 세운 작품이기도 하다. 1997년 <명성황후> 뉴욕 공연 캐스팅 탈락과 함께 슬럼프에 빠진 그녀가 재기할 수 있었던 이유이자, 이해랑연극상 최연소 수상자라는 타이틀을 안겨준 공연이었다. 40주년 기념 공연으로는 이 작품만 한 게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이번 공연을 끝으로 더는 <마스터 클래스>를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40주년 기념 작품으로 <마스터 클래스>를 고르면서 사실 많이 떨렸다. 과연 내가 이 나이에 모노드라마의 두 배가 되는 분량의 방대한 대사에 외국어까지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아무리 내가 치열하게 모든 것을 바쳐서 연습하더라도 가능할까 싶었다. 그래도 이번만큼은 지난 3월 LG아트센터에서 공연했기 때문에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삶과 예술이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고 삶 자체가 예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작품을 많은 사람이 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용기를 냈다. 그만큼 <마스터 클래스>는 참 좋은 작품이다. 하지만 모든 것은 때가 있다고 생각한다. ‘떠날 때를 알고 떠나는 뒷모습이 아름답다’는 말을 좋아하는데, 이제 이 작품은 내려놓을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제 후배가 잘 해주기를 기대하는 것이 내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윤정인 ‘Il bacio (입맞춤)'
 
양준모 ‘Recondita Armonia(오페라 토스카 )'
 
김현수 ‘E lucevan Le stele (오페라 토스카 )'
 
#풍성한 아리아, 새로운 경험
이날 행사에서는 배우들의 짧은 토크를 비롯해 풍성한 아리아를 들어볼 수 있었다. 윤정인의 ‘Il bacio (입맞춤)’로 시작해 양준모의 ‘Recondita Armonia(오페라 토스카 中)', 김현수의 ‘E lucevan Le stele (오페라 토스카 中)'까지 시선을 뗄 수 없는 무대가 펼쳐졌다.

본디 소프라노로 활동 중인 샤론 역의 윤정인은 이번 공연을 통해 처음으로 배우로 자리했다. 그녀는 “오페라는 400년 간 쌓아온 모든 예술이 한 무대 위에 올려지는 종합예술선물세트다. 과거부터 존재했기 때문에 진행이 느린 감은 있지만,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데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오페라와 뮤지컬, 연극 등 각 분야마다 느끼는 감동이 모두 달라서, 다양한 장르를 경험할 때 점점 풍요로움을 느끼실 수 있을 거다.”라며 연극 <마스터 클래스>와 오페라가 사랑받는 이유를 꼽았다.
 
반대로 소피 역의 박선옥은 이번 무대를 통해 처음으로 소프라노 역을 맡았다. “지금까지 배우 생활 30여 년을 해오면서 주로 개성이 강하고 인간이 아닌 역할을 많이 맡았다. 해보지 않았던 발성과 캐릭터에 도전한다는 것이 설레고 두렵지만, 초심으로 돌아가 열심히 연습하고 있다. 성악 발성이 기존에 해오던 것과 달라서 사람들과 이야기도 잘 안 하고 다른 노래도 안 부르고 있다. 노래방도 안 간다. (웃음)”

다른 배우들에게는 ‘처음’을, 윤석화에게는 ‘마지막’을 선물한 연극 <마스터 클래스>는 오는 9월 27일부터 10월 16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예술가의 삶은 무엇인지, 예술가가 바라보고자 했던, 원했던 예술관은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셨으면 좋겠다. 관객 입장에서 (윤석화) 선생님의 연습 장면을 보면, 마리아 칼라스를 위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는 너무나 외로운 사람이었다. 여러분들도 객석 불이 켜지더라도 ‘저 사람이 예술에 한 획을 긋고 저런 삶을 살다 가셨구나.’하는 여운을 느끼셨으면 좋겠다.” (양준모)
 

글: 조경은 기자 (매거진 플레이디비 kejo@interpark.com)

사진: 기준서 (www.studiocho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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