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 끌어온 작은 힘, 희망 이야기하는 작가 김은성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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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마치 히말라야 등반을 떠날 사람처럼 커다란 산악 배낭을 짊어지고 나타났다.  그의 한마디 한마디는 진지하고 차분하지만 그가 쓴 대본만큼이나 강인한 힘이 느껴졌다. 커다란 산악 배낭 속을 궁금해하자 ‘썬샤인의 전사들’을 쓰는 동안 찾았던(찾아 헤맸던 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자료들이라고 했다.

김은성은 등단 이후 한국 사회의 미궁처럼 얽힌 모순들과 소외 받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다루면서 연극계 주목을 받았다. 그의 신작 ‘썬샤인의 전사들’은 그가 4년만에 길어낸 작품이다. 일제 강점기부터 한국전쟁, 권위주의 통치로 이어지는 근현대사의 지층을 탐색해 한국 사회를 끌어온 힘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또 다른 미래를 기획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 지 묻고 있다.  공연 개막 전날인 9월 26일 두산아트센터에서 작가와 만났다.

Q. ‘썬샤인의 전사들’ 대본을 다보고 나니, 토니 모리슨의 비러브드(Beloved), 실코의 의식과 같은 인디언 문학이 떠올랐어요. 깊은 상처와 슬픔 그러니까 사람들이 너무 아파서 꺼내 보고 싶지 않은 이야기 (우리에게 세월호 같은)가 힘들지만 구전 되고, 이야기 되어야 한다는. 그래야 그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담겨있는데 이 작품이 그러한 것 같아요.
폐부를 찌르는 말이네요. 맞습니다. (부새롬) 연출이 하는 말인데 세월호가 저렇게 방치되어 있는 이유는 우리가 세월호를 잘 못보고 있거나 혹은 보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어요.

Q. 이 작품은 김은성 작가의 작가로서의 철학, 왜 본인이 작가로서 존재하는지 담겨있는 것 같아요. 작가로서의 사회적 책임의식(또는 사명감, 일종의 소명의식)이라고 느끼는 부분이 무엇인가요.  또 작가의 존재이유는 무엇인가요?
그런 것들을 미처 생각할 겨를 없이 등단하고 10년이 되었고 한국사회를 살아가면서 문제라고 생각하는 부분을 써왔는데, 세월호 사건이 중요한 계기가 되었고, 또 작년에 연극계 검열 사태가 정점이 된 것 같아요. 그러면서 지금 한국 사회에서 글을 쓰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물론 의미는 있겠지만 좀 더 현장에 나가서 어떤 일을 해야하지 않나 하는 자괴감에 빠졌었어요. 연극이나 희곡은 빗대어 말하기 잖아요, 이야기. 당장 현장에 인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세월호 현장에서도 이상호 기자 혼자 뛰었잖아요. 언론은 건강하지 못한 상태에서 제대로 전달이 되지 못하고 있었고, 팟캐스트 같은 걸 만들어서 활동 하는게 내가 가진 재능을 살리는 길이 아닌가, 연극을 하는게 아니라 피켓 들고 나가야 하는 것 아닌가, 했어요. 지난해 겨울까지 내내. 썬샤인의 전사들은 중단되어 있었고 글 쓰는데 동력을 얻지 못했어요. 자꾸 회의감만 들었어요. 그래서 나름 직접 현장에 나가는 활동을 했었는데 그 과정을 거치면서 역설적이게도 비로소 연극을 해야 하는 것, 내가 희곡을 써야 하는 것에 대한 의미를 찾게 된 것 같아요. 물론 현장에서 열심히 싸우고 희생자들과 더 큰 공감을 하고 있고, 이를 테면 가족이거나 이런 활동을 하고 있는 분들께서는 좀 더 능동적인 태도를 바라겠지만.. 이런 생각을 하게 된거에요.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을 하는게 의미가 있다. 그리고 왜 내가 이야기를 만드는 것에 대해 부끄러워했었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거에요.

당장 숨 넘어가게 싸워야 하는 현장도 있지만 우리가 더 큰 힘을 모으고 역사를 좀 더 멀리 바라보고 더 큰 싸움의 준비를 하려면 긴 호흡을 가지고 어떤 이야기를 만들고, 연극을 만들고 그래서 무언가를 증언하고 기록하고 이런 일을 누군가는 해야 하는 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 일 보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더 소중하다 이런 건 아니고 대단히 미안하지만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은 글 쓰고 연극 만들고 그런 거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거죠.
 
Q. 보는 사람 입장에서도 주석을 보면서 아플 때가 있었어요. 쓰면서 고통스럽진 않았나요?(썬샤인의 전사들 대본에는 페이지 상당수의 하단에 한국전 당시 소년병의 수치, 위안부 증언, 제주 양민학살, 문인 간첩사건 등 작가가 조사한 자료와 사실들에 대한 주석이 달려있다.)
열심히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전 보다 훨씬 더. 쓰는 것만 하는게 얼마나 미안한 일인지 알게 되어서 그전보다 더 열심히 하게 된 것 같아요. 철저하게 역사적인 사실을 갖고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에 대본을 쓴 건지 논문을 쓴 건지 착각이 들 정도로 공부를 하면서 썼어요. 저도 몰랐던 사실을 많이 알게 되었어요.
 
Q. 작품의 시간적 배경이 현재가 아닌 2019년 미래인 이유가 무엇인가요? (작품 속 주인공인 소설가 승우는 2019년의 3년전인 2016년 4월 13일 미군 공군기가 케이타워를 들이 박으면서 케이타워 아쿠아리움에 있던 딸과 아내를 잃었다) 작품 속 4.13 케이타워 사고는 세월호를 쉽게 연상시키는데. 작품의 현재는 2019년 미래이고, 작품 속 사건은 2016년 지금 현재에 일어났으며, 실제로 우리에게 세월호 사고는 3년전에 일어났다.  
그렇게 안되었으면 좋겠지만 당분간 이 사회, 이 나라가 더 좋아지지 않을 거 같았어요. 지금이 뭔가 썩고 있는 과정의 정점인 것 같아요. 그게 5년 10년은 가거든요. 좀 더 건강한 정권이 나와도 뒷수습하는 시간이 필요할텐데.. 그리고 오늘도 지진 날까봐 두려워요.(인터뷰는 26일 월요일에 있었고, 3주째 월요일마다 경주 등에서 지진이 있었다.) 지진 공부를 하다 보니까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는 400년 주기래요. 언젠가 한번은 강진이 터질 수도 있다는데, 제발 안 일어났으면 좋겠고, 문제는 정상적인 정부라면 원전 일단은 중단 해야하는데 그러지 않고 있죠. 기본적으로 무능하고 민생에 대해 관심이 없는 정부라는 생각이 들어요. 더 이상 큰일 없이 조용히 좀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앞으로 3년 5년 정도는 더 안 좋을 것 같아요.
 
Q. 참사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반복되어 일어날 수 있다는 의미인가요?
그렇죠.
 
Q. 작품 속 중요한 모티브인 수첩은 제주소년 선호로부터 시춘, 대길에게까지 전해져 오는데요. 선호나 선호의 동료, 호룡은 모두 탄약상자 안에 숨겨져 있던 생명을 지키려 했어요. 전쟁 속에서도 위험을 무릅쓰고 지키고자 했던 인간의 선량함을 상징하는 것 같았어요. 그 생명은 비록 깨졌지만 그 정신만은 인물들의 손에서 손으로 건네지면서 결국 불태워지지 않았다고 보여졌는데요. 상자 안의 아이와 선호의 수첩은 각각 어떤 의미가 있는 건가요? 
(작품 속 이야기는) 한국전쟁 때 벌어진 전쟁을 겪으면서 (수첩을 통해서) 본격적인 정통 역사책에서는 다뤄지지 않는 인물을 이야기하는 건데요. 전쟁이라는 큰 비극 속에서 살기 위해 어려서부터 가해자가 될 수 밖에 없던 청년(선호)이 그래도 작은 하나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참혹했던 일들 속에서 우리 역사를 끌고 왔던 작은 힘들을 상징하는 것 같아요. 대단한 것 같아요. 어떻게 이 나라가 이렇게까지 왔지, 그 힘은 그런 힘들에서 나왔던 거 같아요, 선호가 순이를 살리기 위해 노력했던 힘, 호룡이가 순이를 살리기 위해 달려갔던 힘 그런 작은 힘들을 상징하는 게 수첩이라면 상자 안의 순이는 우리가 지키지 못했던 작은 생명들, 하지만 우리가 반드시 지켜 내야 할 어린 생명들, 그리고 희망이라고 보고 싶어요.
얼마 전에 갑자기 ‘썬샤인의 전사들 2’를 몇 년 후에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요, 북한 장진호 갱도에 있는 순이를 발굴하기 위해 가는 이야기이죠. 유해 찾으러 가는 거에요. 장진호 갱도에 묻혀있는 순이 유골을 찾아내서 다시 좋은 땅에 묻어주는 정도까지 갈 때 정말 좋은 나라가 될 것 같아요. 제 시대에도 힘들고 우리 후배들의 과제가 아닌가. 싶어요.
 
Q. 처음에는 세월호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초반부에 이야기가 선호, 호룡 등의 이야기이 전개될 때 너무 많은 메시지를 담으려고 하나. 하는 착각을 했어요.(웃음)  일제의 기억이 호룡과 막이의 이야기로, 그것이 다시 선호의 이야기에서 해방 이후 극우청년단체의 양민학살과 한국전쟁으로, 시자와 시춘의 이야기에서 반공주의에 기반한 독재의 시절로 이어지는데요. 톱니바퀴 물리듯 이어지는 참사의 기록들을 마치 현대사의 지층을 밑에서부터 위로 탐색하는 과정이었어요. 이런 연쇄 구조 속에서 가장 중요한 고리는 무엇이었나요?
그 말씀 그대로에요. 참혹했던 비극적인 역사가 계속 되풀이되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 속에서 끊임없이 안 죽고 작은 빛을 향해서 간신히 간신히 이겨온 역사인 것 같아요. 한국사는. 그래서 자랑스럽다는 생각도 했어요. 주저 앉지 않고. 한홍구 선생님이 역사 강의 하실 때 보여주신 사진이 있는데요, 문경의 한 폐광이에요. 보도연맹사건으로 좌익 세력 척결한다고 정말 많은 사람들을 죽였는데요, 그 아래(폐광) 많은 유해들이 쌓여 있어요. 몇 년 전에 어떤 사진작가가 사진을 찍었는데 해골들 사이에서 새싹이 나 있는 거에요. ‘참담하고 비극적인 역사를 거쳐왔지만 그래도 그 속에서 끊임없이 새싹들이 피어왔다’ 그런 흐름을 보여주기 위해서 좀 길어진 것 같아요.
 
Q. 주인공인 승우에 대한 묘사 중 (신작을) 내놓기만 하면 10만부 거뜬히 팔리고 커피 광고 모델을 할 정도로 인기 작가라고. 10만부면 사실 현실적으로 한국 문단에서 대단히 어려운 일이잖아요 (웃음). 주인공인 승우가 이렇게 잘나가는 유명인사로 그린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 주변에도 많은 작가와 소설가들이 있는데요. 공연을 보러 온 그들이 이건 지어낸 이야기구나 생각할 수 있게요(웃음) 2만부 이러면 음 김연수인가? 커피광고했던 모델은 이현세 작가뿐이었던 것 같은데.. 누구를 괜히 연상할 수도 있고. 괜히 오해 받지 않고..  
그리고 성공한 소설가일 때 이 이야기와 더 잘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Q. 전작(목란언니)에서도 분단 상황을 다뤘는데 분단 상황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어렸을 때부터 저는 역사가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역사 속 사건에서) 이게 뭐가 문제였을까 거슬러 올라가 보면 어쨌건 우리 현대 사회에서 가장 큰 사건은 한국전쟁이었고요. 그리고 한국전쟁을 초래한 분단, 또 한국전쟁이 나은 분단이에요. 국회에서 어떤 법이 처리 안 되는 어떤 사안을 따지고 들어가면 또 분단의 문제에요. 이데올로기적으로 억압 받는게 있어요. 지금 남과 북, 적대적 공존관계가 거의 유지되어 오고 있는데 특히 보수정권이 잡았을 때. 그러면서 그들의 안위를 보장받고 주변의 강대국들도 그렇고. 한반도는 지금처럼 남과 북이 긴장관계에 있고 좀 못난 정권이 잡고 있을 때 주변 강대국들은 편하거든요. 당장 쉽게 말하면 빨갱이로 몰아버리는 게 아직도 유효하잖아요.
 
Q. 세월호의 항적 기록들이 왜곡되고, 세월호에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위한 철근이 실려있다는 보도도 있었어요. 제주해군기지 건설 명분이 북한의 잠수함 침투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고 하고 참사 이후 진실 은폐와 피해자에 대한 빨간 색 덧칠하기를 보면 세월호 참사는 넓게 본다면 분단체제의 경직성과 무관치 않아 보이는데요. 극에서도 케이타워 참사가 미군 정찰기와의 충돌 때문에 발생한 걸로 나오는데 분단 상황이 현대적 참사의 원인에 어떤 원인 제공을 했다는 보고 있나요?  
관객들이 그렇게 봐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미국 공군기가 왜 우리 나라에서 충돌을 하는지. 다른 나라 공군기잖아요. 스위스 상공에 그런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들이 가만히 있나. 이게 사실은 모두 분단 때문인거죠.
 
Q. 고문 장면 등 어떤 장면들은 관객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우려는 없나요?
고문 장면은 정말 공들여서 썼는데요. 고문에 관한 자료들도 찾아보고 고문을 다룬 작품도 많이 봤고. 기존의 작품들에서 다뤄지지 않던 방식을 찾으려고 했어요. 그래서 찾은 게 언어의 고문이었어요. 많이 각인된 게 통닭구이, 물고문, 전기고문이고.. 일제 적에는 인두로 지지고 그랬는데. 물리적인 고문은 모나미 볼펜으로 손에 '똑딱'하는 장면 인데요. 고통스럽고 잔인하죠. (언어의 고문은) 종양이라는 인물이 말로, 게다가 말빨이 좋잖아요, 그 인물이. 결정적인 고문이 작품을 왜곡시키는 거잖아요. 손에서 손으로 이어져온 수첩이 저런 인물에 의해 저렇게 왜곡되는구나. 이 자체를 관객들과 함께 보고 싶어요.
 
Q. 뒷부분에서 시춘이 "너 쓰라고 그랬다. 괜찮다."하는데 그 장면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요. 모든 걸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말인 것 같았어요.
기자님도 글을 쓰는 분이다 보니 좀 더 본인의 이야기로 봐주셔서 그런 거 같아요. 이 작품의 클라이막스거든요, 제가 가장 아끼는 대사이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그 대목에서 관객들이 다 자신의 트라우마를 해소하고,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고민해보았으면 좋겠어요. 각자 모두가 본인 일들에 대한 자부심? 그런 걸 느끼고 그렇게 됐으면 좋겠어요.  

이 대본 쓰고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대본 초고 나온 날, 친한 친구랑 술 겁나 많이 먹고 친구집 가서 잤는데 일어났더니 친구가 대본 읽고 울고 있는 거에요. 원래 제목은 ‘작가들’ 이었어요. 얼마 전에 그 친구가 "제목 재미없다고 한 거 미안하다, 우리 모두가 작가들이라는 거지?" 라고 했어요. 그게 가장 큰 의도였어요. 쓴다는 것이 소설가에게 당연한 일이지만. 한편 이 말인 거 같아요. 보라고. 우리에게 벌어지는 일을 보고, 증언하고 이야기해주는 것이... 그건 꼭 작가만이 하는 일은 아니잖아요. 관객 분들에게 본인들 이야기처럼 들렸으면 하는 바람이고, 그게 된다면 작품이 잘 올라가는 거라고 봐요.
 
Q. 저는 그렇게 느꼈기 때문에 많은 관객들도 그렇게 느낄 거라고 믿습니다. 

글: 김선경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uncanny@interpark.com)
사진 : 두산아트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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