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 소재로 보편적인 삶 말한다, 국내 초연 <두 개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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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방문한 대학로의 한 작은 연습실. 배우들과 연출, 두 세 명의 스텝들이 연습실 한 가운데 앉은 배우에게 조용히 집중하고 있다. 단 네 명의 배우가 출연하는 이 연극은 오는 20일 국내 초연되는 <두 개의 방>. 미국의 극작가 리 블레싱이 ‘테러’를 소재로 1988년 쓴 희곡이다. <히스토리 보이즈><필로우맨><글로리아> 등 작품성 탄탄한 연극을 꾸준히 선보여온 노네임씨어터가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 이후 예술의전당과 두 번째로 손잡고 제작하는 이번 연극이 어떨지 궁금해 연습실 문을 두드렸다.
 
작가 리 블레싱은 1980년대 빈번히 일어났던 테러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어 <두 개의 방>을 썼다. 당시 중동지역에서는 많은 미국인들이 테러리스트들에게 납치당해 인질이 됐지만, 미국 정부는 테러레스트와 어떤 협상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자 점차 시민들은 정부를 믿지 않게 됐고, 언론은 납치 사건을 그저 자극적인 기사 소재로만 활용했다.
 
<두 개의 방>은 네 명의 인물을 통해 이러한 현실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레바논에서 역사를 가르치다 인질로 잡힌 마이클과 그의 아내 레이니, 마이클 사건을 전담하는 국무부 직원 엘렌, 특종을 노리는 기자 워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인종과 이념의 문제, 종교적 갈등, 정부와 언론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담았다. 국제사회에서 혹은 우리 가까이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 인간의 이기심, 다양한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어떻게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침범하고 상처를 남기는지 보여주는 작품이다.
 
“여기 있으면서, 여기 휘말리면서 내가 어떤 기분인지 알아? 내가 드디어 진짜 세상의 일부가 된 것 같아.”
이날 연습실에서는 테러리스트들의 인질로 잡힌 마이클(이승주 분)의 장면이 가장 먼저 펼쳐졌다. 두 눈이 가려지고 양손도 묶인 채 방에 갇힌 마이클은 암흑 속에서 멀리 고향에 있는 아내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덤덤히 이야기한다. 전쟁과 인간, 역사와 삶 등 커다란 화두들을 아우르며 이어지는 그의 말들은 한 문장 한 문장 결코 가볍지 않은 울림으로 듣는 이의 귀를 집중시켰다.
 
남편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자연과학 교수 레이니는 <태풍기담>의 전수지가, 정기적으로 그녀의 집을 방문하는 국무부 직원 엘렌 역은 <모차르트!>의 배해선이 연기한다. 레이니는 가구를 모두 치우고 어두운 방안에 틀어박혀 남편의 고통을 상상하려 애쓴다. 무력한 상황 속에서 서로에게 가 닿으려 애쓰는 마이클과 레이니의 가슴 아픈 러브스토리는 이 작품의 중심 축이다. 레이니를 걱정하는 척 하지만 사실은 그녀가 언론과 접촉하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엘렌의 모습은 지금 여기, 한국에서도 흔히 목격할 수 있는 정부의 행태를 꼬집는 듯 했다.
 
이어서 레이니와 그녀에게 카메라 앞에 나설 것을 종용하는 기자 워커의 대화 장면이 이어졌다. <히스토리 보이즈>의 이태구가 연기하는 워커는 어떻게든 특종을 확보하기 위해 레이니를 돕는 척 한다. 워커의 이기심은 극한 상황에서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잃지 않으려 하는 마이클의 모습과 대비를 이뤘다.
 
이 작품의 연출은 그간 <히스토리 보이즈><필로우맨>등을 번역하고 <우물><붉은 악마> 등의 대본을 썼던 이인수가 맡았다. 이인수 연출과 배우들은 이날 의자, 수갑 등 소소한 소품의 위치와 대사의 톤 등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으며 연습을 이어갔다. 납득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한참 동안 토론하는 열정적인 모습이 본 공연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마이클 역의 이승주는 “잘 쓰여진 연극에는 유통기한이 없다”는 작가의 말을 언급하며 “그 말에 꼭 맞는 작품이다. 이 연극이 200년 후 무대에 오른다 해도 충분히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만큼 보편적이고 본질적인 이야기를 담은 연극”이라고 말했다. 노네임씨어터가 선보일 또 다른 연극 기대작 <두 개의 방>은 오는 20일부터 11월 13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펼쳐진다.
 
글: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김윤희(www.alstudi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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